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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연 Jul 21. 2024

일기를 쓰는 일에 대해

우리는 단속적인 시간을 산다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옛날에 자신이 쓴 일기들을 읽으면 다소 생소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몇 년 사이에 쓴 일기들은 지금의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만 10년 전이나 15년 전의 나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젠가 내가 쓴 일기들이 나와 생각이 너무나 다를 때는, 나는 그 시절에만 존재하는 '나'를 일기라는 시간의 공간에 넣어 보관하는 중인가 싶다. 많은 나 자신들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처럼 시간의 너머에서 서로를 부르며 'stay!'를 외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서로의 시간을 간섭하지는 못 한채 살아간다.


'대화의 희열'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아이유가 나왔을 때 일기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소설가 김중혁님이 하셨던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옛날의 메모를 참고하면서 글을 쓰면 옛날의 나를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17세의 나와 26살의 나는 서로 다른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연속적인 자아가 아니라 되게 단속적인 자아인 것 같다'라는 맥락의 말씀을 하셨는데 너무나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하루는 진로에 대한 힌트나 얻어 보려고 열 살에 쓴 일기장을 찾아 읽었다. 일기 쓰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거의 빠진 날짜가 없어 그 애의 매일 매일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열 살의 그 애는 아주 신난 스폰지 같았다. 말 따옴표가 반드시 등장하는 그날의 에피소드들. 매일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이것도 신기하고 저것도 신기하다고 했다. 롤러스케이트 타기와 수영을 하루 걸러 해야하는 역동적인 아이다. 지금의 감상적이고 차분한 나는 어느 시절부터 시작되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하는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을 보면서 어쩌면 잃어버린 것은 꿈이나 희망 진로 같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에너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무살의 그 애는 친구들과 놀고 헤어진 직후의 외로움이나 우울감에 대해서 썼다. 10년 뒤에는 그 시점에 가지고 있던 고민이나 걱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되면 좋겠다는 말도 적혀 있었는데, 그 근심들을 별 것 아닌 것 취급하기 앞서 지금의 나는 그게 무슨 문제였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니 헛헛하다. 이렇듯 좀 더 미래에 살고 있는 나도 언젠가 그렇게 흩어진 지금의 나를 줏어 담으며 처음 본 듯 신기해 할 것이라 생각하면 어쩐지 낯선 기분이 든다.


오늘도 오늘만 존재하는 나를 적는다. 나는 더이상 열 살의 나나 스무살의 나에 대해 적을 수 없지만, 지금의 나를 적을 수 있는 건 지금 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비장해지기도 한다. 단속적인 나를 만나다 보면 무언가 비로소 완성되거나 어른이 되는 순간 같은 건 없는 게 아닐까 싶다. 모든 순간이 그 자체로 완전했으니 이 순간의 나를 온전히 사랑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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