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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Jul 25. 2018

늦었다고 생각할수록

오롯이 나의 판단으로 살아가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영어로 Better late than never. '늦게라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이다. 박명수는 ’ 늦었다고 생각할 땐 정말 늦었다’라고도 한다. 조금씩 다른 뉘앙스지만 결론적으로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게 가장 빠른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너무 늦은 게 아닌가 걱정한다. 무언가 꼭 하고 싶은, 아니 꼭 해야만 하는 게 있을 때 너무 늦는 경우가 있을까? 그럼 적당한 때는 언제일까? 


그 ‘적당함’은 누가 정해놓은 것이며 그게 옳다는 건 어떻게 판단할까.


초등학교 때 주변에 피아노를 배우는 친구들이 많았다. 초등학생이 있는 집에 피아노 하나쯤 두는 걸 중산층의 척도로 여기던 때다. 영창피아노와 삼익피아노는 기본이고 잘 사는 친구네 집에는 야마하 피아노와 티브이에서만 보던 하얀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집도 있었다. 


평범했던 우리 집 나보다 네 살 많은 언니도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꾸준히 피아노를 배웠다. 그렇게 피아노가 국민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 학교 끝나고 같이 놀던 단짝들은 언제나 중간에 피아노 학원에 가야 했다. 끝나고 다시 놀면 된다며 나를 피아노 학원에 데려갔고, 나는 친구가 피아노를 칠 동안 피아노 의자에 같이 앉아서 친구가 치는 걸 얌전히 구경했다. 


바이엘 아니면 체르니 100번 정도였을까. 


친구는 양손을 사용해서 연주했고, 주어진 연습량을 한 시간 동안 치고 선생님께 검사를 받으면 끝이었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나는 쭈뼛쭈뼛했지만 선생님들(미래의 수강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친했던 여러 친구들의 피아노 학원을 따라다니며 한 시간 동안 친구가 피아노 치는 걸 구경하고 나면 그 멜로디가 며칠 동안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친구들이 쳤던 멜로디를 띄엄띄엄 기억할 정도로 깊이 새겨졌다.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없어서 피아노를 구경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지만 정작 배우려고 한 적은 없었다. 다른 애들은 이미 저만큼 진도가 나가서 양손으로 치고 있는데, 내가 이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시작하는 건 의미가 없어, 너무 늦었어.


이번 생에 피아노를 배우기에 너무 늦었다며 다음 생에 배우자고 생각했을 때 내 나이 8살이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그즈음 엄마가 나를 언니와 같은 피아노 학원에 보내려고 했단다. 근데 나는 딱 잘라 피아노는 (배우기엔 이미 늦었으니) 싫다고 했고, 대신 주산학원에 다니겠다며 몇 년간 다녔지만 오늘날 주산은 쓸모가 없다. 


차라리 그때 피아노를 배웠다면 아마 몇 달 만에 양손으로 치고 곧 체르니도 들어갔을 거란 걸 그때는 몰랐다. 그저 '나는 너무 늦었다'라고만 생각해서 방법이 없다고 여겼다.


8살 때 이미 늦었다고 포기했던 피아노를 마침내 배우기로 마음먹은 건 22살 때였다. 문득 이제라도 피아노를 배우자는 생각에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원장님은 “성인들도 많이 와서 배워요” 라며 금방 진도가 나갈 거라고 용기를 주셨지만, 한 손으로 더듬더듬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유치원생들이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며 “왜 어른이 한 손으로 쳐요?” 하면 괜히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응, 끝났으면 집에 가라” 하며 치던 손을 멈추고 괜히 책장을 넘기며 바쁜 척을 했다.


몇 개월을 다니면서 내 또래들이 초등학교 시절 나갔던 체르니 30번까지 시작해보고 그만뒀다. 처음 늦었다고 생각했던 8살 때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늦은 경험이었지만, 30대인 지금 돌아보면 20대 초반에라도 배운 게 뿌듯하고 그때도 전혀 늦지 않았었구나 싶다. 22살도 너무너무 어렸다. 


아마 50대 60대가 되어 오늘을 돌이켜보면 분명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 태도와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기로 했다.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위기의 주부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캐서린 주스턴이 연기에 대한 꿈을 갖고 LA로 이사 갔을 때 그녀는 56세였다.

20대에 피아노를 배운 경험이 준 선물은 더 이상 어떠한 새로운 꿈과 도전도 “너무 늦었어”라고 생각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생각해보면 내 판단에는 늦었다고 여겼던 것들이, 돌아보면 그리 늦지 않았더란 걸 깨달았다. 늦게라도 시작했던 크고 작은 도전 하나하나 소중하고 감사하다.
캐서린은 66세에 첫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아 66세, 69세에 에미상을 수상하고, 72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들 기준에 맞추다 보면 끝이 없다. 적당한 나이에 맞춰 늦지 않게 연애하고, 취직하고, 늦지 않게 결혼을 하고, 늦지 않게 아이를 낳고, 수많은 다른 틀에 맞게, "늦지 않기 위해" 살다 보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은 무능력하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나는 대학교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후 일을 하다가, 20대 중반엔 미국에서 리코딩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음반사를 거쳐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을 하다가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커져서 영문학을 배우고 싶어 졌다. 결국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 문예창작 공부를 서른 넘어 시작했다.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은 다들 이십 대 초반이라 처음엔 위축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나도 그들의 나이 때 누구 못지않게 용감하고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이런 여유를 부리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내 경력을 들으면 다들 나를 흥미롭게 바라봐 준다. 


나는 분명 졸업 후 일을 하다가 또 그만두고 학교에 돌아갈지도 모른다. 혹은,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또 다른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처음부터 뭔가를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라는 걸 깨달은 이상 그냥 그렇게 살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결국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보며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 뒤돌아 보면, 무언가를 해서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때 앞뒤 안 가리고 그냥 해볼걸, 더 많이 넘어지고 더 밀고 나가볼 걸.” 하는 아쉬움이 더 많다. 어차피 내 인생인데 오롯이 내가 옳다고 판단하는 방식과 네게 맞는 속도로 살다 보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삶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게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길이 아닐까. 

    

내가 하기로 결정한 시점이 내 인생 최적의 타이밍이다. 늦었고 이르고는 오직 나만이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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