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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Mar 11. 2022

2022년 아홉 번째 주

드디어 3월이 왔다. 

아홉 번째 주를 마치며, 



이제 얻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 

난 맨날 잃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해. 근데 넌 얻을 것에 대해서 생각하더라. 

나도 이제 그렇게 해보고 싶어. 

- 스물다섯스물하나 중, 



오랜만의 외출


3월이 되고 맞이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바로 접종 유무에 상관없이 큐알코드 인증 없이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나는 백신 미접종자다. 안티 백서가 아니라 백신을 '못 맞아서' 안 맞은 사람이다. 작년 7월까지는 어떻게든 잔여백신을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썼었는데, 마침 그때, 조혈모세포 은행에서 연락이 와 조혈모세포 기증 의향이 있냐고 물었고, 백신을 맞지 말고 기다려달라는 권고에 따라 그즈음부터 잔여백신을 찾기 위한 노력을 중단했었다. 환자분의 상태가 좋아지면 검사 예약을 잡았다가, 나빠지면 또다시 대기하기를 반복하다가 8월이 되고, 9월이 되고 , 10월이 지났다. 


11월에 들어 결국 기증이 취소되고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즈음, 특정 약물에 대해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핑계라고? 사람 얼굴이 마치 풍선껌처럼 부풀고, 두들겨 맞은 것처럼 빨개지고, 가슴이 답답해 숨이 잘 안 쉬어져서 헉헉대는 걸 보고 싶다면 그냥 아무도 모르게 그 약을 나에게 먹여봐도 좋겠다. 지나가던 강아지도 저게 뭐야, 할 정도로 '헉'하는 소리가 나올 걸? 한번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또 어떤 약에 이렇게 반응할지 몰라, 백신을 맞지 못했다. '어차피 위드 코로나 하는 걸 보니 금방 괜찮아질 거야. 너는 맞지 마.' 엄마가 말했고, 나는 수긍했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아픈 곳이 있었으니, 백신 맞고 잘못돼도 어릴 때 아파서라고 그럴 수도 있어.' 이미 백신이나 코로나로 인한 예기치 못한 사고의 후속 조치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이었다. 


그리고 맞이한 12월, 4단계, 그리고 백신 패스의 도입으로 12월부터 3개월의 '칩거생활'이 시작됐다. 회사에 출근하면, 점심시간에도 사무실에서 배달을 받아 밥을 먹어야 했고, 하루 종일 내 방에서 근무를 하고 난 뒤에도 집에서 밥을 먹었다. 카페에서의 힐링타임은 (코로나 3년 차니까 새롭지도 않지만) 꿈꿀 수도 없었고, 맞고 기도가 부어서 다시 병원으로 실려가는 한이 있어도 그냥 맞을까, 아니야, 어떠 약이 괜찮은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맞을 수 없어가 반복됐다. 백신 패스를 면제받기 위해 의사의 소견서를 받는 것도 그렇게 쉽지 않았다. 겨우 약물에 대한 부작용 반응일 뿐이라서. 내 주변엔 지병이 있는 사람들도 몇 달이 걸린다고 해서 그냥 집에만 있다고 하길래. 




그렇게 3개월이 흐르고 매일 집에 있는 것도 익숙해질 즈음 3월 1일이 되었다. 혹시 아직도 백신 안 맞으면 못 먹는다고 막아서는 것 아닐까, 더러운 미접종자라고 내쫓는 것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먹고 싶었던 스테이크 집으로 향했다. 3월이 되었으니까, 아주 화려하게 시작할 거야, 하고 탕진각을 세웠다. 호기롭게 리소토를 주문하고, 스테이크를 썰고, 디저트까지 주문했다 (나는 디저트를 잘 먹는 사람이 아닌데). 집에 마당이 없었다면, 엄마가 요리를 잘하지 않았다면, 배달음식도 잘 먹지 않는 내가 3개월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포장해와서 차에서 먹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겨우 밖에서 밥 먹는 것뿐인데, 세상이 바뀐 것 같았다. 날로 20만 명을 넘기는 3월 첫 주였고, 내 주변 많은 사람들이 확진되는 와중에도 외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너무 달고 맛있었다. 겨우 밥 먹는 걸로 행복을 느낄 줄이야. 어쨌든 빨리 아무 걱정 없이 밖을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드디어 3월, 봄의 시작


아직 꽃샘추위가 남긴 했지만, 2에서 3으로 바뀌었다고 날이 퍽 따뜻해졌다. 마지막으로 출근했던 것이 1월 말이었고, 2월이 지나 3월이 오는 동안 하루 종일 집에 박혀 해가 질 때나 나왔었으므로, 봄이 이만큼이나 가까이 왔다는 것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점심때 우연히 소포를 가지러 마당으로 나왔다가 내 얼굴 위를 감싸는 따뜻한 햇빛이 너무 반가워서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제는 꽃이 필 날도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다가올 봄을 느끼면서. 


햇빛이 많이 따뜻해졌다.


개학 없는 3월


지난 몇 년 동안 나에게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 날은 1월 1일이나 음력설이 아니라 3월 2일이었다. 2016년에는 선생이 되어 새로운 학년도를 준비했고, 2017년도에는 대학원을 입학하면서 21년까지 장장 6년 동안 3월 2일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올해 3월 2일. 뭔가 시작되어야 할 것 같고, 뭔가 정신없어야 할 것 같고, 뭔가 전화를 많이 돌려야 할 것 같은 3월 2일은 평화롭디 평화롭게 흘러갔다. 괜히 나의 핸드폰에 아직도 남아있는 학생들의 사진을 들춰보면서 추억여행을 했다. 20대의 적지 않은 부분을 함께했던 '학생'이라는 정체성과 이별해야 할 시간. 


3월이 되면서 2022년도 1/6 만큼이 지나갔다. 이제는 합법적으로(?) 새해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끝나버린 것만 같다. 그래도 아직은 1분기니까. 나머지 3개 분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초석을 잘 다질 수 있는 기회들로 3월을 채워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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