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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모 Jan 09. 2020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마음

계층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이기 때문에 결혼 잘 하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이 웃기지만 가장 현실적일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잠정적으로 출산이 포함된 결혼 제도를 통한 가치의 교환이나 거래가 로또나 주식보다 훨씬 빠르고 편리한, 많은 경우 더 단단한 사다리가 되어주니까. 정말 별로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똥밭에서 뭘 견디겠냐는 선택을 해야할 때, 꽤 괜찮은 옵션일 수도 있다. 인생은 항상 뭐가 더 좋은 지 보다 뭘 더 견딜 수 없는 가에 대한 연속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초등학교 때부터 출신 성분과 내가 지향하는 가치, 어울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낀 적이 너무 많았다. 어느 쪽에 서도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것이, 그리고 때로는 어딘가로 계속해서 떠다니는 듯한 이 느낌이 생계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엔 너무 배부른 신세 한탄처럼 느껴져서. 그리고 반대로는 나의 고민이 어느 쪽에서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것에서 좌절감이 들었다. 


차라리 나도 내가 가지고 태어난 자리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애초에 그런 사고회로도 타고 나는 것 같다는 결론을 여전히 오가고 있다. 이런 말을 내뱉는 것 자체가 재수가 없을 수도 있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행위 자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어쩌면 불가능한 욕망의 발로라고도 생각한다. 


학부 때 조한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리는 것이 무엇이 의미가 있겠느냐고 했다. 그 뒤에는 늘 조한이 노동계급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람들의 비판이 따랐다. 맞는 말이다.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할 수 조차 없는 상황에서 삶의 목적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내가 그랬다면 나는 명상을 하지 않았거나 이것을 가치추구나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삶에는 층위를 매길 수 없는 각각의 고통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자신만의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교할 수도 없는 그런 것. 얼마 전에 본 영화에서 기만당하는 느낌을 느꼈던 것은 감독이 잘 알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 마치 잘 아는 것처럼 포장해 그렸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사자 외에 누가 타인의 삶을 정의내릴 수 있을까. 


정말 악독해 보이는 사회지만 사람들 안에 있는 양심이라는 저울을 믿지 않으면 나락은 점점 더 밑바닥을 알 수 없게 될 거라 믿는다. 좀 지독한 이상주의자의 사고일 수 있겠지만. 마음이 답답하면 뭐라고 뭐라고 주절거리게 된다. 그리고 한숨을 쉰다. 잘 모르겠지만 잘 해보고 싶긴 하니까.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고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해지고 싶다. 그리고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고 싶다. 지금도 마구 지나가는 선택들이 걷잡을 수 없이 나를 압도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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