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를 지원하는 다른 아이들은 이미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를 끝낸 시점에서, 우리 모녀는 아이의 진로를 무엇으로 할지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며 고민해야 했습니다. 아이가 하고 싶은 진로가 뚜렷하다면 바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 되었지만, 가은이는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사실, 가은이는 1학년 때 장래 희망이 외교관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외교관보다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했고,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서 꿈이 없다고 하는 등, 진로를 자주 바꾸어 왔어요. 그렇게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중학교 3학년이 되어버린 겁니다.
어찌 보면, 겨우 15살인 아이들이 자신이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확정한 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유학기제를 통해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에게 진로 탐색을 요구하는 교육 편제 앞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진로를 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우리 부모들이 젋었던 시절을 돌이켜 본다면, 고작 중학교 때부터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정했나요? 설사 정했다고 해도, 현재 하는 일과 같은가요? 대부분 '아니요'라고 대답하실 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자기주도학습 전형에서 요구하는 자기소개서에는 진로계획과 이에 따른 학습계획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걸요.
3학년 2학기 국어 시간에 다시 진로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가은이는 장난기 있는 어조로 말했어요.
“엄마, 내 꿈이 뭔지 알아? 건물주가 되는 걸 내 꿈으로 정했어.”
나는 아이의 생각에 당황스러웠어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스트레스받지 않고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건설적이지 않은 아이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걱정되었습니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웠구나.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를 예뻐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보다... 별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게다가, 우리 집은 건물을 물려줄 만큼 부자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런 꿈을 갖게 되었는지 살짝 ‘현타’도 왔지요.
나는 우선 건물주를 꿈꾸는 아이에게 침착하게 물었습니다.
“건물주가 되려면, 부모한테 물려받거나, 조부모에게 물려받아야 하잖니. 네가 보기에 우리 집 형편에 그게 가능할 것 같니?”
“아니.”
“그럼 네 스스로가 건물주가 되는 방법밖에 없네? 가은이가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건물주가 될 수 있을지,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건물주가 될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보렴.”
"......"
농담 같은 직업을 진담으로 받은 엄마의 대답에 아이는 당황했는지, 아니면 깊이 생각한 적이 없는지 대답을 못하더군요. 저는 계속해서 얘기했어요.
"건물주가 되려면 아주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겠네. 어디 보자... 먼저 종잣돈을 마련해야 하잖아? 부지런히 일하면서 돈을 불려야 하니까 재테크에 대해 많이 공부해야겠다. 그리고 종잣돈으로 부동산을 구매하려면 부동산 지식도 많이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세법이나 부동산 중개업에 대한 지식도 갖추어야겠네? 상권 분석도 잘해야 나중에 투자한 금액 대비 많이 오를 지역을 선택할 수 있을 거고. 값싼 부동산을 사는 게 이득일 테니, 경매나 공매 쪽 지식도 알아야 하고, 또 부동산 구매에 도움이 될 사람들과 네트워킹도 잘해야겠고... 와, 건물주가 되려면 아주 할 일이 많겠구나! 정말 부지런해야겠는데?"
"..."
"사실 종잣돈을 마련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어쩌면 수입이 많은 직업을 택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일 수도 있어, 고소득 전문직 같은 것 말이야."
아이 입장에서 마냥 편하게 지내고 노는 직업이라 생각했던 건물주가, 사실은 남들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잘해야 될 수 있다는 걸 아이가 깨닫기를 저는 바랬습니다. 그리고, 요행을 바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길 바랐지요. 나중에 알았는데, 건물주라는 희망 직업(?)이 요즘 꽤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더군요. 많은 아이들이 손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보이는 인플루언서와 함께, 건물주를 꿈꾼다는 소식에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아마 우리 아이도 동영상 플랫폼에서 검색하다가 건물주라는 직업을 찾은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유산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하고 공부 또한 많이 해야 한다는, 아주 팍팍한(?) 현실을 깨달은 가은이는 그 후로는 건물주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죠.
고민하던 아이는 수행과제로 ‘나의 직업’을 외교관으로 정해 발표했습니다. 이번에는 1학년 때 썼던 내용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깊게 조사했어요. 외교관이 되기 위해 어떤 역량과 자질이 필요하고,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외교관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직업에 대한 실체까지 알아보았어요, 외교부 공식 블로그나 동영상에 있는 자료를 찾아서 같이 보았습니다. 저 또한 깊이, 그리고 제대로 아이의 장래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우리 아이가 가진 장점이 외교관이라는 직업과 잘 맞는지, 아이가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과연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어떤 부분을 특히 더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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