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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ry go round Nov 12. 2020

그릇의 중요성, 보기에도 예쁜게 맛도 좋으니까.

좋아하는 것들, 그 서른 네 번 째


오랫만에 매콤한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배달앱으로 떡볶이를 주문했다.


떡볶이가 도착하기 전,

바지런히 그릇장을 열어

요리를 담을만한 그릇 두어개와 예쁜 포크,

냉장고에 만들어 두었던 오이피클도 꺼내

피클종지에 담아 내었다.


"그건 왜? 그릇은 왜 꺼내는건데?"

친구가 묻는다.


"예쁜 그릇에 담아서 먹으려고"

그게 질문이냐는듯 내가 답한다.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꺼내.

설거지 귀찮고 요리 귀찮아서 시켜먹는거 아니야?"


"뭐.. 그 말도 맞긴 한데,

그래도 난 예쁜 그릇에 담아서 먹고 싶어"


"또 또 요란떤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냐~

너도 참- 정성이다.

뭐하러 귀찮게 그래? 설거지만 나오지"


"그냥 보기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기왕 먹는거 예쁜데 담아 더 맛깔나게 먹자는거지."


친구들이 보는 나는 매우 유난스러운,

직업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릇을 사랑하는 푸드디렉터이다.



어린 시절 시골에 가면,

할머니의 커다란 찬장이 참 탐났었다.

천장까지 꽉 찬 높은 키에,

불투명한 유리가 끼워진 미닫이 문.

제일 꼭대기 칸엔 뭐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던,

할머니의 그릇 찬장이 너무나도 탐났었다.


예쁜 유리그릇도 많았고,

밥그릇 국그릇이며 명절이면 꺼내쓰는 놋그릇들.

전 부칠때면 꺼내쓰는 대나무 광주리에

무슨무슨 옥그릇, 돌솥도 있었고

두 번의 명절에 내려오는

다섯 명의 처자식 손주들 식기 셋트까지

정말 없는게 없던 할머니의 그릇장.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그 시절에 흔치도 않던 직업

지금으로치면 푸드스타일리스트라 불리는-

떼레비에 나오는 음식 장면을 만들어내던,

방송국에서 일하시던 요리연구가셨다.




아빠는 3남2녀 중 딱 정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는데

가운데로 태어난 만큼 입맛조차 가운데여서

모든 음식은 할머니가 아빠에게 맛을 보라 했단다.

큰아빠는 너무 싱겁게 드시고,

작은아빤 또 너무 짜게 먹는다나-


손재주가 좋았던 아빠는 미술을 전공했는데,

그 손재주에 요리도 포함되어서,

할머니의 요리 솜씨를

다섯 남매 중 가장 쏙 빼 닮았다 했다.


그래서인가 아빠도 할머니를 닮은건지

이상하리만치 그릇 욕심이 있었다.

요리사가 직업도 아닌데

우리집도 그릇장이 터져 나갈만큼 그릇이 넘쳐났다.


식당에서 쓰는 비빔밥용 돌솥부터 시작해서,

메밀소바 그릇도 식구수대로 있다.

심지어 내 친구들은

우리집이 식당하는 줄 알 정도였다.

식당용 그릇이 전부 다 있어서.



이런 집안(?)의 영향일까-

지금도 나는 어딜가나,

옷보다 그릇을 먼저 구경하러 간다.

물론 패션도 매우 사랑하는 나이지만,

좀 더 세밀하게 찬찬히 둘러보게 되는건

역시나 그릇이 가득한 곳이다.

옷은 두 번 세 번 고민하게 되는데

그릇은

두 개를 살 지, 세 개를 살 지를 고민하게 된다.


보고, 보고, 또 봐도, 그렇게나 재밌다 그릇 구경은.

사도 사도 또 사고 싶어지는 그릇.

요즘은 또 레트로가 한창 유행이라서 그런지

할머니의 그릇장이 자꾸만 떠오른다.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 하며

그릇장에서 예쁘 유리잔 네 개를 꺼냈다.

내일 촬영에 쓸 소품이다.


예쁜 그릇에 담기니, 더 맛있어 보이겠지. 생각하며.

조심조심히 꺼내 두꺼운 광목천에 둘둘 감쌌다.

내일 이 잔에 음료가 달큰하게 담기길 바라며.


이번 주말엔 드디어 5주간의 수업도 끝나니

바지런 떨며 시간내서,

계속 가보고 싶었던 그릇 편집샵을 가봐야겠다.


그러니,

요리가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은

일단, 예쁜 그릇부터 하나 장만해보세요.


정말이라니까요.

밖에서 사온 음식도, 배달시켜 먹는 음식도,

그릇에 옮겨담는것만으로도

음식의 퀄리티와 맛이 달라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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