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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Oct 28. 2024

하와이 공원 개물림 사건
(feat. 아이들)

불도그가 너무해

“CCTV가 없다니요?”     


30분 전에 벌어진 당황스러운 일로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호텔 프런트로 내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상황은 이러했다. 낮에 아이들과 갔던 쇼핑몰 뒤의 한 정원이 아담하고 너무 예쁜 나머지 저녁에 야경도 볼 겸 남편과 다시 오자는 이야기를 했다. 어둑어둑 해가 지면서 조명이 들어오니 마치 우리의 6주년 결혼기념일이자 나의 생일을 축하라도 해주듯 뭔가 분위기가 있어 보이는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 집 사진작가 남편은 무릎까지 꿇어가며 나와 아이들의 사진을 다각도에서 찍어주었고 급기야 분위기에 심취한 나는 평상시에는 거의 찍지 않는 셀카를 찍기 시작.  

향후 20년 내에는 결혼 주년 기념 여행으로 하와이를 못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분위기를 한껏 만끽했다.

간사하게도 전날 남편의 해변 실종 해프닝으로 가슴을 졸였던 건 어느새 싹 잊혀진오래. 

그런데 몇 미터 앞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던 남편과 아이들이 움직임이 조금 이상했다.

남편이 둘째 아이를 안고 첫째는 허리에 휘감은 채 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술래잡기 한 번 특이하게 하네’라고 생각하며 몇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간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뭔가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큰 딸에게 달려든 불도그 세 마리를 쫒기 위해 춤추듯 빙글빙글 돌며 한 발로 선 채 다른 한 발로는 개들을 막아내고 있었고, 개 주인도 엎드려서 날뛰는 개들을 잡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주변 쇼핑몰의 큰 공연 소리 때문에 남편과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어둠 속의 움직임만이 상황을 말해 줄 뿐이었다. 불도그 주인 부부가 개들을 다시 유모차에 실어놓으면서 상황은 일단 정리가 되었다.

순식간의 일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남편과 내가 아이들을 살피는 동안 슬그머니 유모차를 끌고 떠나려는 부부를 따라가 격앙된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Excuse me?”  

   




지금 어두워서 잘 확인이 안 되니 아이들이 개에게 물렸는지 밝은 곳으로 가서 같이 확인해 봐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주인 남자가 하는 말이 ‘only 3-month-old dogs’ 이제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새끼 강아지라서 무는 방법 자체를 모른단다. 순간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이곳은 본인들이 매일 와서 강아지들을 산책시키는 놀이터이고, 그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들을 보니 강아지들이 신나서 같이 놀았다는 것이다.

“Are you sure?몇 번을 되물었지만 남자는 뒷걸음질 치며 변명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 보니 놀라서 넘어졌던 큰 딸의 무릎과 옷이 흙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운치 있어 보이던 가로등 불빛은 너무 어두워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워 호텔로 총알처럼 날아가 아이들을 씻기며 온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아이들이 조금 놀란 것 외에는 막 울지 않았으니 물리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엔 오로지 아이들 광견병 주사를 맞히러 당장 짐 싸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었다. 선명한 개 이빨 자국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살짝 긁힌 듯한 흉터가 희미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엄마, 놀라서 한 번 넘어지긴 했지만 강아지가 물진 않았어. 그랬다면 내가 막 울었겠지.” 큰 아이의 말에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제 겨우 여행 3일째인데 도대체 왜 이러니, 갑자기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만약을 위해서라도 경찰에 신고해 CCTV 증거 영상을 확보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호텔 프런트로 내려갔다.     

상황 설명을 들은 호텔 직원은 경찰서가 바로 길 건너 가까기에 있어 신고를 한다면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하와이 거리에는 CCTV가 거의 없어 증거 확보 자체가 안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 사람을 잡을 수도 없을뿐더러, 상황이 더 복잡해지기만 할 거란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요즘 세상에, 더구나 이렇게 사람이 많은 관광지에 CCTV가 없다고?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서구 문화에서는 그렇다고 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그날 밤, 한숨도 못 자고 아이들이 혹시 미열이라도 오를까 이마를 수시로 짚어가며, 가져온 체온계로 체온을 수도 없이 확인했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 다음날 아이들은 푹 잘 자고 평상시처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일어나 ‘엄마’를 불렀다. 혹시 이런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해 플랜 B로 3kg에 달하는 온갖 종류의 비상약, 빵빵하게 들어둔 여행자 보험, 무엇보다 나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1층에 병원이 있는 호텔을 찾아 예약한  자신을 스스로 뿌듯해하면서도 이 플랜 B를 실행하지 않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근새근 잠이 든 아이들과 그 옆 침대에서 코 골며 자는 남편을 바라보며 밤새 주모경을 읊었던, 이 엄마의 간절함을 하느님은 알아주셨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이 또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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