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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Apr 23. 2022

재택근무, 해 보니까 이렇습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4월 18일부터 2020년부터 시작된 거리두기가 모두 해제되었다. 마스크 쓰기는 계속하고 있지만, 이제는 네 명이니 여섯 명이니 여덟 명이니 하는 인원 제한과 10시 12시 하는 영업시간 제한이 모두 사라졌다는 뜻이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영화관에서 팝콘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10만 명에 육박하는 확진자가 나오는 형국인 데다 옆집도 걸리고 앞집도 걸리는 시국이라 풀어주는 것이 마냥 반갑지도 않다. 어디를 나가 누구를 만나는 것조차 부담이 되는 요즘이다. 


내 인생 세 번째 직장에 입사하면서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은 바로 '재택근무'였다. 입사 첫날, 재택근무 프로그램을 세팅하기 위해 거대하고 무거운 내 15인치 노트북을 들고 서울로 향했다. 일주일에 두 번, 대면 출근을 한다더니, 미친 듯이 늘어나는 확진자 수로 인해 두 번이 한 번이 되고, 구정 연휴를 기점으로는 100% 재택근무로 전환이 되었다. 회사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같은 공간에 있었던 우리들 모두가 일하는 중간에 보건소로 달려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웃픈 일도 이때 발생했다. 12월부터 지금까지 5개월 동안 나의 방은 사무실이 되고, 나의 마당은 카페테리아가 되었다. 


광화문에 왔다고 아직 인천에 가기 전이면 함께 저녁 먹자는 사람들에게 재택근무 중이라 인천이라고 대답하면, 백이면 백 부럽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확진자 수가 제일 많은 시기에 서울의 대다수 직장인들은 아직도 대면 출근을 하는 모양이다. 영업직처럼 반드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직종은 그렇다고 해도, 노트북 하나와 짱짱한 인터넷만 있으면 일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텐데, 왜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국에도 꼭 대면 출근을 하는 걸까? 


1. 소속감 부족


나의 매니저가 제일 걱정하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것. 소속감이 없다거나 외롭다거나 하는 일이 있지는 않냐고 종종 묻지만, 매일 회사의 일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어떻게 소속감을 높일 수 있을까. 이메일 아래에는 내가 누구요 나의 소속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고, 나를 찾는 모두도 내가 '어디의 누구'이기 때문이지 회사의 직원이 아닌 나를 찾는 것이 아니니. 


2. Training 시 즉각적인 피드백이 불가함


나처럼 온보딩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면 공감할 일. 사실 사수가 옆에서 가르쳐주는 것보다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는 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내가 허튼짓을 하고 있으면 '어..?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하고 바로바로 고쳐주거나 사수는 어떻게 일을 하는지 직접 보고 배울 기회가 없어 그런 점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바쁜 사수에게 틈이 날 때를 지켜보다가 눈치껏 물어봐야 하는 것보다 메일이나 메시지를 남겨 놓는 편이 훨씬 편하다. 


그 외에도 재택근무는 많은 장점이 있었다. 


첫째, 체력이 좋아졌다. 


2020년 두 번째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나는 자그마치 4개의 선을 넘나들어야 했다. 수인 분당선에서 인천 1호선, 공항철도, 그리고 경의 중앙선, 무려 네 개의 지하철을 타고 2시간 30분을 넘게 가서 20분을 더 걷고 나서야 겨우 회사에 도착해 하루 종일 일을 한 후 또 두 시간 반을 돌아와야 했다. 새로운 회사는 다행히 그보다는 짧고 호선도 반으로 줄었지만, 아침 여섯 시부터 1시간 30분을 대중교통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재택근무로 한 시간 반이 걸리던 출근이 10초 컷이 되니, 에너지가 절반은 없어진 상태로 마치 좀비처럼 카페인을 몸에 털어 넣고 하루를 시작하지 않아도 되었다. (집을 얻으면 된다고? 월급의 1/4을 월세로 내느니, 차라리 1/5을 교통비로 내는 걸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둘째, 야근에 관대해졌다. 


일을 하다 보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야근을 해야 할 일이 생기곤 한다. 멀고 먼 출근길을 헤치고 일을 할 땐 퇴근 시간이 30분만 늦어져도 가시꽃이 피었다. 여섯 시에 정시퇴근을 해도 (사실 칼퇴는 아니지. 정. 시. 퇴. 근.) 배차 시간이다 뭐다 하면 8시 30분에 집에 가는 것은 '택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면서, 좀 더 부담 없이 회사 일에 나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걸 지금 하지 않으면 내일의 내가 힘들어질 것 같을 때, 너무 일이 몰려서 꼭 지금 일을 해야 할 때, 어쨌든 결과물의 퀄리티를 위해서 더 노력을 쏟아붓고 싶을 때, 재택근무는 관대함을 선사했다. 


셋째, 가족과의 시간


겨우 차로 10분 걸리는 첫 번째 직장을 다니다가 2시간 반 떨어진 두 번째 회사로 옮겼을 때 제일 아쉬웠던 것은 바로 '가족과의 시간'이 줄어든 데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저녁때를 한참 넘겨 이제 자러 가야 할 준비를 할 시간에 딸의 저녁을 차려주는 엄마의 수고로움과 이대로 자면 분명히 소화불량으로 찌뿌둥하게 일어나겠지 싶어서 자꾸 늦어지는 취침시간이 짜증 났다. 재택근무를 하고 나니 여섯 시 꽉 채워 근무를 해도 가족과 딱 좋은 시간에 알맞게 익은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넷째, 자기 계발


아침과 저녁시간을 활용해 자기 계발을 시작했다. 당장 논문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글 쓰는 근육을 영 퇴화시키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야금야금 쓰고 있는 이 브런치 글이 그 증거. 늘어난 독서량이 또 다른 증거. 느릿느릿 늘어가는 외국어 실력이 마지막 증거다. 물론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에 '직장인'으로 살고 있지만, 직장 생활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물론 재택근무에도 단점이 있다.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좋은 것만 있지는 않은 것처럼.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재택근무'를 외쳐대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적어도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무는 계속해서 재택근무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을 맺으려다가 읽고 있는 책에서 괜찮은 구절이 나와 조금 덧붙여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직군이 집에서 일하는 경우와 회사에 나와서 일하는 경우의 성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p.94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흔히 집에서 일을 하면 해이해지므로 업무 성과가 떨어진다고 하던데, 재택근무를 하면서 되려 '정말 성과를 내는 직원과 아닌 직원'을 나눌 수 있게 된 모양이다. 워싱턴의 기업들은 높은 월세와 물가를 반영한 높은 월급을 주는 대신, 좀 더 적은 월급으로 타 주에 있는 능력 있는 직원들을 채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출장이 그다지 필수적이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된 기업들은 앞으로 출장 또한 줄인다고 한다. 재택근무는 직원뿐만이 아니라 회사에도 비용 절감의 기회가 되어 주는 모양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나도 성과가 떨어지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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