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신데렐라가 되는 꿈을 꾼다. 신데렐라뿐이겠는가? 백설공주, 인어공주, 숲 속의 잠자는 공주 등 왕자는 왜 이렇게 많은지. 그래도 어릴 적 동화 속의 왕자와 공주를 보며 미소 짓던 어린 내가 떠올라 흐뭇하긴 하다. 학창 시절 나의 왕자님은 영국에 있었다. 지금은 같이 늙어가고 있는 처지지만 아직도 내겐 추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왕자님, 윌리엄.
영국 윌리엄 왕세자 10대 시절
“나 여름까지만 있다가 유럽 여행하러 떠나려고. 영국 안 올래?”
“너무 가고 싶은데, 수업을 뺄 수 있을까 모르겠네.”
“생각해 보고 알려줘.”
며칠 뒤, “나 비행기 티켓 끊었어. 드디어 간다. 기다려.”
당시 친구는 회사를 휴직하고 영국에서 공부 중이었고, 나는 대학원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있었다. 보름 간의 여행 일정 중, 일주일간 대학원 수업을 결석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조금 걸렸지만 왠지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적금을 깨 과감히 항공권을 예약했다. 학창 시절부터 모든 수업에 지각, 결석 한 번 없던 나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다행히 개강 첫 주만 겹쳤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었다.
소심한 일탈이랄까.
“참, 친구야. 보름 동안 여행 계획은 내가 이미 다 짜놓았어.”
“오, 윌리엄, 당신은 왜 윌리엄인가요? 어딜 가면 만날 수 있나요?”
“걱정 마, 런던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어.”
정말 그랬다. 친구 말대로 런던 시내의 기념품 가게마다 윌리엄과 그의 아내를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로열 베이비, 조지 왕자까지. 마침 내가 영국에 여행 갔던 시기는 로열 베이비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나라 전체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우연히 초등학교 6학년 때 신문에서 본 미소년 왕자님 윌리엄. 게다가 나와 또래이기까지. 이 시대에 진정 왕자님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신선한 충격이자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영국 왕실에 대해 공부하며 역사와 스토리를 알면 알수록 빠져들었다. 훗날, 대학 때 영문학사를 공부하며 의도치 않게 도움이 되기도 했던 부분이다. 이처럼 초중고대 동창이라면, 특히 찐친들은 나의 윌리엄 사랑을 모르는 이가 없었을 정도.
윌리엄과 케이트의 결혼식이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때, 나는 여고 동창생들로부터 네가 생각난다며 잘 지내냐는 안부 문자를 여러 통 받았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서도.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는 로열 베이비 탄생 기념 컵받침
“버킹엄 궁전 내부를 몇 개월간 공개 한다는데 가볼까?”
“당연하지.”
드넓은 잔디밭과 호화롭기 그지없는 궁전 내부. 늘 여행책과 블로그에서만 보던 버킹엄 궁전에서 한가롭게 걷고 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실제로 윌리엄 왕자는 런던 근교의 다른 성에 살고 있어 만날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심 버킹엄 궁전 어딘가에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러 오지 않았을까 하며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도 여름휴가로 궁전을 떠나 있어 그 기간 동안만 궁전 내부를 공개한다는 사실. 몇 가지 기념품과 근위병 교대식을 뒤로하고 버킹엄 궁전을 나오며, 괜스레 마음이 쓰렸지만 이제는 그를 보내주기로 했다.
굿바이, 윌리엄.
버킹엄 궁전 앞에서
또 다른 윌리엄을 찾아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 왔다. 같이 영문학을 전공한 대학 동기인 친구도 또 다른 윌리엄인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보고 싶어 했기에 우리는 아침 일찍 서둘러 기차에 몸을 싣고 셰익스피어의 생가로 향했다. 이 작은 마을이 셰익스피어만으로 이토록 붐빈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웠다. 모든 것이 셰익스피어 그 자체였다. 책과 여러 소품은 물론이고, 셰익스피어 얼굴의 쿠키라니. 먹기 미안했지만 맛있는 걸 어떡해.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았다. 너무 아름다웠다. 고즈넉한 풍경, 아담한 집들, 따뜻한 공기, 이러니 셰익스피어가 대작품들을 쓸 수밖에.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기차역
가보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계획을 다 펼칠 수 있게 해 준 친구의 배려 덕분에 나의 두 윌리엄 찾기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영국 여행이라 쓰고 윌리엄 찾기라 읽었던. 너무 진지해서 정말 윌리엄만 찾으러 영국 여행을 결심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윌리엄은 여행의 일부였을 뿐이고 실제로는 친구와 함께 런던, 런던 근교 멀리는 스코틀랜드까지 여행하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진지한 시간이었다. 특히 런던에서 스코틀랜드까지 가는 긴 시간 동안 기차 밖 풍경을 보며 친구와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했던 그 시간은 영국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N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