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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Nov 03. 2024

오키나와 VIBE, 그 안의 타코야끼

날씨와 타코야끼의 상관관계


“엔저라는데 여행 한 번 다녀올까?” 


남편의 한마디에 바로 행동 개시. 사흘 동안, 온 에너지를 끌어모아 검색한 결과 특가까지는 아니어도 비교적 저렴한 항공권을 예매할 수 있었다. 2시간 거리의 짧은 비행에, LCC(Low Cost Carrier)이었지만 출발할 때는 무려 식사까지 제공되는 나름 비즈니스 석으로 말이다. 노안을 몇 년은 앞당긴 듯, 비록 눈은 피로했지만 뭔가 첫 계획부터 완벽하게 짜여가는 것 같아 혼자 뿌듯해하며 기세를 몰아 3박 4일간 머무를 호텔 두 곳까지 단숨에 예약 완료했다. 여행은 준비할 때의 설렘이 또 제맛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이 파워 J 아내, 엄마만 믿으라고. 그렇게 오키나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키나와 여행 중 화창했던 하루

  

남쪽에 위치한 오키나와는 한국보다 한 달 이상 계절의 흐름이 빠르다고 한다. 우리가 떠난 3월 말 시기에는 이미 벚꽃이 피고 지고, 따뜻한 봄 날씨를 예상하면 된다는 여행책과 온라인의 정보를 믿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키나와 공항에서 우리 가족을 반긴 건 흐린 하늘과 비바람. 웬걸, 체감상 2시간 전 떠나온 우리나라의 날씨와 큰 차이가 없었다. 물론 이 엄마는 당연히 내복에 패딩까지 추위가 뚫고 들어올 수 없을 만큼 준비가 완벽했기에 걱정은 없었다. 다만 해변의 바람이 하도 거세게 불어 머리칼에 싸대기 맞은 것 같은 사진만 남아, 마음이 시렸을 뿐. 이때 우리의 마음을 녹여준 건, 다름 아닌 바로 타코야끼였다.  



    

이틀을 먼저 묵었던 호텔 근처에 타코야끼 체인점이 하나 있었다. 타코야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가 먹어도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러니 남편과 아이들은 어땠겠는가. 기본으로 1일 2 타코야끼를 실행에 옮겼다. 첫 숙소를 떠나기 전날 밤에도 뭔가 아쉬워 남편과 남은 타코야끼를 먹으며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다. 일명 타코야끼에 대하여.

"어렸을 적 작은 트럭에서 팔았던 타코야끼 기억나?" "응, 기억나지."

새록새록 떠오른 추억이 식어버린 타코야끼에 감칠맛을 더해주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니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산하게 흔들리고 있었. ‘이번 여행 날씨는 망했다. 그래도 야경은 예쁘네.’ 시렁대며 대욕장에 올라가 뜨끈한 물에 몸을 녹이고 시원한 우유를 병째 들이켰다.     

 

감성 듬뿍 EM 병우유


남편 입맛을 녹인 것이 타코야끼라면 내 입맛엔 전날 밤 대욕장의 우유였을까? 그 시원했던 우유만큼이나 내 속을 뻥 뚫어주듯 여행 3일 차 날씨가 매우 화창했다. 바람은 여전히 거셌지만 오키나와에 와서 처음 보는 환한 햇빛이 아니겠는가. 마침 이 날은 북부 지역을 돌아보고 오는 긴 여정이 계획되어 있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괜히 타코야끼와 우유의 조합을 날씨와 엮어 히죽 웃었다.

날씨 요정은 날 배신하지 않았어. 역시 타코야끼엔 우유야.’

“엄마, 왜 혼자 웃어?” "응, 날씨가 좋아서."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밤을 책임져 줄 새로운 호텔에 도착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이어서인지 주변에 구경할 거리가 많았지만 그 많은 가게 중 타코야끼를 파는 곳은 없었다. 굳이 인터넷 검색까지 해서 찾아갈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기에 간단히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와, 대욕장에서 피로를 풀었다.

