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또 이런 걸 쓰게 되다니.
연애라니. 연애라니. ㅠㅠ
사실 나는 사랑 없이 못 사는 사람인 건 맞잖아.
연애만큼 나를 확장시켜주는 경험은 정말 흔치 않은 것 같다.
아니, 거의 유일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지.
모든 연애에서 너무 최선을 다하는 게 문제라고, 선배는 말했다.
잘 따져보고, 상대를 관찰해야 한다고.
사랑하기 시작하면 자아의 경계가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 사람이 내 세계의 전부가 되고, 나의 모든 삶의 패턴이 상대방에 맞춰 변화한다.
지난 연애에서 나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했고
아직도 상처받아 있는 게 사실이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뭐라 충분하게 납득하지도 못한 채로 차였다.
타이밍이 안 맞았던 것도 사실이고 내 잘못이 전부가 아니었단 것도 이해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내가 뭘 못해서, 내가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것만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제 상담을 신청하면서 또 무슨 말을 구구절절해야 하나,
또 나를 설명해야 된다는 사실에 피로감이 밀려와서 다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자책하는 마음을 거두기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내가 정말 잘못한 게 아니었을까.
분명 그게 전부는 아닐 텐데 말이다.
애인 집에서 머물면서 참 좋았지만 한 편으론 내가 뭔가를 실수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망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여기서 또 헤어지면 정말 나는 죽을 것 같을 거야.
그러고 보니 이별이 나에게는 극도로 힘든 일인 것 같다.
엄마에게 늘 거부당한 경험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
이 상처는 얼마나, 어디까지 들어가서 치유해야 비로소 괜찮아지는 걸까.
이렇게까지 상처가 깊을 일인가 싶기도 하고.
슬프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는 게,
끊임없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성향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아이는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끝없이 사랑한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태양인은 애성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애성. 애달파하고 애쓰는 성격.
그러면서 몸이 망가진다.
마음 때문에 몸이 망가진다.
그게 내가 타고난 성격이다.
직관적으로 상황을 통찰하지만 디테일에는 약하고
남들에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강렬한 연결감을 느끼는.
깨달은 것과 현실과의 괴리감 사이에서 급박지심으로 고꾸라지기도 하는 사람.
어릴 때는 정말 절심과 벌심이 강했다. 다듬어지지 않았을 때의 성격적 단점이 정말 그렇다.
이제는 많이 커서 나아졌지만 여전히 애성이 나를 괴롭힌다.
애성이 과해지면 불안해진다. 급박지심이다.
신기하지. 내 사주 여덟 글자 중 네 개가 금기운이다. 금 기운을 따라 폐가 큰 것이 체형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장 기운이 과한 것도 굵고 짧은 허리로 드러난다.
뭐든 과하면 좋지 않은데, 나는 잘 슬퍼지는 사람이다.
폐와 대장을 관장하는 감정이 슬픔이다.
수련을 하면서 한의학을 좋아하게 됐고
한의사가 되는 건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내 길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 길이 내 길이었으면 진작에 나는 한의사가 되었을 것 같다.
나는 인류학을 했고, 지금도 인류애를 꿈꾼다.
대신 애인이 한의사다.
참 재밌는 일이 아닌가.
한의사를 만나려고 일부러 애쓴 것도 아니었고
어떤 특정한 틀이나 기준을 정해놓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이 사람이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분명 내가 원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참으로 신기하지.
역시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간절함의 발로가 현실이 되는 것이 바로 신의 성품이 아닌가.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애인이랑은 정말 멀리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와는 정말 다른 성향의 이 사람과
비슷한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장점이
세상을 밝힐 거라 믿어.
애인이 나와 함께 즐거운 실험을 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일에 지쳐 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 한의학을 참 사랑하는 사람이다.
잃어버렸던 흥미를
나를 통해 다시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나의 애달픔이 비단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비가 될 수 있기를.
사랑하는 너를 통해 기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