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MAMBA Feb 27. 2022

'이직'할 타이밍

처음 출근하던 날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난생처음 보는 학생들, 아직은 서먹한 동료들, 생소한 교재들.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나만 쳐다보고 있는데, 정작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은커녕 갈피도 못 잡고 있었다. 저 열 개의 눈동자를 만족시키려면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무작정 옆반으로 들어가는 동료 선생님을 붙들었던 것도 생각이 난다. "뭐... 뭐... 뭘 해야 해요?" 나의 흔들리는 동공을 봤던 것인지, 책 한 권은 3개월 분량이고, 매일, 일주일에 두 번, 세 번 하는 수업에 맞춰 하루에 수업할 분량을 나누면 된다고 했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1년 뒤 오늘, 나는 분명히 스페인에 가는 비행기에 타 있으리라 굳게 믿으며 첫 번째 해를 보냈다. 생각해보면 1년 차 때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내가 했던 것은 나의 선생님이 나를 가르쳤던 방식을 모사하고,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동료들에게 생각해보면 그 해에 나는 매일을 연구하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수업할 내용을 미리 읽어보고, 답안을 작성하고, 학생들에게 질문할 내용을 준비해놓는 일을 매일 저녁 반복했다. 테솔 수업을 수강하며 선배 강사들의 교수법을 공부하고, 나의 학생들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1년이 다 채워질 무렵, 나는 스페인이 아니라 한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대학원만 다녀야 하나, 대학원을 보류하고 일을 좀 더 해야 하나, 아니면 일을 하면서 대학원을 병행해야 하나, 그렇다면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동료 한 분이 내게 "1년 해 봐야 뭘 알아요. 2년은 해 봐야지."라고 말했다. 그래, 1년 해서는 뭘 알겠어, 대학원 나와서도 인생 답 없으면 학원이라도 차려야지. 그러려면, 뭐라도 잘 알아야 했다. 그렇게 2년 차로 접어들었다. 


나의 길을 찾는 길

2년 차에는 1년 차 때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교과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수업 때 어떤 물건들이 필요하고, 학생 한 명이, 한 반이 늘 때 어떤 것들이 늘어나야 하는지. 학부모 상담은 어느 정도의 주기로 해야 하고, 이맘 때는 어떤 것을 궁금해할지. 성적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고, 어떤 형식으로 공지를 해야 할지. 테솔 공부의 덕분인지 수업도 점점 편해졌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좀 더 쉽게 이해할지, 어떤 질문이 적합할지.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땐,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의견을 낼 수도 있게 되었다.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짜보기도 하고, 학생들 반 배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땐 아는 척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같은 곳에서 여러 해, 같은 학생들과 일을 하다 보니, 나와 맞는 학생도, 맞지 않는 학생도 알게 되었다 - 선생이 학생을 가리겠냐마는, 학생으로서 우리 모두가 겪었듯, 나와 맞는 선생도 있지 않던가. 


그리고 대망의 4년 차가 되었을 땐... 지옥의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같은 연령, 같은 레벨, 같은 책을 네 번째나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무슨 내용이 있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미 내 입이 줄줄 내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더 이상 수업을 준비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새로운 교재를 받아도 거기서 거기, 더 이상 긴장이 된다거나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다. 그냥, 매일이 똑같았다. 


창밖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언젠가는 보람찼던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모든 일에 권태로움이 느껴졌을 때, 문득 깨달았다. 떠날 시간이라는 걸. 


승진을 짱짱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너스나 연봉이 매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계속 똑같은 회사에 있는 것은 '본인의 무능력함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지금 회사가 평생 날 데리고 있어 줄 것도 아니고, 그래 줄 필요도 없는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나의 능력을 입증하고 승진을 하거나, 기회가 왔을 때 떠날 수 있는 실력도 갖춰야 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상황에 나를 놓아야 한다. 


이직할 타이밍. 타이밍을 잡는 것도, 잡을 수 있는 타이밍을 알아채는 것도 다 내 능력이다. 

이전 08화 근속연수를 결정하는 건 월급이 아닌 동료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