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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ry go round Dec 07. 2020

먹는 것에 좀 진지한 편입니다.

좋아하는 것들, 그 쉰 두 번 째

"딸, 집에 와서 김치 좀 갖구 가"


"아 됐어, 무슨 김치야. 냉장고에 자리도 없어"


"너 김치 좋아하는데 김치 담글줄은 모르잖아."


"내가 필요할 때 말할게.

엄마아빠는 꼭 싸주면 한가득씩 싸줘.

혼자 다 먹지도 못하는데"


"밥은 잘 챙겨먹고 다녀?"


"아 내가 애야? 먹지 그럼 밥을 안먹어?

나 신경쓰지말고 제발 엄마아빠 건강이나 좀 챙겨”


.. 이렇게 쓰고 보니 나 너무 못되먹은 딸이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난 입은 좀 .. 짧은 편인거 같다.

이 맛이나 저 맛이어도 다 잘먹거나 

뭐 .. 그런건 아닌 것 같다.


내 입에 맛있으면 밥 두 공기도 뚝딱이지만,

입에 맞질 않으면 정말로 숟가락을 들어도 

한 두 입 먹고 내려놓는다.


어쩌겠어,

자라온 환경이 그러한 것을.



공기 좋고 물 좋고 

풍성한 재료와 맛깔난 음식이 넘실넘실 넘쳐대는

전라남도 땅끝마을 해남이 친가란 말이다.


와중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푸드스타일리스트 1세대셨다구.

하늘에서 준 천복을 세 개나 타고 태어났다며

(여전히 그게 뭔지 나는 모르겠지만)

오로지 그 이유 하나로 

할머니의 예쁨을 독차지했던 나는

언제나 할머니의 밥상이 가장 좋았다.

여전히 그립고, 하지만 다신 못 먹어볼 그 밥상.


투박한 총각무를 빨갛게도 아닌,

그냥 시허여멀건하게 슴슴하니 담근

그 총각무 김치가 그립고,

대체 어떻게 담그시길래 이런 맛이 나는지

쌉싸름한데도 자꾸만 손이 가서 

갓김치 하나만으로도 밥공기 한 공기 뚝딱이 가능한

그 돌산 갓김치가 그립다.


아주아주 오래 쓰신 무쇠 주물팬에

기름도 두르지 않고 

계란후라이를 튀기듯 두툼하게 구워(?)주시는

그 두툼한 계란 후라이에 

소금 몇 알 뿌려진 그 맛이 그립다.



다시 돌아와서 지금의 나를 보자면,

그렇기에 그나마 할머니의 손맛을 가장 많이 닮은

아빠엄마의 김치 맛이 좋긴 하지만

어느새 서울 생활이 익숙해져 

이젠 그 김치가 나에겐 짜게 느껴진다.

서울식 식당 김치 맛에 익숙해져버린탓이겠지.


그리고 왠지 걱정어린 말이 가득 담긴 

김치가, 그 밑반찬이,

왠지 더 먹기 힘들달까.


일에 치이며 잘 해먹지 않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왠만하면 내가 스스로 해먹으려고 

노력은 한다.


실은 내 요리를 늘 못마땅해하는

아빠의 그 잔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더더욱 가져오려고도 안하고

해드릴 생각도 안한다

몇 번 해드려보니

맛있다는 이야기보단

이건 이래서 짜네 싱겁네

소금 갖고와라 간장 갖고와라 하는

아빠의 그 애먼소리다 너무 싫어서.


맛없어도 칭찬해줄법도 한데

그렇게나 자기 자식이

본인의 손맛을 뛰어넘게될까봐,

그래서 아빠의 손맛을 찾지 않게 될까봐

그렇게나 매번 툴툴거린다

난 또 그걸 곱게 받아들여 집어 삼키는

착한 딸내미는 못되고 , 휴 ㅡ


나이 서른 넘어서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취급받는게 싫어서,

엄마아빠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내 실력 인정 못받는게 싫어서,

그 말들에 상처받는게 싫어서,


아니 사실은 _

언제까지고 내가 죽을때까지 

엄마아빠가 김치해줄순 없는 노릇이니까

어느 순간부터 거의 경기를 일으키듯

엄마아빠의 음식을 갖고 오지 않았다

받지 않았다


그러곤,

아직은 자신이 없는 배추김치를 제외하곤

하나씩 하나씩 김치를 담궈봤다.

