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운영의 고충
이전 편 보러 가기 #8. 두 번째 회사생활의 시작
두 번째 회사는 주로 청년층을 대상으로 진로/취업 교육을 진행하는 회사였다.
컨설팅을 하기 위해 입사했지만, 재직 중 메인 직무는 교육 기획과 운영이었다.
하반기는 대학교 취업 교육의 성수기이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상반기도 바쁘지만, 하반기는 대학교에서 대규모 채용에 맞춰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는 시기이다.
졸업 전 학생들에게 진로/취업교육을 지원을 위해 겨울방학 전인 9-11월쯤 예산을 많이 소비하여 교육을 진행한다. 결과적으로 1년 중 회사가 가장 바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진행되는 교육은 <취업준비 3일 완성>, <하루 만에 입사서류 준비하기> 등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단기 교육이다.
프로출장러가
되었다.
취업준비가 2-3일 만에 뚝딱 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해야 하는 교육의 양은 방대한데 비해 기간은 턱없이 짧으니 교육운영이 타이트할 수밖에 없다.
교육이 교내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주로 교외의 연수원이나 리조트에서 숙박을 하면서 진행되기도 한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보통 교육의 집중도나 연계성을 위해 교외에서 주로 진행된다.
연수원 숙박으로 진행되는 교육은 오전에 학교에서 출발하여, 저녁 9시, 10시까지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열정적인 학생들이 참여하는 경우에는 11시, 12시까지 진행되기도 한다.
교육 종료 후 숙소 인원점검까지 진행되면 일이 마무리되는 시간은 최소 11시 이후이다. 하루에 15시간 정도 일하는 셈이다. 다음날 아침 교육은 대부분 9시 시작이니, 준비하려면 1~2시간 전엔 일어나야 한다. 충분한 휴식 없이 일과가 시작된다.
교육 마지막 날 오전에 마무리되면 학생들을 보내고, 오후에 다른 연수원으로 이동해서 새로운 교육생을 맞이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10일간 한적도 있다. 마지막 날은 거의 내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교육 커리큘럼과 참여 인원에 따라 여러 강의실에 인원을 나누어 진행하기도 하는데, 교육이 잘 진행되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챙기다 보면 하루에 만보 걷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처음 교육운영을 하러 갔을 때 굽 높은 구두를 신고 갔다가 끝나고 집에 갈 무렵에 발목 아래에 감각이 없어졌던 아찔한 기억이 있다. 그 이후부터 운동화를 하나 더 챙기거나, 처음부터 편한 신발을 신고 출장에 나선다.
집에 못 들어가고 수원, 천안, 경주 등의 연수원을 옮겨 다니며 교육운영을 했던 그 해 하반기는 지금 생각해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 시기엔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프로출장러라고 불렀다. 정말 출장 짐 싸는 건 달인 수준이 되었다. 개인 스케줄 하나 없이 주말까지 매주 출장이었고, 어쩌다 쉬는 날이 오면 집에서 방전되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운영직의 장점
사무직만 하던 내가 출장을 다니면서 체력은 바닥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교육생들의 에너지와 현장 피드백은 지친 나에게 힘이 되었다.
내가 기획한 교육들을 쏙쏙 흡수하고 있는 교육현장을 보면서 얻는 성취감이 정말 컸다.
거기다 교육생이 청년층이다 보니 예전 추억도 떠올리며 그들의 발랄함에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이 참 좋았다.
교육을 직접 운영하면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교육생들이 어떤 부분을 힘들어하는지, 교육시간이 타이트하거나 느슨한 정도를 알 수 있었다.
또한 강사의 프로필과 강의가 전혀 다른 경우가 있다. 프로필은 화려하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나 전달력이 약한 강사도 있고, 펑크 나서 긴가민가 한 강사를 급하게 섭외했는데 반응이 좋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장감을 토대로 나중에 교육을 기획할 때 반영할 수 있었다. 기획과 운영의 선순환이었다.
내로라하는 강사진의 강의를 들으며, 초보 컨설턴트로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정보가 쌓이고 강의/컨설팅 노하우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학생들의 고민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들으며, 취업을 준비하면서의 고민이나 어려운 부분들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출장을 다니면서 많이 보고, 많이 듣는 만큼,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집안 분위기 상 외박과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터라 공식적인 출장은 나에게 자유의 시간이었다. 일부러 출장 날짜에 하루 더 시간 내서 지방에 머물며 여행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꿈도 못 꾸는 엄청난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