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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Dec 01. 2024

싸우다 판난 삼 남매 여행기 2 (미국 편)

코비 브라이언트의 추억

In New York, 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
There’s nothin’ you can’t do.
New York, New York.

 


알리시아 키스의 노래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보았던 카우보이 아저씨가 이 추운 날씨에 속옷만 입은 채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여기는 바로, 다름 아닌 "타임 스퀘어"    





일본 여행 이후, 다시는 같이 여행 가지 말자던 굳은 다짐은 어디 가고 어찌하여 우리 셋은 왜 또다시 뉴욕 한 복판에 와 있는가. 그 사이 4년의 시간이 흘러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막내는 곧 장교 입대를 앞둔 어엿한 청년이, 당시 장교 입대를 앞두고 있었던 둘째는 막 전역한 예비역에서 곧 취준생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 여행 때만 해도 풋풋한 20대 중반이었던 큰 누나, 그러니까 나는 어느새 20대의 끝자락에 서서 (결혼할 사람도 없는데)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으며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누나, 2월에 미국 여행 같이 갈래?”

“나 2월에는 일이 바빠서 어려워. 너네 둘이 갔다 와.”

“형, 누나 2월에는 많이 바쁘다고 했어. 우리끼리 다녀오자.”

갑자기 남동생 둘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누나가 가야 우리가 편해. 일정 다 짜주고, 밥도 사주고, 이번에 아베크롬비 패딩 안 살 거야? 누나가 동생들 옷 하나씩 사주겠지.”

“그렇긴 하지.”

"누나 같이 가자."


나를 따르라


사실 운동에 진심인, 그중에서도 농구에 목숨을 거는 남동생들의 미국 여행 목적은 오로지 ‘코비 브라이언트’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 볼 수 없지만 그때도, 지금도 코비는 남동생들에겐 영원한 우상이다. 그리하여 당시 LA 래이커스 소속으로 뛰고 있던 코비의 경기를 보러 LA에 먼저 들렀다 뉴욕으로 간다는 계획만 지그들 둘이 세워 놓고 뭔가 막막했던지 누나를 끌어들인 것이다. 곰곰이 생각 보니, LA든 뉴욕이든 보름 일정에 오며 가며 비행시간 제외하고 어느 한 곳만 충분히 둘러보기에도 부족할 것 같은 일정. 게다가 두 도시는 서부와 동부 정 반대편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과감히 한 도시를 포기해야 했다. 

동부냐, 서부냐, 그것이 문제로다.

여행의 목적인 코비를 보기 위해 LA로 정해야 할까? 하지만 뉴욕은 나도 너무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다 방법이 있지.

LA 레이커스가 뉴욕으로 원정 경기 오는 날에 맞춰 날짜를 잡고 뉴욕행 왕복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바쁜데 내가 휴가까지 내고, 일정 다 짜는 대신 군말 없이 따라오기다.”

“걱정 마, 누나. 이번엔 누나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충성!”

다시는 함께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삼 남매 여행, 그렇게 우린 뉴욕에 있었다.  




동생들이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던 미술관 앞에서


오페라의 유령 공연장


고대하던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컴컴한 무대에서 크리스틴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동생 둘이 꾸벅꾸벅 졸다 못해 아주 푹 잠이 들었다.

“티켓값이 얼만데 잠만 자냐? 내일 맘마미아 뮤지컬은 현장에서 당일 할인 티켓 살 거니까 졸면 안 돼.”

“누나, 뮤지컬을 꼭 두 편 봐야 돼? 맘마미아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잖아.”

“누나, 박물관을 몇 번을 가는 거야? 저 그림들이 다 눈에 들어와?”

“누나, 생활영어는 나처럼 하는 거야. 문법 다 맞춰서 완벽하게 할 필요 없어.”

“누나, 현지 투어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는 빼자. 그냥 워싱턴만 가자.”

그럼 그렇지. 사사건건 다투기 시작했다.

자꾸 계획을 틀어버리는 동생들에게 화가 났지만 어느덧 열흘이 넘는 일정을 보내고 대망의 마지막 일정인

농구 경기, 코비 브라이언트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벅찬 가슴을 안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향했다.




몇 미터 앞에서 직접 찍은 코비 브라이언트의 사진


코비가 우리 눈앞에 있다. 동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의 몸 푸는 모습을 맨 앞 줄에서 관람할 수 있었기에 입장하자마자 동생 둘은 누나는 뒷전에 두고 코비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눈과 고개를 돌려가며 집중했다. 사실 왕년에 대학 농구 시리즈 광팬이었던 나도 웬만한 농구 규칙부터 NBA 선수들도 조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 농구 이후 관심이 덜 해져있던 참이었는데 현장에 직접 와서 경기를 보니 다시 그때의 농구 열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밖은 추운 겨울이었지만 경기장 안은 응원과 고조된 분위기로 뜨거움 그 자체였다. 여행 중 제일 신나 하는 동생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티격태격 싸우며 얄미워할 땐 언제고 우리 셋은 코비로 하나 되어 있었다. 게다가 경기 결과, LA 레이커스가 승리까지 했으니 흥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고, 늦은 밤 숙소에 들어와서도 새벽까지 코비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경기 시작 전부터 들떠있는 남동생들

     

경기 중 직접 찍은 No. 24 코비 브라이언트


브레이크 타임, 전광판에 비친 칸예 웨스트


농구 경기장에서 하나 된 삼 남매


코비 덕에 하나 되어, 떠나는 다음날까지 룰루랄라 기분이 좋았던 우리 셋은 공항에 가기 전, 뉴욕 시내에서 몇 번이나 들렀던 아베크롬비 매장에 또다시 들렀다.

“사고 싶은 옷 있음 골라.”

이미 다른 매장에서 동생들에게 몇 차례 뜯긴 뒤였지만, 마지막에 들렀던 아베크롬비 매장은 유난히 크고 옷 종류가 많았다.

“역시 누나, 최고다!”

아베크롬비 매장 입구부터 은은하게 풍기던 향이 떠오른다. 잠시 눈을 감으니, 정말 그 향이 나는 것만 같아 뉴욕 여행의 추억들이 머릿속에 하나둘씩 떠오른다. 그 향이 짙어지니 매장 앞에 서 있던 몸짱의 훈남 모델들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정신 차려. 눈 뜨니 현타.     


프루스트 현상: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에 자극받아 기억하는 일.     


아베크롬비 매장 앞에서 남동생들


당시 아베크롬비가 병행 수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반짝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뉴욕 매장에서 한국보다 반절 가까이 저렴하다며 잔뜩 사들고 왔던 아베크롬비 옷들은 지금은 비록 행방불명에, 그나마 남은 옷들마저 잠옷이 되어버렸지만 코비 다음으로 이 뉴욕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삼 남매 각자 가정을 꾸려 육아하랴, 직장 다니바쁘게 살고 있어 이제는 정말로 셋이서만 함께 하는 여행은 불가능해졌다. 생각해 보면 든든한 남동생들이 누나를 믿고 지지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계획형 자유 여행. 그 시절이 그립기까지 한 걸 보니, 그래도 우리 삼 남매 우애가 깊었나 보다.




둘째의 입대 전 2월, 막내의 입대 전 2월,

그렇게 추운 두 번의 2월을 함께 여행한 우리 삼 남매.

박 터지게 싸우더라도 형제자매들과의 여행, 그거 할 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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