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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Nov 10. 2024

비엔나에 수학여행 온 남자, 프라하에 행군 온 여자

그 여자의 신혼여행법

Just got married.   

  

들뜬 마음을 안고 로맨틱한 분위기의 동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한 쌍의 부부.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여자는 낭만적인 분위기에 취해 있었고,

남자는 다시 군대에 입대한 것 마냥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시각, 그렇다. 나의 신혼 여행기.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 뒤, 결혼 준비로 몹시 바쁜 와중에도 나는 여행 계획 세우기에 만전을 기했다. 어쩌면 가전제품을 고르고, 드레스를 고르는 것보다 더 열심히 임했는지도.

당시에는 알콩달콩 연애를 하던 때라 사소한 것 하나까지 다 계획을 세우는 나의 모습이 남편에게 자칫 치밀하고 예민한 모습으로 비칠까 걱정스러운 속마음을 들키기 싫었다. 하지만 남편은 고맙게도 자유롭게 여행 일정을 짜는 데에 동의해 주었고 정말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일주일간의 여정을 짜기 시작했다. 마치 짧은 시간 내에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다 하고 오는 기록 세우기 대회를 출전한 것 마냥.

     


실수였다. 일주일간의 여행에 오스트리아, 체코 2개국도 무리인데, 비엔나와 프라하에 머물며 근교 투어 하루씩을 끼워 넣은 것도 모자라 또 하루씩은 일일 시내투어를 신청해 아침 9시부터 6시까지의 일정이 꽉 채워졌다. 나인 투 식스, 흡사 관광지로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일정의 연속이었다. 일일 투어가 끝난 뒤 야경 투어 계획까지 세웠으니, 이건 뭐 야근까지 한 셈이다. 근교투어라도 가는 날엔 새벽 6시에 기상해서 7시에 호텔에서 나가야 하는 극기훈련쯤이랄까. 남편에겐 말이다.

당시 비타민 캔디 하나 없이도 체력 하나는 끝내줬던 나에겐 물론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이다.

불과 몇 년 전인데 온갖 영양제를 들이붓고 있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내 체력을 생각하니 실소가 나올 뿐.




아는 만큼 보인다     

‘역시 미리 책도 보고 역사 공부해 오길 잘했단 말이야.’

현지 투어 가이드의 설명이 물 흐르듯 내 머리와 귀를 관통했다. 이 그림, 이 장소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역사적 사건과 의미를 결합해 듣고 보니 마치 그 시대의 사람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옆에 번지르르한 구두를 신고 세미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맞다, 나 지금 신혼여행 중이지.

“자기야, 이거 봐봐. 이 그림 너무 감동적이지 않아?”

“자기야, 여기가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 촬영 장소잖아. 나 너무 와보고 싶었잖아.”

“자기야, (중략)” “자기야, (중략)” “자기야? 자기야?”

책, 볼펜, 화장품 등 온갖 준비물이 들어있는 내 보부상 가방을 짊어진 채, 남편은 힘겨운 발걸음을 떼었다.


여행 도착 첫날, 구두와 운동화 각각 한 켤레씩만 준비해 온 나와 달리, 남편은 요일별로 입을 옷과 신발을 챙겨 와서 착착 호텔 옷장에 걸기 시작했다.

‘뭐지, 이 남자. 강력한데?’ 강적이 나타났다. 내 신발과 옷의 개수가 더 적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남편은 신혼여행답게 사진에 남을 멋진 옷을 입고 여유로운 여행의 그림을 그리며 그날의 OOTD를 준비해 왔던 것이다. 자기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신혼여행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며 역사 탐방이 될지도 모른 채.



모차르트의 도시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도시가 온통 모차르트 축제였다. 갑자기 여덟 살 꼬마 시절, 피아노 발표회에 나가 연주했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가 떠올라 감정이입이 되면서 아무 상관도 없는 초콜릿을 구매했다. 모차르트의 얼굴이 그러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물로 산 초콜릿을 얼마나 까먹었던지, 어쩌면 그 초콜릿의 당분으로 힘듦도 잊은 채 걸어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오스트리아, 있어. 우린 이제 체코로 간다.

체코로 가는 열차 안에서 쿨쿨 자는 남편 몫까지, 두 배로 풍경을 만끽했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을 거야.



식사할 시간도 잊은 채 무리한 강행군이 이어졌고 결국 여행 마지막 날,

“신혼여행이 아니라 수학여행을 온 것 같아. 이 정도면 군대 행군보다 더 한데?”

남편의 말에 순간 뇌가 정지된 느낌이 든 것도 잠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과한 욕심으로 가장 배려해야 할 남편을 정작 살피지 못한 것 같아 속상했다. 이런 내 속마음을 읽은 듯,

“그래도 자기가 꼼꼼히 준비한 덕분에 새로운 것도 알게 되고, 그냥 모르고 지나칠 수 있던 것도 볼 수 있었어.” 그 순간 모든 걱정과 불안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프라하의 야경이 어제보다 더 반짝이는 밤이었다.     



다음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우리 부부가 가톨릭 피정 봉사자로 활동하며 발표했던 '남편의 글' 일부이다.   

  저는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갈 때에도 수강 시간표 정하듯 스케줄을 미리 정하고 가는 것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 짝꿍 글라라는 사전에 계획하고 시간표대로 착착 움직이는 것을 더 좋아해서 여행을 갈 때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세부적인 사항들을 미리 계획하는 편입니다. 혼인 전 신혼여행에 대해 상의할 때에도 글라라는 일주일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일정 속에서 이왕 간 김에 여러 곳을 보고 와야 한다며 빼곡히 일정을 채워나갔습니다. 제가 신혼여행 일정이 너무 빡빡한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글라라는 “여기까지 가서 이것도 안 보고 그냥 가려고 하는 건 아니겠죠?” 라며 반문했습니다.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는 저는 신혼여행을 계획하면서 조금 답답함을 느꼈지만 신혼여행은 여자 말대로 해야 앞으로의 혼인 생활이 편할 거라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글라라의 계획대로 따르려 노력했습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자기야.

앞으로도 쭉, 그 마음 그대로,

계획에 잘 따라줘야 생활이 편할 거야.

난 변함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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