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골레 파스타와 바지락 달래 스파게티 그 사이 즈음
오랫만에 연달아 쉬는 휴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업무로 바쁜 연말이지만,
내가 일한다고 거래처도 일하는건 아니었고,
어쨋거나 지금 세상은
코로나로 떠들썩한 뉴스 속보 속에
조용한 세상이 공존하고 있는 때이다.
오랫만에 연달아 쉬는 휴일을 앞둔 상태였기에,
대형 쇼핑몰에 있는
체인 마트를 가보고 싶긴 했지만
사람 많은 곳에 가고픈 마음을 꾹 눌러 담아두고
집 근처 동네 마트에 들러
오랫만에, 정말 오랫만에 장을 봤다.
동네 마트라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마트.
지하철 역을 올라오면 바로 있는 마트이기에
언제나 퇴근길 사람들이 복작대는 곳이다.
어차피 많이 사야 다 먹지도 못하기에
생각했던 식재료 몇 개만 장바구니에 담아
계산을 했다.
꼭 무슨 음식을 해먹어야겠다 ㅡ
생각하고 산 건 아니었다.
그냥 , 손길이 닿는 대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장바구니에 담은 식재료는
바지락과 달래, 굴.
굴은 다음 날 촬영이 잡힌 굴솥밥을
미리 한 번 만들어 볼 생각으로 샀고,
그 굴솥밥에 곁들일 양념장을 만들기 위해
달래를 샀다.
바지락은 왜 샀더라?
몰라. 그냥 담고 싶었나보다.
바지락 술찜을 해먹고 싶었나
정신없는 연휴 전날의 촬영을 끝내고,
몇 시까지 잤는지 모를 연휴의 첫 날.
배가 고파 냉장고를 뒤적거리다가
엊그제 사 둔 바지락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인데, 술찜은 좀 그렇고.
오랫만에 파스타나 해먹을까 싶어
냉장고에서 꺼내 들었다.
차가운 물에 바지락을 바락바락 씻어내고,
냉장고 신선실 구석에 박혀있던
마늘을 몇 알 꺼내 켜켜이 편을 썰어내고,
냄비에 물을 찰랑이게 담아 일단 물부터 끓였다.
파스타 면 삶아야 하니까.
소금도 한 숟가락 휘이 물에 툭 던져
풀어두고 말이다.
사실 몸을 일으켜 주방에 내 스스로를 세워 두고
칼을 잡고 식재료를 썰게 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도통 나는 내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일이 없으므로.
촬영장 가서 요리하면 그렇게나 신이 나는 이유는,
촬영이 끝난 후 내 요리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촬영 스텝들 때문이다.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하는 요리가
가장 즐거운 나라서,
내 자신을 먹이기 위한 요리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것이
내가 평소에 주방에 거의 서지 않는 이유다.
여하튼 물이 부르르 끓어 오르고,
냄비 사이즈보다 긴 파스타 면을 우겨 넣은 뒤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둘러
마늘과 페페로치노를 볶는다.
기름이 자글자글 올라오며 팬에 열이 끓기 시작하면
씻어둔 바지락을 후두두 쏟아 넣고
언제 먹다 남긴지 모를
화이트 와인을 반 컵 정도 넣어준다.
냄비랑 같이 산 후라이팬이라
뚜껑이 맞을줄 알았는데.
안 맞는다.
뭐 어때, ?
싱크대 하부장을 열어
다른 후라이팬을 하나 꺼내 휙 뒤집어 엎어 닫는다.
안에서 바지락이 바글바글 끓으며
입을 쩍 쩍 벌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염버터를 한 숟갈 크게 떠서
바지락에게 선물로 안겨주고
다시 팬을 엎어 닫는다 .
이제 저 버터가 사르르 녹으면서
바지락의 짭짤한 맛과 만나
멈출 수 없는 짭쪼롬하고 고소한 맛을
내 입에 전해줄 것이다.
피클을 꺼내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엊그제 쓰다 남은 달래가 눈에 보인다.
달래.
알싸하니 맵고, 씁쓸한 맛을 내는
우리나라 제철 식재료.
