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8시간, 52시간, 40시간, 그리고 35시간.
새로운 직장에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미국의 심장인 뉴욕시에서 주 4일제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기사를 보던 매니저가 뉴욕에 본사를 둔 우리 회사도 그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들도 주 4일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진짜 그렇게 되겠냐만은) 입사 후 2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지만 언젠가 4일간 일하게 될 날을 잠시 상상하며 행복의 미소를 지었다. 아직 52시간도 정착되지 않았는데, 주 4일이라니.
주 4일제를 논하고 있는 지금이지만, 아직 주 6일제로 살던 2000년대 초반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12시에 끝날 지언정 토요일에도 학교를 가야 했던 그때. 우리 학교는 매주 토요일 학교를 가는 대신 격주로 재택수업을 진행했고- 지금처럼 줌으로 실시간 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고, 동영상을 보고 클릭 정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컴퓨터를 배워야 했다.
고학년이 된 후에는 가정 체험학습 같은 걸로 대체되었는데, 학교에 가는 대신 박물관이나 행사에 참여하고 그에 대한 내용을 작성해 학교에 제출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던 2008년경에는 모든 학교에서 격주로 등교를 하게 되어 '놀토'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부터 그랬는지도)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도 내가 등교할 때 출근했다가 점심 즈음 퇴근하여 돌아왔다.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려서 실제 현장이 어땠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반나절, 그리고 하루의 휴일을 더 얻게 된 결과로 매 주말마다 훌쩍 떠나 소비의 신이 강림했던 기억에 미루어 볼 때, 새로운 산업이 부흥했으리라 감히 예측해볼 뿐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때는, 주 5일제를 실시하면 죽는 줄 알았던 대한민국 사회가 6일제에서 5일제로 넘어가기 전 겪어야 했던 진통과도 같은 시기였으리라. 6일제에서 5.5일제로, 그러다 5.25제, 5일제로 정착하는 과정이었던 셈일 것이다. 하루 종일 일하던 토요일에서 몇 시간 줄여보고, 매주에서 격주로 줄여보고, 그렇게 5일로 줄였는데도 실보다는 득이 더 많았으리라. 우리 사회 전체가 노동 일수의 감소로 인해서 손해를 봤다면, 주 5일제가 정착될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때의 '놀토'는 지금 몇몇의 회사에서 금요일 또는 개인 지정 요일에 일찍 퇴근하는 4.5일제를 도입한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도 해줘라 4.5일제... 본사 파이팅...!)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3월 어느 날, 오빠와 직장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인터넷에서 지금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된 윤석열 님이 '120시간'을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언급을 했다고 해서 52시간이 이제야 적용되나 했더니 80시간으로 회귀하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고 말하자 - 물론 조금만 더 알아보면 주 120시간을 일하라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더 몰아서 일하고 풀타임 <-> 파트타임을 전환할 수 있게 해 노동자에게 근로시간 선택권을 부여하겠다는 뜻이라고 하니 주 120시간을 일하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 오빠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라떼는 68시간이었어' 라며 푸하하 웃었다. 주 68시간이라니, 하루에 평균 13.6시간, 한 시간의 점심시간을 제하더라도 12시간은 족히 넘는 노동을 해야 하는 시대를 다시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그러고 보면 나도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직장에 들어갔을 때에는 주 68시간제의 시절에 살고 있었다. 주 '52시간'이 도입된 것은 그로부터 2년 여가 지난 2018년으로, 직원의 수에 따라 대기업, 중소기업, 5인 미만 기업 등 실제 도입 시기가 다르게 적용되었기 때문에 사실 꽤나 최근까지도 68시간 시대 아래 산 셈이다. 다행히 첫 번째 직장은 행사가 있거나 성적표 작업을 해야 할 때 등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6시 30분에는 퇴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두 번째 직장은 달랐다.
계약서 상에서는 6시 30분이 퇴근 시간일지 몰라도 8시, 8시 반이 넘는 날도 왕왕 있었고, 고작 사원 나부랭이였던 나의 상황은 그래도 나았지만, 나의 상사들은 오후 8시, 9시에 또 다른 회의를 시작하곤 했다. 8시 반부터 20시 반 까지만 계산해도 이미 주 5일, 60시간을 일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법적으로 쉬게 하는 날이 너무 많다고, 토요일, 일요일에다가 빨간 날에도 쉬고, 대체 공휴일이니 뭐니 없던 휴일도 만들어주니 도대체 일은 누가 언제 하는 거냐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이럴 수가, 이미 5시에 일어나 2시간 반 동안 지옥철에서 사람들에 끼어 겨우 직장에 도착해서 밤 10시 반에나 집에 돌아가는 삶을 살고 있는데, 그보다 더 긴 노동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취업하기까지 약 1년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주 52시간은 모든 사업체에 적용되었고, 취업 정보를 위해 제일 많이 들어가 봤던 어플 중 '원티드'에서는 아예 '주 4일제 회사'들만 모아놓은 탭이 미래 근로자들을 환영해주고 있었다. 이제 주 52시간 일하는데 무슨 주 4일제, 말도 안 되지,라고 하고 싶었는데, 몇몇 개발자 지인들이 주 4일제의 삶을 이미 살아가고 있었다.
주 4일제 도입 방식에 대해 (혹은 재택근무에 대해) 많은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혹자는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가 포인트라며, 4일 일하는 대신 소득이 줄어든다면 의미 없는 일이라고 들 말하고, 같은 맥락에서 5일 치 일을 4일에 몰아서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더 치열할 미래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또 혹자는 20% 삭감을 감안해서라도 4일을 일하겠다는 사람도 (혹은 20%를 삭감하고 재택을 한다는 사람도) 있다. 모두의 의견이 다 납득 가능하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여러 회사들은 어떤 방식을 택할지, 어떤 논문들이 나올지, 잘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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