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MAMBA May 07. 2022

열다섯 번째 주

열다섯 번째 주를 마치며, 


1. 잊히지 않는 4월 16일의 기억


때때로 똑같은 365일이지만 유난히 특별하게 다가오는 날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3월 14일은 나의 생일이라서, 5월 23일은 내가 세례를 받은 날이라서, 8월 11일은 축일이라서, 8월 26일은 나의 인생 첫 논문이 세상에 공개된 날이라서, 그리고 12월 19일은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날이라서. 


4월에도 왠지 모르게 뇌리에 박혀있는 두 개의 날이 있다. 첫 번째는 4월 26일. 도대체 무슨 날인데 이렇게 익숙할까 거의 한 달 내내 고민했는데, 알고 보니 빅뱅 대성의 생일이었다. 중학교 때 껌뻑 죽었던 빅뱅의 생일... 8월 18일은 권지용, 11월 4일은 탑, 5월 18일은 태양... 대성이 최애도 아니었는데, 역시 좋아하는 아이돌 생일 암기는 팬 생활의 시작이자 필수지.  


26일이 (어이없게도) 좋아하는 가수의 생일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생각만 해도 노란 슬픔이 가슴에 밀려드는 세월호 사고가 터진 16일이다. 


그날은 유난히도 평화로운 날이었다. 오후의 햇살이 너무 찬란해서 낮잠을 자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따뜻했던 날. 미국에 온 이후로 이렇게 조용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고요했던 날. 부디 내일도 이렇게 평화롭기를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할 무렵, 매주 전 세계 사건사고를 조사해 발표해야 하는 수업 때문에 켜 둔 CNN 푸시 알림에 익숙한 단어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한국에 선박사고가 일어났으나, 모두 구조되고 있음.' 타이타닉도 아니고 몇백 명이 타고 있는 선박이 그것도 한국에서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 뜨였지만, 모두 구조되고 있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정 반대의 시간에 살고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도 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나의 안도는 불과 몇 시간 만에 경악으로 바뀌었다. 모두 구조되었을 줄 알았는데, 다음 날 포털사이트의 최상단에는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장식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그 소식을 접한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그 후 며칠을 슬픔 속에 보냈다. 고작 두 살 차이였지만, 거의 모든 친구들이 아직 스무 살도 되지 못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금방 다 구했다는 기사가 올라올 거야, 하고 믿으며. 


그렇게 수 일. 졸업 필수 수업이라 5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 모여 수업을 듣고 있는 소강당에 들어섰을 무렵, 매일 아침 기사를 통해 보고 있는 세월호의 사진이 프로젝터에 가득 찼다. 순간 헉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 조가 불과 2주 전, 우간다에서 '탑 100 동성애자' 랍시며 신문에 이름을 실었고, 그 이후에 2위에 랭크된 동성애자 인권 활동가가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은 사건에 대해 발표헀을 때에도 이렇게 분위기가 무겁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발표가 진행되는 5분 동안 죽은듯한 정적만이 소강당을 감돌았다.


"근데 진짜... 선장이 먼저 도망갔어요?"


정말 놀란듯한 교수님의 두서없는 질문을 시작으로 100여 개의 눈동자가 내게로 모였다. 수강생 중 유일한 동양인이자 한국인이었던 내가 자신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 것 마냥. 


하지만, 4월 16일이 유난히도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때도, 그리고 지금도,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없어서.


2. 방탄소년단과 군대


병역 면제 이슈로 시끌시끌했던 열다섯 번째 주.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여자라서, 황금 같은 20대에 2년이라는 시간을 국가에 빼앗기는 그 심정을 모르기 때문에 감히 왈가왈부할 수 없는 병역이라는 문제. 소속사가 얼른 일단락을 지어주길 바란다며 기사를 내는 바람에 다시 시끄러워졌다. 과연 방탄소년단에게 병역의무를 없애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국악을 전공하며 여러 음악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경기민요 종목 특성상 남자 국악인들을 보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와 같았기 때문에 실제로 군면제가 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전주대사습놀이'나 '동아콩쿠르'에서 우승하면 예술 체육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전주 대사습'이 어떤 대회냐. 고등학교 3학년이 우승하면, 대학도 갈 수 있고, 남녀 할 것 없이 인생에 한 번은 장원을 하고 싶은, 그런 대회가 아니던가. 군면제만이 아니라도 1등 트로피 하나는 내 목에 꼭 걸고 싶은, 그런 대회. 


예술성과 상품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종 세계대회에서 1등을 하기 위해 연습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성악가를 생각해보자.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체육인들을 생각해보자. 자고로 음악은 음악가 본인에게 세월과 감정이 쌓이며 더욱 완벽해진다고 생각하지만, 한 달, 아니 일주일만 연습하지 않아도 굳어버리는 성대와 손가락임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그럼, 2년은 단순히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5살부터 쏟아부은 (22살이라고 가정할 때) 18년의 노력과 능력을, 세상에 비빌 수 있는 나만의 경쟁력을, 미래 가능성을, 내 신체 능력의 전성기를 모두 놓치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렇다고 공부에 매진한 대한의 건아들의 노력이 예술인들의 노력보다 못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절대)... 


그럼 과연 순수 예술가의 예술성만 지켜져야 하는가? 사실 조성진의 쇼팽이니 하는 것처럼, 대중 대부분이 알고 있는 음악가가 있었나. 클래식 음악가의 음악 역량만이 군면제 대상인가? 방탄소년단이 이름을 올린 빌보드나 수상은 불발됐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염원하고 있는 그래미는 세계적인 대회가 아니었나. 


물론 명확한 평가 기준이 없고, 아티스트 개인의 역량과 더불어 회사, 자본, 팬덤, 인기... 여러 요소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순수예술과 다른 부분이 있다. 그리고 왜 가끔... 저 사람이 정말 가수라고...? 싶은 아이돌 가수들을 본 적이 없는가? 그리고 '탈 아이돌 급'이니,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라고 불러야 한다'는 둥, 가수와 아이돌을 구별 짓는 일도 왕왕 있는데, 그럼 아이돌에게 공통적으로 있어야 하는 '구성요소'나 '전형'은 무엇인가. 노래? 춤? 예능감? 


너무 어렵다...


3. 모든 일은 걸음마부터



이 주 주말에는 오랜만에 등산을 다녀왔다. 언젠가 대학을 졸업하고 집 뒷산을 올랐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간 적 없었는데, 주말이면 이 산 저 산 날아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산에 가고 싶어 졌다.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어야 할까. 호기롭게 계양산 정상까지는 올라갔는데, 내려오고 나니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게 되었다. 무려 일주일 동안, 겨우 1층 주택에 살면서 두 계단 밑을 내려오지 못해서 집에만 있어야 했던 열여섯 번째 주가 있을 것임을 알았으면, 중간 정도만 올라갔다 내려올 걸. 


하지만, 열여섯 번째 주는 몰라야 하는 것이 인간 세상의 이치. 그래서 열심히 정상을 찍고 내려와야 했던 열다섯 번째 주의 나.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열네 번째 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