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연말연시
미국 영주권 인터뷰는, 날짜를 고르는 것이 아니고 지정된 날짜가 통보된다. 못 오면 다시 잡으라고 하는데 다시 날짜를 잡는 데에도 선택지가 별로 없다. 슬롯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보기 위해서는 최근 시행한 검진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비자검진은 한국 미대사관 인터뷰인 경우 국내 3-4개의 지정병원 내에서만 가능하다. 검진을 시행하고 대사관으로 정보가 이관되는 데에 적어도 5-7일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인터뷰 지정일로부터 9일 전에 한국에 들어가야 했다.
인터뷰 승인 후에도 승인된 비자가 붙은 여권이 우리 손에 다시 돌아오는 데에 또 1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시간은 더 짧을 수도, 길 수도 있지만 예측이 불가능하다고들 하였다. 따라서 길게는 3주 정도나 미국에서의 직장과 학교에 공백이 생기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운이 좋으면 2주, 덜 좋으면 3주 정도 있겠거니 하고 떠났다.
감사하게도 친정 집에 남는 방이 있고 부모님이 흔쾌히 받아주셔서 거기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한국에 도착하고 이튿날 세브란스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나서, 온 가족이 매일 2주간의 테니스 레슨을 시작하였다. 아침에 레슨을 하고 점심을 사 먹고 들어오는 일정이었다. 틈틈이 지인들도 만났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붕 뜬 마음으로 첫 주를 보내고 나름 인터뷰 서류를 여러 번 검토도 하고 인터뷰 당일, 대사관에 갔다.
오후 인터뷰인데 쓸데없이 아침 일찍 광화문에 도착하는 바람에 근처 카페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정작 일찍 줄을 서지 못하고 대기가 길어졌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나의 기본 서류를 빠트렸다. 여러 번 검토를 했는데 주신청자가 아니니 불필요하다고 홀린 듯 생각하고 넘긴 서류였다. 나만 빼고 인터뷰를 보게 되었고 결국 나만 비자를 받지 못하고 한국에 잔류하게 되었다.
대사관 직원은 나 혼자 인터뷰를 다시 보는 일을 아주 간단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인터뷰 예약을 다시 잡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전 예약이 주신청자에 묶여서 되어있었기 때문에 나를 단독으로 풀어서 계정을 다시 만드는 일은 온라인으로 바로 되지 않아 대사관에 요청 메시지를 남기고 기다려야 했고 2-3일이 걸렸다. 그 사이에 남편과 아이들은 3일 만에 여권을 받아 출국 준비를 했다.
가족의 출국 전 계정을 만들어 확인해 본 슬롯은 가장 빠른 날짜가 3주 뒤인 12월 30일이었다. 절망적이었다. 작은 아이가 나 없이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 한국에서 둘이 의지하며 공부나 하자, 하고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남기로 했다. 우리의 항공권을 4주 뒤로 변경하고 남편과 큰 아이를 배웅했다.
아주 간단한 서류를 한 장 빠트린 것뿐이었지만 인터뷰를 잘 넘기지 못해 나만 영영 떠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이 비이성적으로 엄습했다. 귀한 시간이었는데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강추위에 둘째와 매일 강남도서관으로 출근했다. 그동안 너무 오래 쉬었던 공부라 매 과목이 새로웠고 도전이었지만 손을 놓지 않고 그냥 매일 조금씩 보고 또 봤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의 새집 증후군이었는지, 살을 에는 강추위 때문이었는지, 오랜만에 이틀에 한번 꼴로 즐겼던 사우나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과민반응 증상이 생겼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심해져 나중에는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고 공부도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인터뷰 날에는 약속 시간보다 40분쯤 일찍 줄을 섰다. 내 앞에 한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별문제 없이 인터뷰를 마쳤는데 이번에는 여권이 일주일 내로 도착할지가 걱정이었다. 연말연시이고 1월 1일이 껴있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매일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비자 발행 상황을 알려주는 사이트에 들어가 봤지만 내 상태는 계속 'no data'였다. 나중에는 검색 자체에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 결국 다시 예약한 항공권도 취소를 했다. 둘째의 결석도 길어져 학교에 이번에도 못 가요,라는 메일을 몇 번을 썼다.
그 사이에 성탄절을 맞이하였고, 많은 미사와 고해성사와 성탄축제 지내는 행운도 얻었고, 남편과 큰애와는 결혼 후 처음으로 같이 하지 못한 신년 맞이였지만 부모님과 함께 2025년을 보내고 2026년 새해를 맞았다.
낮에 항공권을 취소한 그날 밤, 체념하듯 일양로지스에 UID number를 입력했는데 송장이 만들어진 것이 보였다. 인터뷰를 한지 꼬박 일주일이 지난 저녁이었다. 항공권을 3일 뒤로 다시 예매하고 이튿날 여권을 수령하였다. 여권을 찾으러 겨우 다녀오고, 몸이 만신창이였지만 시부모님과 지인들을 만났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긴 기다림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고작 2달간을 살다가 간 미국 집인데, 평생 수십 년을 살았던 한국에서 '아, 집에 가고 싶다.'하고 집을 그리워하는 우리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우스웠다. 집에 돌아온 지 1달이 되었고 그린카드가 배송되었다. 오랜 기다림이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영주권을 처음 신청하기로 했을 때에는 우리 가족 모두 아주 진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일단 발을 들이고 나니 매 단계마다의 기다림이 상당히 힘들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 기다림의 과정을 즐기기가 그토록 힘들었을까? 기다림 속에서의 일상도 보기에 따라서는 괴로울 것이 없었는데.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냐에 따라 행복일 수도, 괴로움일 수도 있는데,
그 인식을 내 힘으로 바꾸기가 그토록 어려웠다.
모든 것이 마음 편안한 곳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며 쇼핑도 원 없이 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도 매일 다니고,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였는데 바보처럼 즐기지 못했다.
인터뷰 날짜가 잡히지 않고, 날짜가 빨리 오지 않고, 여권이 나오지 않고, 이렇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고 근거 없는 막연한 불안감에 잠식되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겸손해지는 시간이었다.
멋모르게 부리던 호기가 힘을 잃고 용기가 한 풀 꺾인 마음은 자꾸 미래를 의심하게 된다.
"마음먹기에 달렸어. 약해지지 마.
알 수 없는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쫄 필요는 없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해보자."
지금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