 

모노레일 역에서 보이는 아사토 성당


떠나는 날 아침, 돌아가는 비행시간이 늦은 오후인 덕분에 모노레일을 타고 시내 구경을 다녀오기로 했다. 모노레일은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하고 현금이나 현지 교통 카드만 된다는 글을 여행카페에서 미리 검색해 둔 터라 준비해 놓은 현금으로 막힘없이 표를 끊고 시내구경을 다녀올 수 있었다. 역시 완벽해. 이제 정말 마지막 일정은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아 공항까지 한번  모노레일을 타고 가는 것뿐. 사실 여행 첫날, 공항에서부터 호텔까지 택시로 이동하면서 꽤 비싼 택시비에 내심 놀랐던 터라 반대로 돌아갈 땐 모노레일을 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미리 계획을 세워두었다. 시내부터 바다를 거쳐 공항까지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가는 모노레일이라니. 나 홀로 감성 터지는 이 순간. 이를 위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모노레일 편도 티켓 비용만 현금으로 남겨둔 상태였다.     




호텔에서 짐을 찾기 직전, 마지막으로 쇼핑몰 푸드코트에 들러 간식을 포장해 가려고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냄새가 풍겨왔다. 냄새를 따라가 보니 그 타코야끼 체인점이다. 이 얼마나 진심으로 반가운 순간인가. 하지만 공항 출발 시간이 촉박해 앞에 예닐곱 명이 서 있는 줄을 다 기다릴 시간이 없어 돌아서려는 순간, 남편의 간절한 눈빛과 마주쳤다. '아이고, 이 인간아.' 말없이 속으로 외치며 일단 줄을 섰다. 초초하게 기다리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주문하고 결제를 하려 카드를 내밀었는데, 직원이 나의 말투를 듣고 여행객인 줄 알았는지 영어로 ‘only cash’라고 쓰인 팻말을 들어 보인다. 지금 남아있는 현금은 공항 갈 때 타려고 남겨둔 모노레일 비용이 전부인데. 뭐지? 여행책과 여행 카페 그 어디에도 타코야끼 체인점에서 카드 결제 안된다는 말은 없었는데. 분명 이전 타코야끼 체인점에선 카드 결제가 가능했기에 당황스러웠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타코야끼

  

결정적인 순간에 타코야끼를 포기할 순 없었다. 현금이야 다시 인출하면 되니까 일단 먹자.

썩 내키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훈훈한 여행의 마무리를 위해, 옜다.

"자기야,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으니까 얼른 먹어. 대신 딱 7분 줄게. 시간 내에 먹어야 해."

속으로 욕할 땐 언제고, 인심 쓰듯 남편에게 타코야끼를 건넨 뒤, 현금 인출기로 쏜살같이 튀어갔다. 나답지 않은 P스러운 생각과 행동 탓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로 만들어 온 트래블 체크카드는 하필이면 이 상황에서 왜 자꾸 오류가 나는 건지 이리저리 비밀번호만 남발하다 결국 카드가 정지되기에 이르렀다. 눈앞이 캄캄했다. 자칭 파워 J의 명성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타코야끼를 먹고 있던 남편과 아이들을 끌고 빛의 속도로 호텔로 튀어갔다. 내가 이렇게 잘 뛰던 사람이었던가. 휴대폰 번역기를 돌려가며 호텔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호텔 직원이 유일하게 도와줄 수 있었던 건, 카드 결제가 되는 택시를 호출해 줄 수 있다는 답변뿐이었다. 점점 비행기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서너 명의 직원들에게서 몇 번의 전화 끝에 카드 결제가 가능한 택시를 호출했다는 답변을 받았다.

살았다. 얼마나 긴박했던지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렸다.

아이 둘과 실컷 사진 찍고 있던 남편이 고생했다며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고생했어. 근데 아까 급하게 나오느라 타코야끼를 다 못 먹었는데, 남은 타코야끼 좀 먹어도 되겠지?" 

그제야 나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알면 됐어. 그래 먹어라. 이 남의 편아.'




그리하여 택시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모노레일의 몇 배가 되는 그 비싼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는 슬픈 이야기. 이렇게 또 하나 배우고 경험하는 거지 뭐. 허허허.

모노레일과 맞바꾼 타코야끼인지, 택시와 맞바꾼 타코야끼인지. 아무튼 맛있었고 고마웠다.

비행기와 맞바꾸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내 기분처럼 날씨가 흐려지고 바람이 불었다. 택시 앞 조수석에 앉은 남편의 뒤통수를 말없이 째려보았다. 사실 타코야끼와 날씨는 아무 잘못이 없다. 내 기분이 제 멋대로 둘을 갖다 붙였을 뿐.

오키나와 바이브는, 바람과 태풍 그 사이 어딘가쯤 있던 타코야끼, 이렇게 정의 내리기로.


J로 시작해 P로 끝난 여행, 즐거웠으면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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