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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모 Apr 02. 2021

니모의 상담 일기 #3

두 번째 상담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다. 애인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애정을 주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낄 때 내가 화가 나는 이유가, 애인을 엄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고작 2회기가 지났을 뿐이지만 속도감이 느껴진다. 어쩌면 시간이 많지 않다는 촉박함 때문에 내 이야기를 더 압축적으로 밀도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전화 상담이라는 조건 자체가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을까. 어쨌거나 첫 회기에서 형성된 선생님과의 라포가 2회기에도 안정적으로 이어졌고 내 애인이 여자라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선생님이 약간 놀라셔서 나도 움찔한 지점이 있었으나 그 이후에 이어진 이야기에서 더 이상의 불편함이 없었고 충분히 대화가 핑퐁처럼 오갔기에 전화를 끊을 때 즈음에는 마음이 무척 후련했다. 


왜 엄마가 당신의 불행을 내 탓으로 돌리는지에 대해, 내가 엄마에게 보였던 행동이나 태도의 방식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이 나에게는 엄마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수단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가 가해자로서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을 무척이나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그를 가해자 취급하는 것도 마음의 짐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명백하게도 그는 어른이었고 그것은 가해가 맞았다. 


나는 오랫동안 엄마에 대한 분노가 옳지 못한 것이라고 느끼며 마음속 깊은 곳에 내 분노를 억압해 왔다. 분노의 억압은 우울이라지. 분명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외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있음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외할머니를 용서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용서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아마도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느꼈던 죄책감을 통해 외할머니와의 동질감을 느끼고 분노를 더 억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내 추측일 뿐이다. 


나는 지금도 나를 향한 원망과 비난이 담긴 엄마의 문자를 받으면 매우 슬프다. 그리고 잘못한 건 엄마였다고 이혼한 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말할 수가 없다. 그 말이 전혀 들리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 나는 내가 짓지 않은 잘못에 대해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더 이상 애인에게 불필요한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게 될까?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온 나의 분노를 보았으니 이제는 훈련을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일단 내가 나를, 용서할거야. 


2회기 상담에 대해서 아빠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왜 엄마가 그토록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좀 납득이 됐다. 내 또래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비슷한 심리적 문제는 조부모님 세대가 가졌던 폭력적인 군대 문화, 가부장적인 문화에서도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더 이상 결혼을 당연시 여기지 않는 문화가 심리적 갈등이 세대를 거쳐 계승되는 문제를 끊어내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자신을 돌보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을 돌보지 못한 부모세대는 그 돌봄의 몫을 자식에게 고스란히 돌려버렸으니. 요즘 젊은애들이 이기적이라는 말은 사실 시선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기만적이고 자기 회피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충분히 이기적인 태도를 통해 좀 더 건강한 자아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당분간은, 나를 더 돌보는 데에 힘써야지. 그리고 사부작사부작, 친구들과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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