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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Apr 23. 2022

2022년 열네 번째 주

열네 번째 주를 마치며, 


어느덧 4월이 되었다. 한 해를 4분기로 나눈다면 1분기가 지났고, 상하반기로 나눈다면 상반기의 반이 지나버린 셈이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나의 시간은 2020년 초에 멈춘 것만 같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도 어느덧 두 살을 더 먹었는데도, 나의 뇌는 아직 2020년에 있었던 일과 작년에 있었던 일을 혼동하는 일이 왕왕 이었어서, 2022년이 왔다는 것조차 믿을 수 없을 때가 있지만, 어쨌든 올해의 1/4이 지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꽃들이 피기 시작했고, 날은 점점 따뜻해져서 한낮에는 외투를 입지 않아도 될 정도로 봄이 성큼 다가왔던 열네 번째 주였다. 3월의 마지막과 4월의 첫날을 연차로 맞이한 4월의 시작. 그래서인지 유난히 힘들었던 주였다. 봄을 타나 보다 하고 넘기기에는 봄과 어울리지 않게 우울했다. 고 며칠 쉬었다고 그런가.



2021년의 나에게서 온 편지



2021년 생일에는 파주에 갔었다. 임진각도 보고, 이런 걸 먹고도 그렇게 태연하게 탄성을 자아내며 엄지 척을 외쳤구나 싶은 연예인들의 능력에 감탄도 했었는데, 고작 1년 지났다고 사실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당일치기 파주행이었다. 그 기억을 깨워준 건 바로 1년 만에 도착한 엽서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을 올라 임진강을 바라보고 있는 평화의 등대 옆에서 쫓기듯 휘갈긴 엽서. 나는 우리 가족의 평안과 평화로울 한 해를 기원하며 적었는데, 엄마의 엽서엔 오로지 나에 대한 사랑만이 담겨 있었다. 


다음에도 이렇게 느린 우체통을 만난다면, 꼭 뭐라도 적어서 미래의 나를 위한 축복의 메시지를 남겨줘야지. 


이렇게 또다시 봄


학생들을 가르칠 때, 3-5월은 봄, 6-8월은 여름, 9-11월은 가을, 12-2월은 겨울이라고 칼같이 계절을 네 등 분해서 나눠왔지만, 사실 3월은 봄이라기엔 춥고 9월은 가을이라기엔 덥다. 계절은 이렇듯 기계처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곁에 와 있는 것이다. 


봄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내게는 마당의 파라솔 밑에 앉아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바로 그 기준이다. 더위는 괜찮지만 추위는 조그마한 바람에도 꽤나 시끄럽게 반응하는 몸뚱이라 - 사실 나도 모르게 추워서 감기 걸리는 그 느낌이 싫은 거지만 - 조금만 쌀쌀해도 꽃구경은 거녕 집안에만 붙어있는 편이다. 이런 내가 얇은 외투나 카디건만 입고도 마당 파라솔 밑에 앉아 있을 정도의 날씨가 되면 꽃이 피어 있고, 햇살은 따뜻해져 있다. 그리고 그런 풍경들 사이에 나는 그저...



라면 하나 끓여서 마당에 나와 앉으면 그만.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다니며 집에만 있게 되면서 제일 좋아했던 건 바로 마당에 나와 보내는 시간이었다. 2015년 6월에 한국에 돌아온 이래로 2020년까지 일하느라, 공부하느라, 주말밖에 누릴 수 없었던 엄마의 정원. 취직을 하면서 언제쯤 다시 봄의 햇살을 느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재택근무 덕분에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마당에서의 라면을 즐길 수 있었다. 계속해서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길. 



봄을 맞아 나도 엄마의 취미를 배워보고자 꽃을 심었다. 나비 수국을 찾아 헤매었는데, 결국 나비 수국은 찾지 못했지만 보라색과 파란색이 영롱한 또 다른 수국을 데려왔다. 우리 집에서 월동 잘하고 내년 봄에도 예쁜 꽃을 피워주렴. 



열다섯 번째 주를 보낸 지금의 나는 이 꽃들이 불과 며칠 뒤 수요일에 몰아친 비바람에 다 떨어져 버렸단 걸 알지만, 적어도 열네 번째 주 일요일을 살아가는 나는 모르고 몰랐고 모를 일.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던데, 우리 대학생 친구들은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을까? 대학원 생활이 그립지만, 딱 하나 좋은 것이 있다면 시험이나 과제 걱정 없이 벚꽃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정도?



MBTI 과몰입은 안 하고 싶지만 내가 너무 N인걸


제2차 혈액형 대전이라고 우리들을 열여섯 가지의 갈래로 나누는 MBTI. 그중 N과 S의 차이는 현실 속에 사느냐, 아니면 몽상 속에 사느냐의 차이라고 한다. 나는 ESTJ와 ENTJ가 왔다 갔다 나오는 편인데 - 난 내향형 인줄 알았는데 단 한 번도 내향형이 나온 적이 없다 - 내가 S가 아니라 N이라는 사실을 체감한 것은 바로... 나의 상상력이 엄청 풍부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였다 (그럼 S들은 그런 상상들을 안 하고 산다는 말이야...? 세상에...) 


아주 오랜만에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밀히 말하면 (나에게는)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저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시간'이긴 하지만. 


그렇게 '아무 생각하지 않는' 나는 최근에 치과에 다녀왔는데, 원래 모양의 한 네 배로 부분 것 마냥 퉁퉁하고 얼얼한 입술과 잇몸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도 결국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 이 참새는 달달 하디 달달한 커피를 사고 말았고...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말라기에 얼음이 녹으며 점차 밍밍해져 가는 나의 커피를 안타깝게 쳐다보면서 치과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여러 카페들을 보면서 사실은 카페 사장님들과 치과 의사 선생님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모종의 거래가 있어서 치과에 다녀오느라 긴장한 몸이 당이 당기는 것을 이용해서 커피집의 매출을 올리고, 또 그렇게 달달한 맛에 중독돼 맨날 달달한 커피를 사 마시다가, 달달한 커피 때문에 이가 썩어서 다시 치과를 찾게 되고, 치과를 가야 하는 스트레스에 또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결국 치과에 돈을 가져다가 바치게 되는 순환고리를 생각... 안 할 수가 있냐고. 


그래도 그 무엇보다 집 근처에 맛있는 카페를 찾을 수 있어서 좋았던 4월의 첫 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4월도 다 지나간 4월의 셋째 주. 언제 이렇게 빨리 지나갔나 싶지만, 또 내년 이맘때 이 글을 읽으며 2022년의 열네 번째 주는 이랬었구나 생각하며 추억할 날을 기다리며...


내일은 4월 첫 주의 일요일 오후를 채워준 팥빙수에 떡 추가해서 먹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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