평소 바지락술찜을 해먹을땐 쪽파를 한우큼 썰어
듬뿍 얹는걸로 마무리를 해주는데,
왠지 달래를 꺼내고 싶어졌다.
흐르는 물에 달래를 씻고,
촘촘하니 다져 썰어준다.
코 끝과 눈매에 매운 향이 닿으며 시큰시큰해진다.
다 익은 버터 두른 바지락에
다진 달래를 한우큼 넣고 휘휘 저어준다.
왠지,
오랫만에 ,
내 요리의 대한 맛의 기대가
스믈스믈 올라오기 시작한다.
다 익은 파스타 면을 넣고 휘휘 팬을 돌려준다.
아,
참 이 인덕션은 요리할 맛이 안난다.
왜 요즘 지은 건물 안에는 다 인덕션인거야.
나름 테이블 매트
(_로 만들 예정인 천을 곱게 접어 매트처럼 깔아)
그 위에 접시와 스푼 포크를 셋팅한다.
완성된 음식을,
봉골레 인지 바지락 달래 스파게티인지의
그 사이 음식을
접시에 한 껏 담는다.
담고,
또 담는다.
대체 왜 집에서 만드는 파스타는 꼭
혼자 먹는건데도 양이 2-3인분이 되는걸까?
그래도 그득그득하게 담는다.
남길리가 없을 거라면서.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바지락 살도 콕 찍고, 달래도 콕 찍어서
한 입에 크게 넣고 우물우물 씹는다.
바지락의 쫄깃함과 짭짤함.
버터가 더해지며 만든 고소함과 느끼함.
그리고 그 느끼함을 잡아주는 달래의 알싸함.
허구허구 퍼먹는다.
모양새가 예쁜 건 사진 찍는 순간 뿐이다.
먹을 땐 어느새 왼 쪽 무릎은 세워 앉고선
마당 툇마루에서 콩나물 다듬는 아주머니마냥
껄껄 웃으며 틀어둔 미드를 보고
입 안에 파스타를 우겨 넣는다.
셋팅한 그 순간 만큼은
직업 정신이 빛나는 프로였다.
저 앵글 밖의 나는 그냥 동네 어머님 포스였고.
뭐, 다들 그런 것 아니겠어 ?
앵글 속 보이는 모습과
앵글 밖 내가 느끼는 순간은
사뭇 전혀 다른 순간이 많다.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남들이 날 판단하건말건,
사실 내 속내는 나만 아는거지 뭐.
좋게 보던,
고깝게 보던,
안쓰럽게 보던,
부럽게 보던,
그건 다 그 하나의 앵글샷만으로 판단하는거잖아 ?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게 내버려 둔다.
내가 앵글 밖 사정까지
일일히 쫓아다니며 설명할 순 없으니.
그리고 설명해도 잘 듣지도 않고 뭐.
다들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
해석하고 싶은대로 해석하며
본인 눈으로 본 대로 해석하는것만 믿으니까 뭐.
어쨋거나 나를 위한 한 끼를 오랫만에 챙겨 먹었다.
어지르는건 너무나도 질색팔색 싫은 나라서
먹자마자 바로 설겆이부터 했다.
그렇게 뒷정리까지 다 하고 나니,
먹은 게 약간 소화가 되었다.
이래서 직접 음식을 해서 먹어야
건강하다고 하나보다.
뭐, 정말로 속이 편하기도 하고.
정말 솔직한 말로
평일엔 무얼 해서 챙겨먹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도 주말이라도, 쉬는날이라도,
챙겨보려고 노력은 좀 더 해봐야겠다.
예상치 못한 식재료를 더해서
양식도 한식도 아닌 것이
그 애중간한 내 입맛용 요리 하나
만들어 내는 것 처럼.
절대 죽어도 귀찮아 안해먹겠다던 내 밥상을 챙기며
또 다른 레시피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
내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좀 더 해먹어봐야겠다.
그런 연휴였다.
나의 양면성 짙은,
봉골레와 바지락 달래 스파게티
그 애중간한 어딘가의 연휴 점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