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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Feb 20. 2022

근속연수를 결정하는 건 월급이 아닌 동료다

"너, 내 동료가 돼라"

2016년 3월, 학생의 신분을 벗고 처음으로 직장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나는 그곳에서 장장 4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될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오퍼를 받았을 때 원장님에게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저 1년 있다가 스페인 갈 예정이라서요.' 그때 원장님은 '1년 동안 일하면서 돈을 모으고 나가는 건 어때?'라면서 나를 붙들었다. 그래, 1년 동안 통장을 좀 통통하게 만드는 것도 좋겠지. 1년 후에는 다시 나가자. 이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1년이 2년이 되고, 2년이 3년이 되고, 3년이 4년이 되었을 때, 그리고 떠나간 그곳을 생각하며 슬쩍 미소 지을 때마다 항상 내가 그곳에 그토록 오래 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에 잠기곤 했다. 


겨우 4년 갖다가 뭘 그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이직이 보편화된 지금, 4년이라는 시간은 1년 계약이라고 하면 4개, 최소 2년은 버텨야 새 회사에서도 경력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다수의 통념을 기반으로 하면 적어도 두 개의 서로 다른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므로 결코 짧다고만은 할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한 영어권 원어민이나 유학생들이 1년 정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임을 감안할 때, 4년이란 시간은 삐약이가 베테랑 선생으로 탈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나의 빛나는 20대 초반을 모두 쏟아 부운 그곳은 엄밀히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결코 '좋기만 한' 직장은 아니었다. 우선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었기 때문에 동종업계의 다른 강사들보다 낮은 연봉을 받았고, 강사 수가 적었기 때문에 몸이 아플 때에도 병가를 낼 수 없었다. 입사 첫 해에는 식사나 버스를 챙겨줄 보조 선생님의 수도 부족해서, 아이들과 매일매일 점심을 같이 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곳에서 4년을 보냈는지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제 겨우 햇수로 6년이 된 새싹 직장인이고, 겨우 세 개의 회사에 다녀봤을 뿐이지만 내 첫 직장은 가히 '천국'같은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건강검진 같은 복지도 없고, 휴가도 적고, 월급도 짰지만, 퇴근 후 학교에 가는 나에게 핫도그를 데워 먹이는 원장님과 생일날 따뜻한 밥을 먹이는 부장님이 있고,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에는 이미 일이 많은데도 너무 힘들면 일을 나눠주마고 하는 동료들이 있는 곳. 야근을 할 때는 따뜻한 밥을 먹이고(왠지 뭔가 다 밥인 것 같은데), 밤 열 시까지 행사 준비를 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던 곳. 다툰 적도 있었지만, 금방 풀 수 있었던 곳.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이 걸어갈 수 있는 곳. 


목표 달성하면 여행 간다고! 그 여행 한 번 가보겠다고 3년을 달렸다. 같은 방향으로, 같이!


엄밀히 말하면, 이렇게 친해지는 데 적합한 조건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유일한 20대, 그것도 20대 초반의 삐약이 었고, 다른 선생님들은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5년 차 선생님이었고, 또 부장님과 원장님은 50대와 60대였다. 대학 전공이 같다거나, 관심사가 같다거나, 하물며 식성이 같지도 않다. 세대도, 성별도, 국적도 다른 우리가 어떻게 하나의 가족이 되었을까. 


사실 정확한 답은 아직 모른다. 상호 존중의 자세였을 수도, 공동의 목표가 있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모두가 공유하고 있어서일 수도. 아니면 우리의 성격이 모두 '달라서'였을 수도. 내가 잘하는 것과, 그들이 잘하는 부분이 너무 달라서였을 수도. 이렇듯 여러 가설들 사이에서 단 한 가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나이도, 성별도, 성격도 다른 사람들과 공동의 목표 같은 것을 가지고 상호 존중하는 자세로 직무에 임했던 그다음 회사는 내게 '가족'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취업을 준비하면서 인터뷰를 거친 회사들이 내게 물어보고 또 내가 물어본 것은 '팀'에 대한 질문이었다. 회사는 내게 이전 회사에서 겪은 갈등 상황에 대해서 물었고,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었는지 그 해결책에 대해 물었다. 나는 팀원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팀의 문화는 어떤지, 등 팀 전반에 대해서 물었다. 회사는 내가 일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월급? 첫 번째 회사보다 많은 월급을 주었던 두 번째 회사에서 나는 '덜' 행복했다. 복지? 역시 복지가 전무했던 첫 번째 회사에서 더 많이 웃었다. 직무? 내가 생각했던 '회사 일다운 일'이 그렇게 재밌지는 않더라. 


그때, 송별 파티를 하다가 헤어지는 아쉬움에 다섯이서 끌어안고 엉엉 울었던 차가운 1월의 밤이 떠올랐다. 학생 수 두 명인 반이 넘쳐나던 시기를 이겨내고 정원을 꽉꽉 차게 만들었던 순간도 떠올랐다. 처음으로 적자에서 흑자로 넘어갔을 때 환호했던 순간도 떠올랐다.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내 일처럼 환호하던 얼굴들도 떠올랐다. '넌 꼭 박사가 돼. 나중에 결혼해서 남편 양말이나 빨고 있으면 내가 너 죽여버리러 갈 거야.' 하고 단호한 얼굴로 얘기하던 동료의 얼굴도 떠올랐다. 


"저는.... 동료요!"


내가 회사 생활을 하는데에 제일 필요한 것. 월급이 아니라 동료. 그럼...


"너, 내 동료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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