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그리 하나 같이 다들 남자친구도 없고, 열심히 직장 생활하랴, 공부하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대학 동기 절친 셋.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어디든 떠나보자 외쳐댔고 그렇게 우린 홍콩으로 향했다.
“너에게 창가 자리를 양보할게.”
“고맙다, 친구들아.”
첫 해외여행이었던 한 친구에게 인심 쓰듯 비행기 창가 자리를 양보했지만 사실 고소공포증이 살짝 있는 나로서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3박 4일 자유 일정에 우리 셋은 각각 하루씩 일정을 짜오기로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파워 J 성향 어디 가겠냐마는, 그때 당시에는 MBTI 성향을 지금처럼 보편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때라서 친구들은 그저 나를 치밀 형 완벽주의자라고 불렀다.
“얘들아, 계획 미리 짜서 나한테 보내줘.”
“너희들 바쁜 건 알겠는데, 내일까지는 계획 세운 거 보내줘.”
나의 재촉에 한 친구는 대략 일정을 짜서 보냈고,
다른 한 친구는 끝내 출발일까지 여행 계획을 보내오지 않았다.
홍콩 스타의 거리에서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보내고 있는 세 친구
첫 일정 담당인 나는 분 단위로 계획한 일정표를 프린트해서 나누어주며 말했다.
“자, 홍콩 시내 도착하자마자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가서 밥을 먹을 거야.
그리고 여기로 가면 쿠키 가게가 있어. 여기는 꼭 가봐야 하는 샌드위치 가게.
저녁엔 야경도 볼 겸 페리 타고 건너편 가서 쇼핑하고 올 계획이야.”
“응, 그래.”
친구들에게는 자유여행인 듯 아닌 듯, 패키지여행인 듯 아닌 듯한 애매모호한 홍콩 여행의 첫날이 저물었다.
“와, 그래도 네 덕분에 알차게 여기저기 다 돌아본 것 같다. 밥도 맛있었고.”
“뭐, 이 정도쯤이야.”
다음 날, 마카오로 향하기 위해 우리 셋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로 배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
마카오 일정을 담당한 친구가 앞장서 선착장으로 안내했고, 당시 대학원생으로 그때도, 지금도 학구파인 친구는 마카오의 역사적 배경과 지식을 설명해 가며 가이드처럼 우리를 이끌었다. 그뿐 아니라 현지 에그 타르트 맛집 소개 등 친구의 짜임새 있는 일정에 감탄하며 무사히 마카오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마치 역사 탐방 같았어. 대단하다.”
“너만 하겠니? 그래도 난 너처럼 마카오 지도는 못 외웠어.”
깔깔깔. 호호호.
마카오 대성당 앞에서
대망의 셋째 날, 일정표를 보내오지 않았던, 바로 자유 일정을 맡은 그 친구는 비장한 표정과 함께 하루 계획을 선포했다.
말 그대도 자. 유. 일. 정.
“얘들아, 너희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
“뭐?”
토끼눈을 하고 되묻는 나를 보며 두 친구들이 또 웃는다.
깔깔깔. 호호호
그래, 인생이 언제는 원하던 대로 되던가. 즐겼으면 그걸로 만족이지.
근처 공원과 시내를 천천히 걸으며 정해진 대로가 아닌, 눈과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향했다.
그리하여발길이 닿은 곳은, 에프터눈 티와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유명 호텔 앞.
2시간 기다려서 5분 만에 순삭 한 건, 우리만의 비밀로 하자.
아마 여행 중 제일 많이 웃은 날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자유 여행이 무엇인지 알려준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