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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May 01. 2022

동기가 떠났다

퇴사의 이유

동기가 떠나던 그날도, 나는 평소와 같이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 주에 일이 많이 몰려 벌써 일주일 정도를 여덟 시에서 여덟 시 반 까지 일하고 있었기에 ‘퇴근했냐’며 물어오는 동기에게  그러는 동기님도 여섯 시에 온라인인 걸 보니 아직 퇴근 전 인가보다 라고 대답하였다. ‘평소와 같이’ 야근하고 있다고 대답하는 그에게 왠지 모를 싸함이 느껴졌다. 마치 두 번째 회사에서 돌연 퇴사를 선언하고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하던 과장님의 인자한 미소를 마주했던 순간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저 퇴사하기로 했어요.” 짧은 한 마디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쨌든 직장인’을 쓰게 된 계기이자 생에 처음으로 가져보는 입사 동기였다. 비록 대학원 졸업으로 인해 한 달 정도의 차이가 나고, 재택근무로 인해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함께 온보딩 기간을 보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굳이 얼굴을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심적으로 많은 의지가 되고 있었기에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이 현실인가 하고 고개를 몇 번 붕붕 저어 보기도 하고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떠 보기도 했다. 놀란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언제가 마지막 날이냐고 물었다. “오늘이요, 지금 맡은 일 마치면 끝이에요.” 세상에. 또다시 심장이 쿵 바닥으로 떨어졌다.


퇴사하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은 바로 나의 두 번째 직장에서였다. 응당 직장인이라면 가슴에 사표 하나씩은 품고 사는 것 아니냐고, ‘에이 X 같은 회사, 내가 때려치우고 만다’라는 말을 밥먹듯이 하지만, 사실 진짜 퇴사 각을 세운 사람들은 ‘입가에 인자한 미소를 띤 채 자비로운 부처님 얼굴을 하고 있다’ 던 짤이 빈말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것을 실제로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이미 굳게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타격감이 없기 마련이다. 고성이 오가기도 하고, 회유하는 조용한 메시지들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결국 과장님은 우리의 곁을 떠났다. 잘 지내라는 메시지 하나 만을 남긴 채.


“First Impression Matters”. Then, how about the ‘last impression’?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A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신이 A를 처음 만났을 때 그/그녀는 산발한 머리에 다크서클은 무릎까지 내려와 있고, 머리는 얼마나 감지 않은 것인지 기름이 잔뜩 껴 있었다고 하자. 당신을  그럼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아마도 그다지 청결하지 않고, 일에 치여 있으며, 일을 제때 끝내지 못해 퇴근을 하지도 못하고 애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A가 회사 주가가 절반을 날아가게 할 뻔한 사건을 처리하느라 집에도 가지 못하고 3일 내내 회사에서 불찰 주야 일을 하느라 머리는커녕 잠도 못 잔 상태라는 걸, 그리고 그 노력으로 회사의 위기를 이겨내게 한 주체라는 걸 알고 있다면? 당신의 평가는 처음과 다를 것이다.


나는 첫인상보다 ‘끝 인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끝 인상’은 커뮤니케이션 전공생으로서 내가 배운 가장 유용한 것 중에 하나이자, 앞으로 내 인생에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칠 가장 훌륭한 개념 중에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중요성이 크다 (진짜다). 처음 마주한 모습으로 관계의 시작이 결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첫인상은 향후 만남이 지속되면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상호 간에 제공한다. 하지만 마지막 모습은 더 이상의 수정 기회가 없다. 한번 끝나버리면, 그걸로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내 인생 최초의 퇴사는 사실 4년 동안 몸 담았던 학원이 아니라 학생 시절 몇 개월 몸 담았던 식당에서의 서빙 알바 자리였다. 처음 사장님을 뵈러 가던 날이나, 처음 손님을 받았던 순간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마지막 순간, 마지막 음식을 내어 가던 그 찰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저의 마지막 손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던 순간. 좋았던 일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순간이 오면 힘들었던 기억이 사라지고 다 아득하고 아름다운 추억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잘’ 헤어졌다. 어떻게 ‘잘’ 헤어졌는지 아느냐고? 수개월 뒤, 식당을 접고 마트를 시작한 사장님이 사업이 안정될 때까지만 함께 일을 해 달라고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나의 끝 인상이 거지 같고, 멍청이 같았다면 그런 연락은 오지 않았을 테니까. 


나의 두 번째 퇴사는 4년간 몸 담았던 학원을 나오던 날이었다. 인수인계 차원에서 새로운 선생님이 나의 퇴사보다 3주나 먼저 들어왔고, 짐도 하나하나 조금씩 빼가며 이별을 준비했었는데. 2019년 학년도의 첫 날을 앞두고 다 같이 모여 햄버거를 먹었던 그곳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차가운 1월의 밤, 개미새끼 하나 지나가지 않던 새벽에 텅 빈 택시 몇 대를 그저 보내며 부둥켜안고 울던 나의 마지막 순간. “Don’t go, just stay with us”라는 말이 나의 4년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이별은 서울의 회사였다. 선생이 아닌 ‘회사원’으로 처음 살았던 곳. 통근 시간이 무려 여섯 시간이고, 학업과 병행하며 하루에 세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무렵. 겨우 신입이라 크게 중요한 일을 하지도 않았고 그저 하라는 일만 했던 나의 첫 번째 회사원 생활. 이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갑자기 차오르는 짜증에 회사로 향하는 광역버스 앞에서 들고 있던 모든 짐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모두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던 아쉬움이 절절 넘치는 퇴사가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새벽 5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밤 열한 시에 돌아와 새벽 두 시까지 학교 과제를 하다가 피곤이 풀리지 않은 몸으로 다시 출근 버스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후련함.


회사로 가기 위해 광역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퇴사를 결정하고 짐을 챙기러 서울로 향하던 나의 입가에도 과장님과 같은 미소가 띄어 있었을까? 왠지 가벼운 발걸음. 가방이 터져라 짐을 쑤셔 넣어도, 이걸 어떻게 다 들고 집으로 가나 걱정스러울 정도였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미소가. Last impression이고 뭐고 이제 나는 살았구나, 드디어 잠을 잘 수 있겠구나 싶은 그 순간이.


퇴사 후에는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더라 - 월급이 없는 삶이 어떤 건지 체감하기 전 까지는.

퇴근 시간을 넘겼지만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던 동기와 나.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사무실 출근을 하던 12월에는 함께 대화라도 나눌 수 있었는데, 재택근무만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보다는 업무에만 집중하게 됐던 3월. 짧은 대화에서도 회사 업무와 방식이 얼마나 그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지 여실히 느꼈기에 이러다 얼마 못 버티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웠음에도 가끔 안부 메시지를 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수 있던 일이 없었던 하루하루. 그리고 그 갑작스러운 퇴사에 동기와 회사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는 순간. 그리고 그 소식에 속절없이 혼란스러워진 나의 마음.


귀여운 물건이 가득하던 책상이 어떻게 비워졌는지, 회사를 떠나는 동기의 얼굴이 어땠는지, 간간히 메일함을 채우는 퇴사 메일을 작성하는 선배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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