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개고생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여행이라고 한다.

인도 _델리

by ClaraSue



아침으로 메인바자르에 위치한 히말라야 까페에서 인도식 백반이라는 걸 먹었다.

인도에서는 반찬 대신 다양한 종류의 달, 그러니까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다양한 커리가 나온다. 밥을 비벼 먹는건 좋은데, 커리도 달도 맛있는데, 현지에서 현지식만 먹겠다,라는 신념으로 여행을 시작하긴 했는데, 근데 무엇인가 좀 아삭아삭 씹고 싶다.(밥, 빵 말고) 조금 딱딱한 고체 반찬이 먹고 싶다…흐물 흐물한 것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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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닛! 딴 생각을 하지 말자! 나는 진정한 현지를 느끼는 여행을 해 보는거야! 인도에 왔으니 채식도 한번 해 보는거야! (그래도 탄두리 치킨은 꼭 먹어 보겠다) 나의 새로운 도전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인도식 탄산 음료 림카도 주문해 봤다. 뭔지도 모르고 그냥 팔길래 먹어봤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인도에서만 한정적으로 판매되는 코카콜라사 탄산음료' 라고 한다. 레모네이드 같은 맛이다.



출처 : 구글


아침을 먹고 어제 만난 언니들과 델리 구경을 나섰다. 둘은 네덜란드에서 온 31살, 친구 사이이다. 여름 휴가를 받아서 왔고, 델리로 입국해서 이제 곧 히말라야 쪽으로 올라가 트랙킹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도 히말찬 지역으로 올라가긴 하지만 가는 곳이 달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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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니들…릭샤따위는 타지 않는다. 이 땡볕 더위에, 오로지 걷겠다고 했다. 나는 그냥 차나 타고 싶었지만 내가 너무 배낭 여행자의 본분을 잃었는가 싶어, 조용히 언니들 따라 걸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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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하르간지가 있는 올드대학에서 뉴델리 중심지인 코넛 플레이스로 나와서 우체국에도 들리고, 히말찬 지역으로 가는 정부 버스표를 판매하는 곳으로 가서 맥그로드 간지로 가는 버스표도 샀다. 나는 좀더 비싸고 시설이 좋다는(?) 사설 버스를 수수료를 내고 대행판매 하는 한국 사이트에서 샀는데, 그냥 내가 직접 가서 사도 되는 거였다. 다음번에는 내가 직접 버스를 사야지.

표 사러 가는 길에 우리가 길을 물어본 어떤 남자는 너무 잘생겨서 정말 모델인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그 사람에게 길을 물어 보고, 괜히 뒤돌아서 우리끼리 까르르 웃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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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지하철도 탔다. 인도는 지하철을 탈때도 남녀 각각 줄을 서서 짐 검사와 몸 수색을 한다. 사실 공항 보안검색하듯이 엄청 심각하게 하는 것도 아니라 설사 테러리스트가 지하철을 탄다고 해도 안 걸릴거 같긴한데, 그만큼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나라라는 것을 실감했다. 딱히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이 새삼스레 감사한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 참, 인도에서 보기엔 대한민국은 북한과 전쟁이 언제 날지 모르는 전시 국가지. 어느 나라건, 평화로운 나라에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일 것인데, 가끔 우리는 그 평화에 너무나 익숙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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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드니 촉 지하철 역에서 레드포트까지 걸어갈 수 있대서 내렸는데, 어디로 가는지 몰라 우리 다 같이 또 헤매고,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몰라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도서관 같은 곳에 들어가서 길을 물어봤다.

인도에서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는게 정말 중요하다. 언니들은 델리역에 도착하자마자 길 잘 못 물어봐서 이상한 릭샤를 타고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 가득했고 나도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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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줄줄 흘리면서 걷고 또 걸어, 결국 붉은 성에 도착하긴 했다.

내 생에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린 적이 있나. 이렇게 더울 수가. 왜 인도의 해는 질 생각을 안할까.



무지 덥고 힘들긴 했지만, 한편으로 이런 아날로그식 여행이 너무 오랫만이라 즐거웠고 나 혼자 악샤르담 구경을 가서 진저리가 난 이후 누군가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이 났다. 그냥 택시를 타거나 릭샤를 타고 쉽고 편하게 목적지에 도달해서 관광 하는 것도 여행의 한 종류일 수 있지만, 이렇게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목적지를 찾아 헤매면서 개고생하는 자체가 여행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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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포트에서 현지인과 외국인의 입장료는 현저히 차이가 난다. 두배가 훨씬 넘게 받길래 난 좀 불만이었는데, 외국인에게 돈 많이 받는 것 또한 인도에서는 당연하게 생각되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환율이나 물가를 따져보면 너희에게는 별로 큰돈도 아니지 않느냐, 너희는 부자 나라에서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에게 돈을 좀 줘도 된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나까지 부자 관광객 취급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느껴지지만, 어쩔수 없지.


딱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한번쯤 볼 만한 것 같다. 성 내 풀밭에서 피크닉 온 사람들도 많았고, 사람들 곁을 부지런히 왔다갔다 하는 다람쥐들도 많았다. 관광객들이 워낙 익숙한지 우리가 빵을 먹고 있으니 와서 내 손에 있는 빵을, 내 손을 붙잡고 뺏어 먹었다. 정말 귀엽다! 그런데 이 다람쥐들은 무늬가 없이 청설모 비슷하게 생긴 회색 종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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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포트에도 인도 사람들이 많았고, 가는 곳마다 빤히 쳐다보고, 거기다 서양 사람 둘까지 함께 있으니 멀리서부터 달려와서 같이 사진 찍자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나 혼자가 아니라 견딜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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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포트에서 나와 델리에서 가장 큰 도매 시장인 찬드니 촉 시장을 잠시 구경하고 사원 거리로 갔다.

