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를 하며


필사책 제목은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노트> 이다. 친한 친구들과 우리 좋은 글도 접하고 어휘력 좀 높이자는 의미로 같이 시작했다. 몇 달 전에 시작해서 처음에는 서로 어디까지 했냐며 묻고 서로 격려하며 응원했다. 그러나 어느 덧 흐지부지 되었는데, 지난 주 글쓰기 모임을 다녀와 충격을 받고 다시 시작했다. 그 분들은 책도 많이 읽고 쓰는 어휘도 다양하고 고급어휘를 사용한 글을 써오셨기 때문이다. 살짝 기죽지만 엄청 멋진 분들과 같이 글쓰기로 소통한다는 것이 대단히 기쁘다.

필사를 하며 작가들의 문장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는 게 어렵지만 흥미롭다. 한강 작가의 “눈꺼풀과 입술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 잠길 수 있다는 건” 문장이 눈에 확 뜨인다. 어제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한강작가는 뭔가 어둡고 어려운 글만 쓴다며 살짝 짜증이 났다. 오늘 다시 읽어보니 인간의 표현의 주체성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니 상당히 즐겁다. 무언가 수수께끼를 풀어낸 듯 하다.

가슴에 저미는 문장을 읽어보고 글로 써보니 글 자체를 되새김질하게 되어 깊이 느끼기도 했다. 하이타니 겐지로 소설 <외톨이 동물원-서문> 의 글이다. “너희가 모르는 곳에 갖가지 인생이 있다. 너희 인생이 둘도 없이 소중하듯 너희가 모르는 인생도 둘도 없이 소중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모르는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너무나도 감동적인 문장이다. 모르는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라는 것이 나이들어 보니 무척이나 공감되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사랑하지 않고, 바꾸려고 얼마나 애써왔던가. 모르는 인생은 평생을 살아도 모르는 인생인데,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서로의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 조금 느껴간다.

필사를 한다고 하여 내가 어휘력이 팍팍 느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작가들의 좋은 문장만 오롯이 깊숙이 느끼고 깨닫게 된다. 여러 작가의 글을 짧게 읽으니 다양한 작가를 알게 되는 것도 좋고, 지루한 것은 패스해도 되니 책을 읽는 마음에 의무감이 덜하다. 내가 골라서 읽고 골라서 쓰는 재미가 있다.


필사를 하며 좋은 글을 가슴에 새기며 많은 위안을 받기도하고 있다. 필사의 목적이 어휘 늘리기였지만, 나에게는 내 마음의 안정이 더 많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필사를 하는 순간은 복잡한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글의 쓰임에만 집중할 수 있어 평화로운 시간이다. 명상의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전 08화나만의 방을 꿈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