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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Feb 06. 2022

통근 시간과 삶의 질의 반비례성

내가 서울 가기를 주저했던 이유

주 40시간 월 - 금요일 근무하는 통상 근무자의 연평균 소정근로일수는 249일이라고 한다. 무급 휴무일인 토요일 (52일), 법정 휴일과 법정 공휴일 (61일), 약정 휴일을 365일에서 제외한 일수다. 365일 중에 약 7/10만큼을 회사에서 보내는 삶. 일하는 일이 너무 적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사장이거나, 정시퇴근이 보장되는 회사에 다니고 있거나, 혹은 회사 옆에 사는 사람일 것이다. 


토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하던 우리네 엄마 아버지 세대는 ‘그렇게 많이 쉬면서 뭘 징징대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컴퓨터가 꺼지는 일부 회사를 제외하면 주 40시간을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걸 감안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회사원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을까? 토요일은 자느라 바쁘고, 일요일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바쁘다면, 아무래도 출근 전, 퇴근 후 시간 정도가 아닐까. 


늦을 뻔


새벽 다섯 시 기상, 6시 버스 탑승, 7시 강남역 환승. 8시 반 출근. 평균 7시 반 퇴근, 8시 강남역 행 버스 탑승, 8시 반~9시 인천행 버스 탑승….


길지도 짧지도 않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울로 출근하면서 내가 꼭 해내지 않으면 안 됐던 통근 스케줄이다. 새벽 다섯 시에 기상해서 밤 11시에 도착하는 삶. 11시에 집에 와 저녁을 먹고, 또  바로 잘 순 없으니 새벽 1시 정도에 자고 일어나는 삶을 반복하다 보니 평균적으로 네 시간이 되지 않는 수면시간 때문에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후 환승 1회를 포기하고 2회 환승을 해야 하는 (그것도 수인 분당선에… 1호선에… 경의 중앙…) 지하철 출근을 택했지만 6시 11분에 첫 차를 타야 하는 데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어쩌다 운이 좋아 7시 반 차를 타고 9시 20분 정도에 역에 도착해서 집에 10시 전에 들어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메리트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대로라면 도저히 회사에 다닐 수 없을 것 같아서 회사 주변에 월세방을 알아보기도 했다. 회사가 있는 한남동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가 비싸니 조금 옆에 있는 이태원은 어떨까. 이태원은 한 30-40분 정도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부동산 앱과 포털 사이트 카페에 가입하고 매물을 알아보았다. 


보증금 1000/70, 3000/60, 5000/40. 어찌어찌 보증금은 마련할 수 있겠다 싶으면 월세가 월급의 1/4은 쉽게 넘겼고, 월세를 조금 내려면 비싼 보증금을 감내해야 했다. 회사 주변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그나마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월세방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면 그냥 인천에서 출퇴근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 몸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가늠하던 차에 MBA 생활에 전념하기 위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누구는 꿈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고, 매일 아침 출근 버스에 몸을 싣는 사람들도 그렇게 많은데,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할까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사실 1년여 동안의 서울 출근, 그리고 학교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추가된 학교-회사 간 한 시간의 교통시간이 더욱 힘들게 느껴졌던 것은 처음 직장이 워낙 가까웠기 때문에도 있었다. 차로 약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던 나의 인생 첫 직장. 등원 버스를 탔기 때문에 계약서 상 출근 시간인 9시 30분보다 한 시간 정도 이른 8시 30분에 집에서 나와야 했는데, 기사님께서 집 앞까지 데리러 오셨기 때문에 교통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됐다 (윈-윈이라고 생각했다). 넉넉잡아 7시에 기상한 뒤, 간단히 외국어 공부를 하고 아침을 먹어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신학기 준비를 할 때나 상담기간, 또는 핼러윈과 같은 행사기간에는 10시 넘어서 퇴근하는 일도 왕왕 있었지만, 통상적으로 6시 30분에는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퇴근할 땐, 차로 10분인데 대중교통 루트가 좋지 않아 1시간 이상 걸린다는 핑계로 항상 엄마가 데리러 오셨는데 그 덕에 저녁 식사 후 7시 반부터는 직장인이 아닌 인간 클라라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이 시간을 활용해 한국어 교원 자격증과 테솔 자격증, 그리고 석사 학위 하나와 학위 논문이 탄생했다. 서울에 출근할 때 잠에 빠져 2시간을 날리거나 눈이 빠져라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것과는 다른 삶이었다. 


MBA 과정이 끝을 보이던 작년 10월.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학교는 뒷전이 되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뿌리기 시작하는 학우들을 따라 나도 취업 전쟁에 뛰어들었다. 잡X리아니 행성이니 원 X드니 링ㅋ드인 이니 하는 취업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내가 제일 먼저 검색한 것은 바로 업계도, 직종도, 직무도 아닌 위치였다. 최대한 내가 사는 이곳 주변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다리만 하나 넘어가면 있는 신도시에는 여러 회사들이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나 하나 들어갈 곳은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서울보다 인천의 임금이 몇 십만 원 정도는 적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길에 뿌려야 하는 교통비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 세상 모든 직장은 서울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갈만한 일자리가 없었다. 기술이 필요한 기술직종 외에 마케팅, 매니지먼트를 할 수 있는 직무 자체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5년 전에 받았던 임금보다 적은 월급을 공시하고 있었다. 이제 MBA도 따는 마당에 직전 연봉보다는 많거나, 적어도 같은 수준의 연봉을 받고 싶었다. 그제야 내가 잊고 있었던 '내가 서울에 가려고 했던 이유'가 떠올랐다. 기회의 양과 그에 대한 보상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건강과 수명, 또는 기회와 임금, 둘 중 하나는 포기하자는 심정으로 다시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가 최소한의 환승으로 회사를 갈 수 있는지를 우선해서 보았다. 수인 분당-1호선만으로 도착할 수 있는 곳, 집 근처 정류장에서 광역 버스 한 번만 타고 갈 수 있는 곳, 또는 수인 분당선을 타고 1시간 정도 걸리는 수원 근처. 생각보다 여러 지역이 후보군에 올랐다. 5-6시간만 아니면 된다는 심정으로. 결국 왕복 3시간,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100% 재택근무형태를 차용하고 있는 회사를 선택했다. (사실 취업할 때만 해도 100% 재택이 될 줄은 몰랐다.)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따위 통근시간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정 뭐 하면 서울에 집을 얻으면 된다, 나약한 소리 하지 말아라, 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매일 5-6시간을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을 하며 보내는 것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금 같은 시간을 길에다 버리는 셈이고 (월-금에 매일 5-6시간을 투자하면 4년 동안 무려 자격증 두 개와 대학교 학위 1개, 대학원 학위 1개와 졸업 논문을 딸 수 있다), '볕이 잘 든다는 반지층'이나, 변기와 싱크대가 마주 보고 있는 집이라거나, 창문 없는 고시원에 살기 위해서 피 같은 돈 1/4을 허공에 날리는 것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창문 없는 고시원에 살기 위해 40만 원을 넘게 줘야 하다니... 미국에서 개인 화장실과 테라스 딸린 집을 48만 원 주고 살...) 


시간의 가치에 대해, 동일 시간이라면 얼마를 벌 수 있고, 어떤 것들을 해낼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해 주었던 6시간의 통근시간. 코로나가 끝나도 재택근무가 지속되는 세상이 되길 염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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