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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ry go round Dec 17. 2020

그리고, 남은 이야기 ㅡ

알람이 울린다.

띠디디디디디


새벽 여섯시.

일어나기 싫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화장실로 향한다

일단 따뜻한 물로 샤워기를 틀고

양치를 한다


눈을 게슴츠레 뜨며 거울을 본다


아,

오늘 몇요일이더라

(feat. 아빠 from 전라남도 땅끝해남)


가늠도 안되고 정신도 안든채

일단 샤워기를 틀어놓은 샤워부스에

몸을 우겨넣는다

폭우마냥 쏟아지는

샤워기 물줄기 아래 나를 세워두니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냉동고마냥 추운 날씨에

피부가 뱀처럼 갈라지기 전에

쿠팡에서 원 플러스 원으로 산

바디로션을 치덕치덕 바른다


시계를 본다

어 이러다 지하철 놓치면 안되는데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앵클부츠는 지퍼도 미처 채우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로 달려가 버튼을 누른다


오지 않는다


아,


기다린다




아아.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데가 역이건만

시간이 여유롭다 생각했건만

왜 꼭 마지막엔 달리는지 모르겠다

죽을 힘을 다해 다다다다 계단을 내려간다

내 코트자락 끝이 지하철 문에 스치며

겨우 겨우 탄다

그렇게 지각을 하지 않을 막차에 몸을 싣는다

그 다음부턴 그냥 핸드폰에 정신 팔리고.


두 번을 갈아타고, 역삼역에 내린다

우수수 쏟아져내리는 출근길 아무개들과

매일 이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니

회사가 다른들 너와 나는 동료지 생각하며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선다


아, 높다

들어가지도 않는 힘을 어거지로 쥐어 짜서

왼쪽 허벅지 한 번, 오른쪽 허벅지 한 번 나눠준다


등산길같은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다시 언덕 등산길

이 추운 날씨에 부랴부랴 뛰듯 걷듯

회사에 도착해 출근체크를 한다


띠디딕

미등록 지문입니다


냉동고같은 추위에 내 지문도 얼었나

띠디딕

띠디딕

몇 번을 시도한 끝에야 지문인식에 성공한다


열체크를 하고, 계단을 내려와 자리에 앉는다

노트북을 켜고,

사내 전산망에 로그인을 한다

그 사이 들어와있는 메일이 수두룩

놓치면 안되는 메일엔 별표표시 해가며

하나하나 읽고 하나하나 회신을 한다


업무에 집중을 하고

그러다 문득 또 생각이 나고

하지만 다시 업무에 집중을 하고

또 다시 기억이 머릿속에 팝업처럼 튀어나오면

팝업창마냥 엑스표를 눌러 창을 끄고

다시 업무에 집중한다


점심시간이다

계속 일을 한다

그러다 못견딜만큼 피곤함이 몰려오면

잠시 눈을 붙인다

그리고 다시 일



일 !


그렇게 끝난 하루는 보통 여섯시에서 일곱시

촬영장에서는 보통 여덟시

깜깜할때 출근했는데

여전히 깜깜하다


그나마도 차가운 공기에 뺨을 내어주고

아 겨울이네 하고 계절을 느낀다

이따금 올려다보던 하늘은 요새 잘 보지 않는다

차갑고, 맑고, 청아한 하늘에

달무리라도 선명하게 보이면

너무나도 슬퍼져서 보지 않고 그냥 고개를 떨군다


감정을 최대한 덜어내고

이성적으로 생활하고 살아간다


퇴근하고 나면

어떤 날은 밥을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바로 집을 향하는데

그저 감정을 다 내쳐두고

순간에 집중하며 살다보니

내 감정을 메마르게 하느라 그런건지

그냥 이따금 계속 멍해지게 된다

그러다가도 그 와중에 너무 피곤하면

지하철 두 번을 갈아타도 졸 수가 있더라


가만히 앉아 일하는게 뭐 힘드냐는 그 말은

너무나 어불성설이었지

몸보다도 뇌를 많이쓰니

체력적으론 사무직이 더 빡센것 같다


어찌저찌 하루를 보내고 집에오면 평균 9-10시

그냥 하루가 다 갔다

이런 날이 평범한 날이다

늦는날은 말도 못하지 뭐


불현듯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지만

말하지도, 글로 남기지도 않을거다

어떻게 밀어내려고 애쓴건데

여기에 다시 꺼내 풀지 않을거다


보통 어떠한 사람 몇 몇의 대한 이야기인데

그건 풀고 싶지 않은 아주 깊은 속마음인데다

내가 뭐라고

그들의 개인사를 왈가왈부할수는 없기 때문에 ㅡ


무튼 ㅡ


진짜로 쓰고픈 말이 이 글의 열 배는 더 많지만

감춘다

말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나는 느끼는 모든 걸 표현하고 살았다면

이제 나는 절대로 끝까지 감출것이다

내가 느끼는 그대로 솔직히 표현하고 이야기해봐야

절대 득될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면을 쓰고

듣기 좋은 말만, 원하는 반응만 해주는

겉껍데기를 장착하고 살아갈것이다


그리고 진짜 속내는

집 현관문을 열고 온전히 내 공간에 들어왔을 때

오롯이 혼자일 때 꺼내서 들여다보고 느껴야지


2020년.

여전히 난 어렵고 서툰 사람이다.

내년엔 조금 더 나아진 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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