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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Mar 27. 2022

2022년 열한 번째 주

열한 번째 주를 마치며


곽윤기도 하는데 내가 뭐라고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튀는 핑크색 머리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은 곽윤기 선수.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김연경 선수라던지 곽윤기 선수처럼 스포츠 선수들이 나오는 경우 굳이 시간을 쪼개 본방사수를 하는 편이다. 본방사수뿐이랴, 유튜브에서 클립도 찾아보고, 하나하나에 과몰입하는 편이다. 왜 그러냐고? 뭔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인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좋은 자극을 받고 싶어서라고 해두자. 


김아랑 선수도 그렇고 곽윤기 선수도 그렇고 누구보다 빠르게 나라면 침대 위에 붙어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할 시간에 운동을 뿌시는 모습도 멋있었지만,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부분은 바로 곽윤기 선수의 가계부였다. 김아랑 선수 왈 캡슐 커피 한 캡슐 내려 먹는 것도 돈을 받는다더니, 차량 일지까지 쓴단다. 모르긴 몰라도 나보다 훨씬 많이 버는 것은 기정사실인 곽윤기 선수가 차량일지를 쓰신다는데, 내가 뭐라고 알량한 월급에서 고작 몇 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쓰는 것을 귀찮아했을까. 곽윤기도 하는데, 내가 뭐라고. 


20대 내게 내 집 마련은 평생에 턱도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 풍족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좀 더 착실하게 가계부를 써야겠다. 돈이 나가는 곳을 아는 것과 전혀 감도 못 잡는 것은 천지차이니까. 



쓸 만한 인간


이 얼마나 중의적인 제목인가. 나는 배우 '박정민'이 이렇게 맛깔나게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인 줄 몰랐다. 와, 정말 쓸만한 사람이 아닌가. (물론 개인차는 있지만)


박정민 배우를 처음 본 것은 영화 '동주'에서였다. 동주 역에 과몰입을 했었기 때문인지 나중엔 조금 얄밉고 미워지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그다음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였다. 다른 의미에서 또 많이 놀라고 말았다. 어? 소화를 잘하지 못하면 정말 어려울 수 있는 배역인데, 저걸 저렇게 소화한다고? 대단한걸? 


학벌에 대해서 듣고는 또 더 놀라고 말았다. 고대에 들어갔다가 한예종으로 간 케이스라니. 공부던 예술이던 일단 탑을 찍는구나. 아, 학벌이 좋으면 원래 저렇게 글을 잘 쓰나? 쓸데없는 생각도 해 봤다. 하긴, 글을 잘 쓰는 이유는 생각 정리를 잘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군더더기 없는 문장 전달력을 가진 거겠지? 물론, 이런 글에 대한 취향은 정말, 순전히, 개취다. 



구별과 차별이 없는 세상


요즘 나의 한 주는 눈 떠서 베이글에 버터를 발라 먹고 하루 종일 일을 하다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일과를 마치고 잠을 자는 것. 녹초가 된 몸으로 저녁밥을 먹는데, 이렇게 곧 자러 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무작정 30분 뒤에 시작하는 영화표 두 장을 샀다. 뭔가, 햇빛도 못 쬐고 일하는 게 왜 이렇게 억울한지. 일 해주는 대가로 월급이란 걸 받는데도 말이야. 


이날의 영화는 바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였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그리고 농담에 대한) 웃음 장벽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 어지간하면 재미있고 어지간하면 좋다고 하는 편인데, 엄마의 경우 (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괜찮은 영화와 별로인 영화를 아주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바로, 영화를 보다가 자리를 비우느냐, 안 비우느냐의 차이다. 


중간에 아 이쯤 되면 사연이 나오겠지, 이쯤 되면 문제가 터지겠지 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한국 영화를 봤고, 봐 왔던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롭지 않은 한국 영화의 스토리 진행 방식이었을 뿐이다.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한지우가 멋있었고, 안타까운, 그리고 외로운 아이를 티 내지 않고 품어주는 이학성도 멋있었고, 처음의 접근법은 미숙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보람이도 멋있었다. 


사실 수학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나름 경영학도로써 통계나 투자 과제를 할 때 수많은 숫자들 사이에서 유영하며 정답을 찾아내고 그것을 증명해 낼 때의 기쁨을 느껴봤기에, 오일러 공식에 푹 빠져 수학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이박사의 모습이 공감 갔다. 


북한은 가 본 적(이 있을 리가) 없지만, 한국도 가히 꽃밭만 펼쳐진 곳은 아니다. 자유가 있는 만큼 경쟁이 심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을 일삼는 것 말이다. 영화에선 이렇게 약자에 대한 차별을 여러 번 이야기한다. 친구라는 말에 떨떠름해하는 룸메이트나, 굳이 사배라고 칭하며 라벨링 하는 보람. 한국에 들어온 북한 사람과 보호라는 명목 하에 감시하는 한국인과 같은 구별과 차별 말이다. 


영화에서 수학은 그런 구별이나 차별이 없는 단 한 가지 세상이었다. 어린 열일곱 살짜리 남자아이와 중년 남성 사이에 유대감이 형성되고, 남한의 수학자와 북한 수학자는 하나의 추억과 우정을 기념하고, 음악과 학문 사이의 간극이 메꿔지는 그런 세상. 


수학만이라도 구별과 차별이 없다니 얼마나 멋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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