이 거리에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시크교, 심지어 교회까지 모든 종교의 사원들이 이웃하고 있었다. (대체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그냥 생각없이 따라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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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불교 사원을 구경했다. 불교 사찰의 모양을 보고 우리는 절이구나 생각하지만 유럽에서 온 언니들은 히틀러를 생각한다. 문화의 차이란.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자원봉사로 새 병원을 운영한다고 해서 한 번 구경하고 나왔다. 그런데 막상 구경하고 나오니까 손 벌리면서 기부금 내라는게 아닌가. 이런! 불교의 자비심을 팔아서 돈을 뜯어내다니.


어쩔 수 없이 찝찝한 기분으로 강제 기부금을 내고 옆에 있는 힌두교 사원(시바 사원인 듯 했다)으로 갔다.

사람들이 사원에 들어와서 뭘 하는지 힐끔힐끔 구경했는데, 벽에 조각된 신의 모습에 입 맞추고, 중얼거리면서 기도하고, 종을 울리고, 꽃을 바치고, 그렇게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도 방해가 되거나 무례하게 굴지 않으려고 조용히 구석에 잠깐 들어왔다 나왔다. 여기서도 우리가 외국인이라 기부금을 받으려고 군말없이 들여보내 준 것 같긴 한데, 나는 결국 내지 않았지만 언니들 중 한명이 돈을 헌금했다.


세번째 사원은 무슨 사원인지 잘 모르겠고, 들어가도 되는건지도 몰라서 앞에서 쭈뼛거렸다.

터번을 쓰고 있는 사람이 많은 걸 보자니 이슬람 사원인가 싶기도 하고. 입구에 들어가기 전 손과 발을 씻게 되어 있는데, 이걸 씻어 말어 하고 우리끼리 눈치를 보고 있으니 문지기 아저씨가 우릴 막으려 했다. 그런데 우리를 지켜보던 터번을 쓰고 수염을 기른 한 무리의 원로 아저씨들이 우리보고 들어와도 된다고 하면서 직접 와서 머리에 두건까지 둘러주며 들어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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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친절하게 사원에 들어가라고 하다니? 뭔가 굉장히 권위적이고 보수적일 줄 알았는데 그냥 교회 목사님이나 성당 신부님 같았다.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알고 봤더니 시크교였다. (그때까지 시크교가 뭔지 알지도 못했다) 시크교는 15세기 인도 북부에서 힌두교 신앙과 이슬람교의 신비사상이 융합되어 탄생한 종교로서 세계 5 종교 중의 하나라고 한다.

심지어 예배가 시작되어 우리는 얼렁뚱땅 예배까지 참석하게 되었다. 내가 시크교 예배에..이게 무슨 일인가...?

무슨 빗자루 같은 걸(저의 무례와 무식을 용서하소서..) 가지고 휘두르면서 예배를 드리고, 중간 중간에 북도 친다. 긴 창을 들고 전통 복장을 한 아저씨들도 곳곳에 서 있다. 예배 중간에는 밥도 한덩이씩 나눠준다.


이슬람 사원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겉에서만 봤고, 교회와 성당도 있었지만, 사원 중 시크교 사원이 제일 좋아 보였다. 시크교도들이 돈도 많고 사업도 많이 한다고 한다. 인도의 펀잡 지역에 시크교도들이 많은데, (이때는 몰랐지만 나는 후에 펀잡 지역도 가게 되었다) 무슬림과 다르게 여자들도 다같이 예배를 보고, 남자들도 굳이 터번을 쓰지 않고 예배 드릴때만 머리를 가리는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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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구경을 끝내고 나오니 밤의 올드델리는 시끌시끌 했다. 해가 지고 사람들이 활동할 만한 기온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낮보다 더더욱 많아졌고, 길거리에는 소의 형상을 한 신상에 절을 열심히 하고 있는 힌두 예배도 한창이었다. 온갖 종류와 사람들이 뒤엉킨 그 곳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며 사람구경 하다가 빠하르간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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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니들에게 말을 걸었고, 운명처럼 다음날 우연히 만나 운명처럼 셋이 델리를 누비고 다녔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계획도 하지 않았고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아니 오히려 내가 계획이 없어서 할 수 있었던 일이다.


계획이 없이 산다니? 발길 가는 대로 걷다니? 이렇게 살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예전에 여행 다닐때만 해도 겁없이 혼자서 대충 약도 보고 곳곳을 누볐는데.

회사 생활, 서울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냥 툭하면 릭샤나 타고 싶고, 새로운 곳에 갈 때는 구글 지도를 켜고 목적지 사진까지 확인하지 않으면 강박적으로 불안하기까지 했다.

언제부터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거지?


여행 뿐 아니라 인생에서 개고생을, 삽질을 하고 싶지 않다고, 이게 최선이냐고 항상 조바심 내던 나.

완벽하고 효율적인 최상의 이상적 기준을 정해두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던 나.

그렇게 개고생이 빠진, '완벽한 인생'을 향해 발버둥 치다보니, 인생에 재미는 없어지고 스트레스만 남았다.

그래서 그냥 개고생 하고 좌충우돌 하면서 살아 보기로 했다.

외롭거나, 힘들 때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운명처럼 만나서, 가보지도 못했던 곳에 가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하기. 그렇게 나의 이십대를 불태울 여행은, 내 두 발로 걸어서 개고생하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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