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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Feb 25. 2022

2022년 일곱 번째 주

하기 싫은 것을 그만할 용기

일곱 번째 주를 보내며,


내 인생, 가장 조용했던 밸런타인데이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한 때 일본에 다녀오면 꼭 사 온다던 로*스가 떠오르는 생초콜릿을 입안 가득 넣으며 시작한 일곱 번째 주. 어느덧 재작년이 된 2020년 밸런타인데이에는 회사 사람들과 나눠 먹을 초콜릿 꾸러미를 만들었었는데. 올해 밸런타인데이는 밸런타인데이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5시 즈음, 매니저님이 팀 채팅창에 올린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아, 그렇군' 한 것이 전부였다. 



생각해보면 2020년은 이런저런 행사란 행사는 다 챙기고, 두 달에 한 번씩은 사탕 쇼핑을 다녔던 영어유치원에서 갓 나왔을 때라 그런지, 이런 것들을 유난히 호들갑스럽게 챙겼던 것 같다. 2016년부터 2020년 초까지, 사회인이 되고 난 뒤 매해 모든 직원들과 '작은 기쁨'을 주고받았었는데 (원장님이 챙겨주신 화이트데이 사탕이 제일 맛있더라), '찐 한국 회사'에 들어가면서 나만 '특이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재택근무는 오예이지만 (서울 가기 싫은 인천러) 다시 달콤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상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어서 와, 이런 충격은 처음이지?

타이어 펑크를 대하는 운전 경력 9년 차의 자세 


한국 나이로 스무 살이 되고 한국을 찾았던 그 어느 해 여름 (이라고 써도 9년 차면 뭐) 딴 1종 보통 면허. 면허를 딴 이래로 항상 운전은 나의 몫이었기 때문에 엄마 혼자 밖을 나갈 때면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나도 초보 시절엔 사람과 차를 제외하고 여기저기 많이 박아 봐야 운전이 는다는 엄마의 격려에 힘입어 주차장 벽에 뒷문짝을 찢고, 눈길 고속도로에서 뒤차에 받쳐(내가 아니다) 뒷 범퍼를 거의 종잇장처럼 구겨가며 운전을 배웠었지만, 이제 '자기가 제일 잘하는 줄 아는 마의 9-10년 차 구간'에 접어들면서 하룻강아지 시절을 잊어서인지 '다녀올게'가 유난히 불안하게 느껴지는 중이다. 


2008년부터 탄 가족 차가 13년 차에 접어들면서, 이대로 더 끌다간 매해 수리비로 들어가는 돈이 새 차 할부 값보다 많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장만한 새 차. 엄마에게 호기롭게 '내가 내겠노라' 호언장담하며 2년 할 부를로 차를 구매하고 아직 4개월치의 은행 지분을 가지고 있는 나의 첫 붕붕이라서 그런지, 앞 범퍼에 난 개미만 한 스크레치도 왜 그렇게 잘 보이고, 좌석 밑으로 들어가는 과자 부스러기는 왜 이렇게 많은 것 같은지. 물건을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타입이라 노트에 잉크가 살짝 번진다거나, 가방에 조그마한 얼룩이 생겨도 나 자신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혹여 차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경악과 흥분을 채 감추지도 못하고 펄펄 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은 빨리 찾아왔다. 일에 열중하고 있던 목요일 오전, 방금 전까지 '집에 가는 중이야' 하고 전화한 엄마에게서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서둘러 전화를 받았더니 세상에, 타이어가 터졌단다. 집에 오는 길에 내가 좋아라 하던 도넛이나 좀 사 갈까 싶어서 차들이 서 있는 가장 바깥쪽 길을 천천히 가다가 보도블록이랑 너무 가까이 멈추는 바람에 펑하고 터졌다면서 잔뜩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엄마. 


3년 차 정도 되었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에 함께 흥분해서 어쩌지 어쩌지 발을 동동거리며 정신을 못 차렸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달랐다. 상상 속의 나는 2년도 되지 않은 새 차라서, 아직 할부 값도 다 내지 않은 차라서  함께 소리를 지르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는데, 현실의 나는 조금 더 차분한 자세로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하고, 위치를 파악하고, 근처 타이어 교환센터에 연락하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사고 지점이 코스 x코 근처라는 걸 파악하고는, 현재 지점에 타이어 수리 당일 접수가 가능한지, 레커차로 바로 갈 수 있는지, 우리 차종에 맞는 타이어가 있는지, 비용 및 지불방식까지 정하고 있었다. 


혹시 나이를 먹어서일까, 여러 경험이 쌓여서 경험치가 높아졌기 때문일까. 문득 회사가 '경력자'를 선호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바로 '위기 대처 능력'이 아닐까. 


항상 나는 나이만 먹지, 아이인 것만 같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크고 있는 모양이다. 



싫은 것을 그만할 수 있는 용기. 


좀처럼 읽히지 않는 책을 끝까지 붙들어 본 적이 있는가? 얼마 전까지도 나는 정말 한 페이지 넘기기가 너무나도 힘든 책을 기왕 시작했으니 끝을 무조건 봐야 한다는 일념 하에 붙들고 있다가 독서에 대한 흥미까지 잃어버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한 번 시작한 것을 놓기가 참 어렵다. 특히 그것이 책과 독서에 대한 것이라면 더 그랬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주인공이 힘들어하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편이다. 뭔가 빌런의 속임수에 넘어가 일신상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을 참을 수가 없다. 착한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다거나, 대리 수치심 같은 것을 느껴서가 아니라, 한 가지 상황에 놓이면, A, B, C까지 여러 상황을 예상하고, 문제 발생 시 해결 방안까지 생각해 놓아야 (그렇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낙관주의자라기보다는 비관주의자이다) 안심이 된다. 그래서, 드라마는 꼭 다음 이야기를 봐야 직성이 풀리고, 다음 이야기를 보지 않으면 다음 편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찜찜한 마음이 이어진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땐, 항상 결말을 알아야 '했다'. 세상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지 않는다니,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북 저널에 호기롭게 책의 제목을 쓰고, 작가의 이름을 쓰고, 출판사 정보를 기록하고, 첫 몇 장을 읽었다. 아, 또 자기 계발서였군. 흐음. 음. 하고 보다 보니 내가 페이지를 못 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섯 시나 여섯 시 반에 퇴근을 하고 나면,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외국어 공부와 같은 취미생활을 하고 나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쥐꼬리만 한 독서시간이 남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짬에 짬을 내어 독서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너무 싫은 책까지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세상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터였다. 가뜩이나 부족한 여가시간에 내가 너무 싫은, 한 장도 넘기기 힘든 책을 읽다니. 갑자기 나의 궁금증/신념보다 내 시간에 대한 소중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돼, 눈을 질끈 감고 빈 공간에 다음의 문장을 썼다. 


"완전 별로라서 결국 읽다가 포기." 


앞으로 싫은 것은 하지 않는 의지와 결단력을 가진 어른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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