피렌체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Frankie Valli의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라는 팝송이에요. 왜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가수도, 배우도 아닌 그의 곡이 생각나냐고 물으신다면,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관광객과 현지인이 어우러져 야경을 배경으로 한 댄스파티가 제겐 너무도 행복했던 기억이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2019년 여름 유럽 여행 중 가장 짧은 2박 3일 여행지, 입가엔 어느 때보다 오랫동안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피렌체 시가지
베네치아에서 산 모자를 쓰고, 뜨거운 피렌체를 거닐었어요. 프랑스로 넘어가자마자 시원했던 영국이 35도 이상 기온을 보였고, 스위스로 넘어가고 바로 다음 날 파리 기온이 40도에 육박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여름의 유럽이 실감 안 났었는데, 피렌체는 달랐죠. 아, 이게 여름의 이탈리아구나- 실감하게 해 주더라고요. 그늘 찾아다니느라 혼났던 7월이었어요.
피렌체는 가죽제품 공업으로 특히 유명한데요. 르네상스 중심지였기 때문에 예술작품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해요. 시가지 중심부 거리는 박물관 그 자체였죠. 우피치 궁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교회, 조토의 벽화까지. 워낙 작은 도시라 일찍 도착해서 돌아다니면 하루 만에도 다 보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예약 시스템이 굉장히 철저하다고 합니다. 동생이 무릎 통증을 앓고 있어서 저흰 종탑이나 전망대에 올라갈 수 없었지만, 기찻길처럼 쭉 이어진 대기줄을 보니 가보고 싶다는 엄두도 감히 낼 수 없었죠. 그래서 기념품을 사는 데 열중했어요. 가죽 시장을 돌아다녔고, 즉석에서 이니셜을 새겨 주는 아기 턱받이 가게에서 조카 선물도 샀답니다.
피렌체 시내에 위치한 가게
가죽 시장은 이주 노동자들이 점령(?)했다는 정보도 솔솔 들렸어요. 실제로 아버지 선물로 드릴 벨트를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는데 말 그대로 아이쇼핑이었거든요. 그런데 판매자가 구매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욕을 퍼붓던 웃픈 해프닝도 있었어요. 지금은 쳇-하고 넘길 수 있지만 그땐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질 좋은 벨트와 기타 스카프를 구매하실 거라면, 가게 안에 들어가시는 게 좋겠다는 팁 하나 제안드립니다.
도착한 첫날엔 베네치아에서부터 시작된 기차 여행에 고단하기도 했고, 날도 심하게 더웠던 데다가, 밥도 부실하게 먹은 탓에 숙소에서 쉬기로 했어요. 지쳐서 입맛이 없었거든요. 대신 푹 쉬고, 일몰 때 맞춰서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했답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피렌체
숙소에서 20분쯤 걸었을까, 굉장한 높이를 자랑하는 언덕과 계단을 오르고 올랐을 때 내려다보인 풍경이에요. 저녁이 되면 쌀쌀해지는 날씨가 아니었다면 땀으로 범벅이었겠지만, 다소 쌀쌀해서 상쾌한 바람을 맞을 수 있었죠. 빨강, 주황, 노랑이 은은하게 섞여 자취를 감추려는 해님, 그 뒤를 따르는 구름, 이젠 내 세상이다 외치며 고개를 내미는 달님, 그리고 달님이 외롭지 않게 땅에 뜬 전등 별님들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전경에 감탄을 자아냈어요. 여행은 이런 것 같아요. 평소에 놓치고 있는 예쁜 장면을 잠깐이라도 여유를 갖고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시간. 학교에 갈 때,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할 때, 퇴근할 때 우리에게는 하늘 한 번 볼 여유가 없으니까요. 종종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침침한 눈동자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보느라 아래로 툭 떨어진 채죠. 물론 일부 다른 점도 있고, 여행을 사랑하는 입장이지만 일상에서도 접할 수 있는 걸 굳이 돈 내고 다른 나라에 와서 보고 있다니 다소 마음이 씁쓸했어요. 그때 저쪽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왔죠.
I LOVE YOU FLORANCE
분위기에 취해 저도 어깨를 들썩였어요. 동생이 아니었다면 밤새 함께 하고 싶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 있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음악은 정말, 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가 봐요. 하하.
늦은 저녁으로 피렌체 맛집 구스타 피자와 젤라또를 먹었어요. 베네치아에서도 분명 젤라또를 맛있게 먹었었는데요, 피렌체가 진짭니다. 이후 여행지였던 로마보다도 맛있었어요. 물론 저마다 취향이 다르고 좋아하는 맛도 차이가 있을 테지만, 저와 제 동생은 피렌체를 원픽으로 정했어요. 피스타치오가 이런 맛이었나 싶었고, 쌀맛 젤라또는 신선했죠. 젤라또를 먹으러 이탈리아에 가야 한다면, 무조건 피렌체로 떠날 겁니다. 정말 그 정도로 예술이었어요.
피렌체 인생 젤라또
젤라또 가게엔 9시쯤 방문했었는데, 그때도 줄이 꽤 길었어요. 관광객 말고도 현지인들 역시 이 가게를 이용하는 듯했습니다. 젊은 커플들이 꽤 많았어요. 가게 앞 베키오 다리에서 퍼지는 물비린내가 낭만적이었거든요. 저도 동생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숙소로 돌아왔죠.
