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스틸러 –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연은 아니지만 매력, 개성, 카리스마, 연기력 등을 발휘하여 주연처럼 주목을 받는 역을 말한다.
참 요란도 했다. 하와이 여행 초반부터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다 겪으며 어찌어찌 일주일 여정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전날 현지 투어를 이용해 하루종일 오아후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일정을소화한 터라 조금 피곤하기도 했고 이 날은 잔잔하게 여행의 말미를 장식하고 싶었다.
“우리 내일이면 떠나니까 오늘은 해변에서 아이들 모래놀이 원 없이 하고 못 갔던 맛집 투어하면 어떨까?”
“응, 난 다 좋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내일이면 떠난다니 하루만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쉬우면서도 집에 빨리 가서 두 발 뻗고 자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고 있던 그때, 또 하나의 사건이 시작된 남편의 한 마디,
“나 마지막으로 서핑 딱 한 번만 해봐도 될까?”
남편의 뒷모습, 서핑보드가 뒤집어지기 1초 전
‘이 인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서핑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마음이 말했지만,아직 다정한 아내 콘셉트 유지 중인 나에게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어'라며 머리가 말렸다. 마음과 머리가 싸우는 사이, 어느새 내 두 발은 서핑보드 숍에 도착해이미 돈을 지불한 뒤였다. 발 승리.
“자기 이번엔 진짜 내 시야에서 사라지면 안 돼. 바로 저기까지만이야.”
이번엔 정말 걱정 말라며 서핑보드를 끌고 호기롭게 바다로 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바로 휴대폰을 켜 최대한 줌을 끌어당겨 그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줌을 끌어당길 대로 끌어당겨 화질이 깨진 휴대폰 카메라 속의 남편 모습은 가히 가관이었다. 서핑보드에서 떨어지고 고꾸라지는 건 양반이요, 화면 속에서 순간 사라졌다가 물속에서 갑자기 솟구쳐 오르질 않나,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제대로 몸 개그 중이었다.
평상시 듬직하고 진중한 모습의 남편을 떠올려 보니 조금, 아니 많이 낯설었다.
저 남자, 내 남편 맞겠지?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은 사실 하와이 여행 전부터 서핑을 해보고 싶다고 몇 번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어린 딸 둘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최소 반나절 이상을 빼야 하는 서핑 강습을 신청하기에는 무리였고 안전이 걱정되어 반대했던 내 말을 따라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남편의 불쌍한 댕댕이 표정에 넘어가 마음 약해진 나를 또 탓하며 서핑보드 대여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서핑보드 반납 시간이 되었고 물속에서 혼자 사투를 벌인 남편은 모래사장에 대자로 누워 한참 숨을 헐떡거렸다. 나도 그제야 휴대폰 카메라를 끄고 한숨 돌렸다. ‘휴, 다행이다.’
MZ 감성 과일샷
이제 배를 좀 채워볼까? 과일과 포케를 사 와 해변에서 점심을 먹었다. 바다를 배경 삼아 MZ 감성 알록달록 예쁜 과일 샷을 찍어대고 있는데 남편이 우물쭈물 거리며 뭔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손을 내민다.
“나 손에 뭐가 박힌 것 같아. 근데 괜찮아. 아프진 않아.”
“어머, 이게 뭐야? 빨리 빼야겠는데?”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남편 손에 까맣고 굵은 가시 같은 것이 박혀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놀랄까 봐 연신 괜찮다는 남편을 보며
'그래, 일단은 죽고 사는 문제 아니니까 진정하자.'
“Excuse me. Can I get an alcohol swab?”
해양 구조대에 다시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번엔 침착하게 구조요원에게 상황 설명을 하며 응급처치 방법을 물었다. 성게에 쏘였다는 말을 듣자마자 남편을 데리고 당장 병원에 가겠다는 나를 구조대원이 말렸다. 흔히 있는 일이고 독이 없기에 병원에 가도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으니 그냥 놔두란다. 하와이 해양 구조대원들은 어쩜 그리 하나같이 친절한지, 자꾸만 길게 대화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훈훈함은 덤.
잠시 호들갑을 가라앉히고 침착 모드로 돌아왔다. 참 가지가지 한다.
그래도 한 군데만 쏘인 게 어디냐며 애써 맘을 추스르고 남은 마지막 일정을 즐기기로 했다.
Home Sweet Home
눈을 떠보니, 하와이의 화창한 햇살과는 또 다른 느낌의 화창한 햇살이 우리 집 거실을 비추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전날 밤늦게 도착해서 간신히 샤워만 하고, 네 식구 모두 기절하듯 자고 일어나 간단히 아점을 먹으려는 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