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사발로 먹여 누가 죽었다느니 하던 뉴스가 나오던 2010년대 초,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해외에서 대학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개강 모임이다, 종강 모임이다 모임을 가지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한국이 아니었던 만큼 술에서 자유로웠고, 그래서 술은 '개인의 영역'에 그쳤을 뿐, 단체로 이뤄지는 무언가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열여섯의 나이로 대학에 갔기 때문인지 술을 말리는 사람은 있어도 마시라는 사람은 없는 천국과도 같은 대학생활을 했다. 아마도 대학 동기라기보다는 지켜줘야 하는 여동생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른 대학교로 편입을 한 후로도 술과는 거리가 먼 개신교 학우들과 어울린 덕에 모두 모여 술자리를 갖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한국식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처음 만난 것은 질풍노도의 대학교 4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던 만 십구 세, 스무 살 무렵. 이미 대학교 짬밥이 무르익어있던 내가 처음 '어허, 어디 스무 살이!'를 맞이했을 땐, '어허! 어디 이제 갓 2학년이 4학년 졸업반에게!' 하고 맞받아치며 부드럽게 상황을 회피하는 4학년 꼰대가 된 후였다.
사회인이 되기 전 졸업을 준비하고 있던 삐약이 대졸 신입 예정자가 '회식'을 두려워했던 것도 바로 이 이유였다. 술을 마시지 않는 데다가 한국식 문화를 잘 모르는 내가 한국 회사를 들어갔을 때 과연 부장님 딸랑딸랑 회식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도 첫 잔은 꺾지 않는댔는데. 무조건 원샷 이랬는데. 저녁 내 회식을 하고 집에 들어와 새벽에 일어나 다시 속이 풀리지 않은 몸을 끌고 출근하는 아빠의 뒷모습도 떠올랐다. 이런, 이게 K-직장인이 된 나의 미래인가? 망했다.
코로나를 기하여 많은 것들이 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회식이 줄면서 식당은 울었지만 적어도 회사원은 웃었을 것이다. 재택근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얼굴 보고 있는 회사 사람들과 분위기 맞추면서 술을 마시는 회식으로부터 가족 및 친구들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으로 이끌어주었다. 회식이 없어져서 일할 맛 난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반면에 회식이 사라져 '회사 문화'를 배울 기회가 사라진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말 MZ세대와 기성세대는 이렇게 생각이 다를까 잠깐 생각해보자니, MZ나 기성세대의 차이라기보다는 개인간 성향의 차이가 아닌가 싶었다. 2-30대가 사회에 많이 진출했긴 하지만, 40-50대도 그 나머지 반을 채우고 있을 것이고, 그들 중에서도 회식이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2-30대 중에서도 회식이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나도 그렇다. 아무리 회사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사람'과,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존경하는 선배와' 밥과 술을 먹는 일이 그렇게 싫을까. 그렇다면 이것은 회식에 대한 선호도 차이라기보다는 '사람 바이 사람'이 아닐까 싶다. 분명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분이라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해서 일주일에 3일, 사람이 못 걸어갈 정도로 1차, 2차, 3차 달리거나 갑자기 장기자랑 재롱잔치를 시키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인원 제한이 풀리던 날 밤 열한 시. 거리두기 완화 기념 회식이 끝난 후 드디어 집으로 간다는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일 년에 한 번, 가뭄에 콩 나듯, 직원들 좋아하는 양갈비로 저녁을 먹이거나, 일 년에 두 번 야근하는 날 중국음식을 시켜주던 첫 번째 직장을 생각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다 같이 먹자면서 떡볶이를 사 와 결국 한시간은 더 늦게 퇴근했던 두 번째 직장도 생각한다. 다 같이 모여 회식할 일이 생기면 가급적 1시에 간단히 모여 먹는 지금의 직장도 생각한다.
이쯤에서 생각한다. 회식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회식은 언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회식으로 인해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상사가, 우리의 회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