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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Sep 12. 2022

회사에 내 돈 쓰기

문구용품

새로운 회사에서의  출근을 앞두고 인사팀에서 재택근무를 위한 프로그램 설정을 하기 위해 개인 노트북을 가져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회사  하면서  볼펜과 클립, 포스트잇 까지도 사비로 마련했던 바로  직장을 겪어서인지 별생각 없이 노트북을 가방에 넣는데,  얘기를 들은 오빠가 ‘회사 일을 하는데, 노트북을  준다고?’ 하고 되물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채용 공고에서부터 입사 시 최신 맥북을 제공한다느니 광고하는 시대에 말이다.


그렇게 맞이한  주의 마지막 . 마찬가지로 회사 일에 쓰기 위해 잉크 충전식 프린터를 샀다. 매일 엄청난 양의 종이를 뽑아대야 하기 때문이었다. 프린터까지 샀다고 이야기하면   소리를 들을까 싶어서 은밀하고 조용하게 오프라인으로 처리했다. 그나마 모니터가 (무조건)   필요한데,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것이 있어서 돈을  썼으니 그것 하나는 참 다행이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필요한 장비를 회사로부터 제공받은 입장에서 보면, 개인의 노트북으로 회사 일을 하고 프린터와 듀얼 모니터를 사야 한다는 건… (아니, 노트북이 없을 수도 있잖아!)


업무노트로 쓰던 나의 가죽노트. 물론 회사에서도 노트를 주긴 했다.


직장인이라면 응당 가져야  가장 필수적인 자세는 바로 ‘ 일을 봐도 회사 가서 일과 시간에 보기. 응당 직장인이라면 종이  장이라도 회사 가서 뽑고 커피  잔이라도 회사 가서 마시는 자세를 가져야 내가 하루 내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값을 개미 오줌만큼이라도  받아낼  있다고들 말하니까. 혹자는 회사   비싼 화장품으로 화장하는 것도 아까워서, 평일에 쓰는 로드샵 화장품과 주말에 쓰는 백화점 화장품이 따로 있을 정도란다. 회사에 들어가는 돈은 십원  개도 아깝다고. 또 다른 한 달을 풍요롭게 해 줄 작고 소중한 월급을 주는 회사가 과연 무엇이길래 화장품까지 가려 쓴단 말인가?


지난 6년 여의 직장생활 동안 나는 다양한 이유로 회사에 내 돈을 써왔다. 대체로 1) 약간의 지출로 일/삶을 편하게 하기 위해, 2) 나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위해, 3) 개인적인 만족감을 위해서, 회사에 돈을 쓰는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이다.


첫째, 약간의 지출로 일/삶을 편하게 하기 위해


영어 선생님으로 일할  나의 가장  고민과 걱정은 바로 ‘수업 자료였다. 기왕이면 재밌는  하고 싶고, 보기에도 좋았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출근과 동시에 퇴근시간까지 쉴 새 없이 수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교안을 만든다는  퇴근  집에서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뒤져 education.com이라는 다양한 수업 자료가 있는 웹사이트를 찾아냈고,  해에는 1 권을, 두 번째 해에는 평생 이용권을 결제했다.


이백만 원 초반대의 월급을 받던 나에게 월급의 1/10 가량을 수업 자료 사이트에 지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선생인 나에게는 즐거운 저녁시간을, 학생들에게는 좀 더 완성도 있는 수업 자료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들다 보면 난이도 조절을 실패할 때가 있어 너무 복잡하거나 어렵기(또는 쉽기) 마련인데, 전문가들이 심사숙고하여 만든 자료다 보니 그런 시행착오를 겪을 일도 줄었다. 거기다 계속해서 새로운 자료가 업데이트되었기 때문에 지루함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한 번의 지출로 모두의 삶이 펀해지고 풍요로워진 것이다.


회사에 갖다 놓은 개인 물품 1: 스트레스 해소용 털무더기


둘째, 나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위해


내게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결코 나쁘지는 않은 일 친구(워크 메이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키보드와 마우스라고 답할 것이다. 대학교 입학, 아니 그 이전부터 이미 노트북을 써왔기 때문에 갑자기 무슨 키보드와 마우스 타령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을 논문과 씨름했던 대학원 시절을 겪은 뒤 삐걱대는 손목을 본 후로 모두가 찬양하는 버티컬 마우스와 마치 구름을 치는 것 같다는(?) 기계식 키보드의 이로움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돈을 써서 나의 뇌가 강제로 플라세보 효과를 발산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손목의 통증과 손가락 저림 현상이 눈에 띄게 줄었다.

 

셋째, 개인의 만족감을 위해서


얼마 전, 회사에 아끼던 색연필을 가지고 갔다. 우리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마무리 전 피엠이 번역물의 포맷 등 비언어적 부분을 체크하기 위해서 FE(이름하야 최종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색이 있는 볼펜이다. 입사 후 줄곧 재택근무를 했으니, 그냥 기분에 따라 집에 있는 색색깔의 볼펜(정말 색색의 볼펜을 말한다 - 핫핑크부터 터콰이즈까지) 혹은 만년필과 색연필을 사용하다가 회사에 돌아와 기본으로 제공받은 빨간 펜으로 일을 하려니 영 일하는 맛이 들지 않았다. 결국 몇 년 전 생일 선물로 받고는 아껴두었던 나무 색연필을 챙겨 들었다. 이거지, 일하는 맛. 쫙쫙 줄을 긋는 맛.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기왕 일 하는 것, 회사에 돈 좀 쓰는 게 어떤가. 결국 일도 개인의 취향인데. 이 글을 읽은 모두는 회사에 어디까지 쓸 수 있나요? 펜? 포스트잇? 마우스??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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