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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Dec 22. 2024

뉴질랜드 [e] 따로 있나?

동기부여 팍팍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언니만 믿을게요. 누나가 통역해 주세요.”

“나도 그렇게 잘은 못 하는데, 열심히 해 볼게.”     

내 나이 스물여섯.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어렸고, 젊었고, 조금은 수줍었고, 조금은 외향적이었던 것 같은 한창 좋았던 시절. 대학생 때 그토록 참여하고 싶었지만 사정상 참여할 수 없었던, 세계청년대회(WYD)라는 이 축제를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참여하게 되었다. 단 몇 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대부분 대학생인 그룹원들 사이에서 나는 20대 중반의 사회인으로 제법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고, 전공이 영어라는 이유로 뉴질랜드(교구대회)와 호주(본 대회)에서 열렸던 세계청년대회의 수많은 교구 그룹 중, 한 그룹의 조장이 되었다.

나의 성 때문에 이름하여 양조장.      

세계청년대회;  World Youth Day (WYD)
가톨릭 교회가 지난 1986년부터 매년 거행하는 세계 젊은이의 날의 국제 단계(International Level) 행사. 평소에는 교구단계(Diocesan Level)로 지역 교회에서 거행하지만 2~4년 간격으로 교황이 지정한 교구에서 7월 또는 8월에 대규모의 국제 종교 행사로 개최한다. 세계청년대회는 교황이 전 세계 젊은이들을 모으는 행사이므로 교황이 직접 참석한다. 차기 대회는 2027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되며, 이는 1995년의 필리핀에 이어서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2번째 사례가 될 전망이다.  

출처: 나무위키



한국에선 직항이 없는 뉴질랜드 남섬. 그곳의 중심 크라이스트처치.

듣던 대로 자연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촬영 장소가 됐을 만큼 그림 같은 풍경에 입이 떡떡 벌어졌다. 아직도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을 생각하면 숭고해진다. 이런 곳에서 3박 4일 동안 현지 홈스테이를 한다니, 신 난다. 대학 때 휴학하고 어학연수 가서 현지 홈스테이 해 보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짧지만 이제라도 경험해 본다니 들뜬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뉴질랜드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 어딘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 하나가 툭툭 튀어나왔다. 대화를 잘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 알아듣지 못하는 구간이 어김없이 왔다. 뉴질랜드 억양과 발음이 내가 평생 배워온 미국식과 다르다는 것은 당연히 잘 알고 있었지만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드는 이 느낌. 나름 영어 듣기는 자신 있었는데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래봐야 10명 남짓의 조원들이었지만 동생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 참 난감하군.

갑자기 잘 알아듣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얼버무리듯 대화를 마무리 지으며 이틀을 보내고 홈스테이를 떠나기 전 날, 가족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던 중이었다. 홈스테이 가족들은 우리가 한국 어디에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구글 얼쓰(Google Earth)로 찾아보자고 했다. 사실 구글까지는 알아들었는데 지구라는 영어 단어 ‘Earth’를 알아듣지 못해 대화가 또 막힐 뻔 한 그 순간, 도저히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서 조심스레 물었다.


“이쓰? What does that mean, 이쓰? How do you spell that?

“E-A-R-T-H”

That’s 얼쓰, isn’t it?

“No, 이쓰. In New Zealand, the letter [e] is pronounced closer to the [e] sound of [i]”


홈스테이 아줌마의 설명에 그제야 들리는 단어와 문장들.

그러니 YES(예스)가 ‘이스’로 들리고 EARTH(얼쓰)가 '이쓰'라고 들렸을 수밖에.    


  



뉴질랜드에서의 [e] 발음 사태 이후, 나는 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른 전 언제라도 기회가 된다면 어학연수나 유학을 가겠다고 꿈꾸고 있던 시기였기에 이러한 경험은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물론 현실은 어학연수도, 유학도 이루지 못한 채 아이 둘 엄마가 되었지만 누가 아랴? 딸들 다 키우고 갈 수 있을지, 아니면 딸들 공부하러 갈 때 따라가서 같이 공부할지. 그래서 오늘도 나는 영어 공부를 한다.

급 영어 공부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으로 마무리된 뉴질랜드 여행기.

다시금 회상하지만 자연은, 내가 가 본 여행지 중 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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