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될 일이 아냐
USMLE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기도 쉽지 않았다.
처음 막연히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스친 것은 2020년 공공의대 파업 때였다. 잠시 스치기만 했다.
2021년 연수로 미국에 있으면서 USMLE에 대해 아주 조금 검색을 해봤는데, 살짝만 알아봐도 그 과정이 만만치가 않아 엄두가 나지 않아 생각을 바로 접었다.
2023년 말, 병원을 사직하게 되면서 시간이 있으니 잃을 것도 별로 없겠다는 생각에 나름 큰 마음을 먹었고, 운명처럼 스터디원 선생님들을 만나며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
막상 시작을 하고 나니 USMLE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은 많아도 끝을 보는, 그러니까 매칭까지 성공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을 들어서 알게 되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매칭에 실패하는 것보다 매칭을 시도하는 데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step1을 할 때에는 왜 그렇게 얘기를 하는지 솔직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step2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과정이 끝까지 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을 한다.
매칭에 성공을 하든 떨어지든, 그 과정을 끝까지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시험이 어려운 것도 있지만 우리가 모두 그만큼 능력이 안되고 머리가 안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 과정이 대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어서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이유는 이 과정이 내가 다 취하고 남는 것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이 아닌 나의 가진 살을 떼어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진 것을 포기하고 올인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서,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미래에 대한 보장은 없고, 가진 시간과 돈을 말 그대로 쏟아부어야 하는 긴 준비 과정이다.
불확실함에 기대어 당장의 경제적인 것과 개인적인 시간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
중간중간 확신은 흐려지고 '과연 될까, 이게 의미 있는 일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고 자신이 없어진다.
특히 나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희망에 기대기가 더 쉽지 않다.
단순히 끈기가 있는 것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처럼 정답이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생각이 더 많아진다.
이 시간과 노력, 들어간 돈을 과연 회수할 수 있을까 계산기를 돌려서는 될 일이 아닌데.
간절한 의지와 함께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하는 배짱도 필요하다.
그래서 매칭까지 끝까지 완주한 분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말 대단한 분들이시다.
"끝까지 꾸준히 가면 분명히 될 거야."라고 주문을 외우는 수밖에는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요즘 공부하는 게 힘이 들어서다.
마이너를 제외한 유월드를 90% 보고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고 있는데 2회독임에도 모든 문제가 다 새롭고 정답률이 처참하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렇겠지만 그래도 공부를 했는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었다는 느낌.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공부를 계속하면서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로 방황을 했다.
결국 계획의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조만간 하던 일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에 몰입해야 할 것 같다.
일이 많이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공부하는 게 연속성이 깨진다는 측면에서 공부의 깊이에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게다가 퇴근 후에도 모든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며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 시험을 보려면 대책이 필요했다.
그런데,
일을 그만 두면 과연 실제 공부 시간이 늘어날까?
공부 시간이 늘어난다고 점수가 오를까?
그럴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공부방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유코의 후기들을 보면 “4개월간 유월드 2 회독 돌리고 real deal 270 받았어요.” 하는 후기들이 참 많다.
이제야, 나는 그들과는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야.
나는 ‘개념 암기’와 ‘패턴 인식과 임상적 사고’ 모두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진단하였다.
개념 암기는 단권화 자료를 반복해서 리뷰해야 하고,
패턴 인식과 임상적 사고는 문제를 많이 풀고 오답을 돌려야 한다.
그동안 공부 속도가 너무 늘어질 것 같아 단권화 자료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white coat campanion을 같이 보기 시작했다.
매일 개념과 문제풀이에 시간을 5:5로 정도로 배분했다.
절반의 시간은 해당 파트의 WCC를 질환-based로 빠르게 훑는다.
이때에는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presentation-diagnosis-management로 요약 암기하여 구조적으로 머릿속 틀을 잡는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문제를 풀고 오답을 정리한다.
문제를 풀 때에는 맞추기에 급급하지 말고 아래의 4단계를 적용한다.
1. Stem 요약 (나이/성별/CC/onset/주요검사소견)
2. Dx 추정
3. 묻고 있는 것 (Dx, initial Mx, Definitive Dx)
4. 선지 비교
예상 시험 시기가 더 늦춰질 것 같다.
조급해지지만 조급해하지 말자.
너무 미래를 앞서 나가지 말고 현재,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것만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