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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Jun 10. 2020

여행자로써 한발 내딛기

[인도-마날리]


새벽 5시 반에 맥그로드 간지 버스스탠드에서 같이 가기로 한 로니와 만나기로 했다. 

늦을까봐 부랴부랴 짐싸서 내려갔는데 우산을 깜박했다. 너무 급히 나왔다고 투덜댔는데 로니는 6시에 왔다. 뭐야..... 티벳 빵이랑 짜이 마시면서 다람살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거기서 마날리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 스탠드에서 엄청 큰 개가 자꾸 와서 부비적 댄다. 너무 귀여운데 머리 속에 거머리 들을 발견했다. 음 조금 만지기가 꺼려진다. 그래서 내가 피하면 오히려 더 와서 비빈다. 그러면서 내 빵을 완전 초롱초롱하게 쳐다보는데 이 개, 뭘 좀 아는 놈인것 같다. 내가 줄 수밖에 없잖아.


이렇게 생긴 검은 개였다 (출처 구글)



다람살라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11시간동안 가는데 나는 이미 한번 마날리를 가본 길이라고 그래도 뭔가 길이 익숙하다. 버스는 모든 정류장에 다 서서 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가 보기에는 정류장이 아니라 그냥 길인데 사람들이 서있고 버스가 그냥 사람들 앞에 선다. 정확히 무슨 시스템인지 모르겠다(어쩌면 그냥 시스템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다행히 동행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중간에 사원 지점에서 1차선 도로가 꽉 막혀서 정말 거의 1시간 가까이 차를 세우고 기다렸는데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해서 보니 사고가 났던 것이다. 로니가 자기는 기차가 14시간 연착되어 계속 기다린 적도 있고 아그라행 기차 타고 가다가 기차가 멈춰 4시간 동안 영문 모르고 기차 안에서 기다린 적도 있다고 했다.


인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가서 놀고 있고, 외국인들만 대체 무슨 일이냐고 안달 났는데 알고 보니 기차가 신성한 동물인 소를 치어서 기관사가 운전 못하겠다고 드러 누웠다고 한다. 그래서 힌두 사제를 불러와서 푸자(액막이 의식 같은 것)을 하느라고 4시간이 걸렸단다. 결국 당일치기 아그라행은 1박 2일 되고 말았다는 후문.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냥 이 나라에서는 마음을 편히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 6시에 뉴마날리에 도착했다. 로니는 바쉬싯으로 가고 나도 로니 따라갈까 하다가 그냥 올드 마날리에 있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또 잘못된 선택이었다 허허허. 가려고 했던 숙소인 타이거 아이는 예상보다 방값을 너무 비싸게 불렀다. 모든 릭샤는 100으로 담합했는지 무조건 100부른다. 소똥 냄새가 풀풀 풍기는 올드 마날리를 배낭메고 헤매고 다니다가 결국 한국사람이 한다는 윤까페로 갔다. 올드 마날리 집들은 정말 시골 스러운게 1층은 소들 키우고 그 2층에 오래된 나무로 집을 짓고 산다.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사는 거지. 윤까페는 나름 름 '도미토리'라고 큰 방 하나에 바닥에서 여러명이 자게 해놨는데 나밖에 없어서 편했지만 샤워가 없었다. 물도 찬물밖에 안나온다. 인도에서 따듯한 물을 찾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긴 하다. 


올드 마날리의 저 다리 기억난다!!!! 


올드 마날리 집들이 이렇게 생겼다니까 진짜루!





다음날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올드 마날리에서 하루종일 뒹굴 뒹굴.

새로운 숙소는 방은 완전 좋은데 아뿔싸 화장실 확인을 안했다. 

푸세식에 샤워기가 푸세실 변기 옆에 달려 있다?! 오마이갓. 여기도 하루밖에 못 있겠군.


올드마날리 위쪽으로 올라가다가 만난 파란 모모집. 

인도 음식보다는 티벳 음식이 완전 내 스타일(한국 스타일)이지. 만두와 비슷한 모모국. 

한국에서 나는 사실 만두국을 별로 안좋아해서 한번도 시킨적이 없다. 그런 내가 여기서 모모국을 국물까지 싹 긁어 먹었다. 고추절임도 매운데 어찌나 한국 장아찌같이 맛나던지!


올드 마날리 꼭대기에 있던 이 모모집을 못찾겠다. 사진도 안찍어 두고. 


그렇게 한참 고개 박고 모모국 퍼먹다가 뭐가 시끄러운것 같아서 고개를 드니 아뿔싸 비가 쏟아진다. 

숙소 옆에 강이 있어 물소리가 익숙해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비가 쏟아지는 소리였다! 

빨래 널고 나왔는데! 내 빨래! 

분명 빨래 널 때까지만 해도 햇볕이 완전 쨍쨍했는데. 

또...마르겠지...하면서 어쩔수 없이 포기하고 기다렸다. 황사비는 아니니까 괜찮을거야. 어차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내가 속이 타든 타지 않든 비는 쏟아지고 빨래는 시원하게 젖고있으니까.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파란 모모집 앞에서 라씨 마시면서 비오는 바깥 구경을 했다.

이렇게 사람 구경하는 것도 참 오랫만이다. 

인도 와서 아직 유심을 안사서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안쓰니까, 이렇게 빈 시간이 나면 그냥 하릴없이 앉아있게 된다. 핸드폰이 있으면 항상 빈 시간에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본다. 언제부터 그런 습관이 들었지. 

언제부터 손에서 폰을 떼지 못하게 되었지. 왜 계속 뉴스를 확인하고, sns를 확인하고 그러는 걸까. 

지금, 눈앞, 현실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람 구경이 이렇게나 재미있는 걸 왜 잊고 있었지. 왜 핸드폰만 보고 살았지. 



관광이 아닌 진짜 여행다운 나만의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경해야 할 것도 없고 가봐야 할 장소도 없다. 그냥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종종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물론 외롭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온전히 혼자 완벽히 낯선 곳으로 오고 싶었다.


퇴사를 직접 시행하기까지 내 몸과 정신은 있는대로 피폐해져서

굉장히 우울하고 냉소적이고 염세적이게 변해버린 나조차 갑자기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같아,' 라고 느끼게 할만큼 소소한 행복을 느껴버렸다.

 올드 마날리의 모모집에서 따끈한 모모국 먹고 시원한 라씨 마시고, 세차게 흐르는 강물소리같은 빗소리를 들으면서.





 





7시부터 라이브 뮤직이 있다는 곳에서 매콤한 볶음밥을 먹었다. 웨이터가 빈지노 닮았다!

그런데 라이브 뮤직이 고통스러운 소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노래를 너무 못하잖아요.



올드 마날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입구가 너무 멋지던 레이지독에 가서 칵테일 한잔하고 돌아왔다.

마날리에 이런 분위기 터지는 곳이 있다니.




갑자기 알콜이 들어가니 감성폭팔이다. 다시 익숙한 맥그로드 간지로 돌아가서 요가나 하다 돌아갈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행자 하기로 했으니까, 다시 미지의 나날 속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다. 

그게 내가 택한 길이니.



마날리에 갔을 때는 우기고, 힘들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 다시 간다면 풍경과 분위기를 더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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