<GUSTA> 피자
피자는 여성분들에겐 하트로, 남성분들에겐 동그라미 모양으로 제공된다고 해요. 이탈리아 감성답지 않나요? 숙소까지 걸어오는 동안 많이 찌그러지고 말았지만, 맛은 기가 막혔어요. 한국인 입맛에 맞는 음식은 made in Italy가 확실해졌으니까요. 12시가 다 돼서 각각 두 조각씩 먹었는데, 야식의 즐거움, 또 한 번 느끼고 말았네요. 그렇게 먹고도 다음날 아침, 호텔 조식까지 말끔히 클리어했다는 건 안 비밀!
조토의 종탑,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두오모 박물관
피렌체 관광지는 놀이공원처럼 한 군데에 몰려 있어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다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아침 일찍 출발해서 비교적 인적 드물 때 구경하고, 땀으로 온몸이 범벅되기 전에 다시 숙소로 돌아온 일정이었어요. 점심 겸 저녁으로 레스토랑을 예약해둬서 그전까지는 각자 심신을 달랬답니다. 3주간 돌아다니느라 퉁퉁 부은 다리도 쉬게 해 줬고, 지나온 자취를 떠올리며 연락 온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나눴어요. 지금은 SNS를 하지 않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인스타그램에 여행을 기록하던 때라 친구들에게서 연락도 종종 오곤 했거든요. 그래도 역시나 대화가 가장 잘 통하는 건 제 하나뿐인 솔메이트, 동생이었습니다. 지난밤 언덕에서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둘이 노래 틀어놓고 재롱도 피우고 키득대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죠.
티본스테이크와 생면 파스타, 티라미수
호텔 식사 및 디너파티
예약한 식당엔 손님이 저희뿐이었어요. 불이 켜져 있지도 않아서 열린 게 맞나 한참 서성였는데, 공간도 넓고 직원 분들이 친절해서 마치 레스토랑 자체를 빌린 것 같은 기분도 들었죠. 티본스테이크는 일부러 작은 걸로 골랐어요. 저는 양이 적고, 동생은 한식을 못 먹은 지 좀 됐기에 많이 먹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는데요, 그래서 딱 좋았어요. 그리고 여기는요, 티라미수를 꼭 드셔야 해요. 식사를 다 했다고 말하면 후식을 주문하겠느냐고 묻거든요. 그때 반드시 드시길 바랍니다. 정말 국내 내로라하는 카페에서 판매하는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배가 부른데도 들어가더라니깐요!
소화시킬 겸 구석구석을 누비다가 호텔로 돌아왔을 때쯤, 디너파티가 있으니 식당 홀로 들어오라는 안내를 받았어요. 다과와 샌드위치, 과일, 그리고 술을 고를 수 있는데, 저희는 와인을 선택했죠. 개인적으로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컨디션에 따라서 어떤 날은 냄새만 맡아도 취하고, 또 어떤 날은 아무리 들이부어도 집에 잘 들어올 수 있어서 조절을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거기다 다음 날엔 로마로 떠나야 하니까, 몸에 무리가 가지 않았어야 했어요. 그래서 몇 잔씩 마시진 않았고, 깔끔하게 와인을 마시기로 한 거죠. 결과적으로 만족했습니다.
술 한 잔에 알딸딸해진 저와 동생은 강물 바람을 맞으며 참 많은 감정을 공유했어요. 그러면서 서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던 성격이나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라 공개적으로 털어놓을 순 없지만,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동생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거예요. 동생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습니다!
호텔에서 Good bye 인사로 몇 가지 쿠키와 손편지를 방 앞에 놓아주셨어요. 피렌체에서 지내는 동안 함께 할 수 있어 매우 기뻤고, 앞으로 남은 여행 모두 최고가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죠. 사실 못 알아보겠는 스펠링도 있어서 100% 이해했다고는 못하겠어요. 필기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네요.
하지만 중요한 건, 따뜻한 마음이 전달됐다는 겁니다. 두 번째 방문에 감사하다며 방을 업그레이드 해준 체코 호텔, 갑작스러운 정전에 성심성의껏 수리를 마쳐줬던 영국 아파트먼트 호텔, 라운지를 드나들 때마다 밝게 인사해줬던 프랑스 아파트먼트 호텔, 친절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스위스 게스트 하우스, 시설은 가히 최고였던 베네치아, 외에도 모든 국가 및 도시에서 숙소 선택을 잘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뭔가 챙겨주고 싶게 만드는 곳은 이곳이 유일했어요. 감사 인사로 손편지와 한국적인 것들 몇 가지 선물로 남겨두고 왔는데, 마찬가지로 그 진심이 전해졌기를 바라요.
로마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열차는 지연됐고, 플랫폼도 5분 전에 겨우 알고 부랴부랴 이동했거든요. 그럼에도 피렌체는 또 방문해야 할 도시 중 하나로 남았어요. 멋진 풍경, 따스한 사람들, 그리고 맛 좋은 음식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듯 제게로 한걸음 다가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