아주 소심하게 국자로 한 국자 떠서

갖다드려보기도 했다 .


언젠간 스스로 모든걸 해결해야함을 알기에.

언젠간 내가 해드려야 함을 사실 잘 알기에.


파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열무물김치, 오이소박이

손이 여러번 가고, 과정이 절대 쉽지만은 않지만

지금까지는 실패하진 않았다.

제대로 된 배추김치는 아직 ㅡ 조금 어렵다.

그래도 올해는 한 번 해봐야지.

나이 더 먹어

내가 해서 갖다드리지는 못할망정

그래도 스스로 해보려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음식이란건 참 손이 많이 간다.

요즘은 잘 나온 제품들이 워낙 많은데다가

오히려 내가 장봐서 해먹는게 더 돈도 많이 들고

심지어 남는 재료도 많아, 버려지는건 더 많아

그러다보니 더더욱 잘 안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안다.

내 손을 거쳐,

귀찮지만 그 과정을 하나하나 거쳐서

만들어진 그 음식이

내 몸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끼칠 지는

너무나도 잘 알지만, 참 쉽지가 않다.


내 자신을 사랑해주는게 이 작은 것 하나

삼시세끼 챙기는 것 하나부터 

이렇게나 어렵고 힘들다.

남 챙기는건 그렇게나 잘했으면서

왜 이렇게 날 챙기는건 안될까.

내 가족도 하나 제대로 못챙기고

그냥 계속 난 어리숙하고 참 서툴기만 하다.


대체 언제부터 나는 나보다 남을 더 챙기게 된거지.

언제부터 내 자신을 아껴주는 법을 잃어버린걸까.

아마도 나는 처음부터 

내 자신을 아끼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깍두기를 담그겠다고 무를 산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저 무 하나를 쪼개서 절여서 

양념에 버무려 깍두기를 담그는게

이렇게나 어려울 일인가 싶다.

내 입속에 들어갈 그 무김치 하나 담그는걸 못하고

이렇게 일을 쫓아다니며 

나보다 일을 더 챙길일인가 싶고.


12월.

며칠 남지도 않았다.

끝을 정말 잘 마무리하고 싶은데.

과연 그럴수 있을까.

매일 생각하고 노력하는데도

아직도 나는 이렇게나 어리숙하다.


냉장고에 있는 무를 꺼낸다.

일단 절이는것부터 해본다.

이렇게 절여두면,

내일은 퇴근하고 와서 버무릴 수 있겠지.

그건 하겠지.


하자, 하나씩.

안하며 스트레스받고 걱정하는것보다

어지러진 그릇들을 전부 닦아 

그릇장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은 것처럼

결국은 안하고 스트레스 받기 보다

하고 뿌듯함이 더 남으니


하자.


꺼낸다. 무.

썬다. 무.

절인다 . 무.


내일은 꼭, 버무려야지.

야무지게 버무려서 하루 푹 익혀서,

뜨끈한 버섯전골 한 그릇 끓여서

쌀밥 푹푹 말아서 먹어야지.

그렇게 나를 챙겨야지.


그리고,

한 그릇 들고 본가도 가봐야지

또 이 맛이 아니라며

잔소리를 십만개쯤 듣겠지만


그 뭐 어떠하리.

아직도 너에겐 내가 필요하지않느냐며

인정받고 싶고 챙기고싶은

부모마음이란걸

이제는 나도 아니까.


점점 더 독립해가는 자식들이

마음을 허하게 만듬을 아니까.


어리숙한만큼

또 해보면서 느끼는 거지 뭐


12

그리고 2020년

참 가장 힘들고 어려운 한 해다


그래도 끝까지

변화해보려 노력해야지.

무를 절구는 것부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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