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월] 1차 네덜란드 생활 마무리
2022년이 시작되고 막상 힘차게 새해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깥은 어둡고 우울하고, 갈 곳이라고는 마트와 도서관 뿐이고, 점점 나가기도 싫어지고,
사람들과의 교류도 적어지고, 싫어지고 그래서 점점 더 고립되어가는데다가
수면 사이클은 망가지고 스스로를 푸시해서 일어나거나 움직이는 것 조차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위염이 걸려 제대로 먹지 못하고 힘은 없어지니 더 신경은 예민해지고 극단적으로 변해갔다.
1월 말까지 공식적인 학기는 아니긴 하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와 매 주마다 제출해야 하는 논문제안서가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데
정작 생산성과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서 하루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데도 겨우 몇 줄 쓸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라 브런치는 커녕 각종 sns도 모두 스탑되고
과제든 뭐든 모든 마감일들을 미루는 바람에
심지어 교수님 미팅까지 나 못하겠다고 스케줄 조정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으나 점점 악순환이 반복되자
이럴 바에는 얼마동안 한국에 가서 한국 음식 먹고 가족들이랑 시간을 좀 보내면서
한국에서 과제 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덥석 한국에 가기에는 막상 손해 볼 것이 한 둘이 아니다.
먼저 코로나 시국이라 뭐든 쉽지 않다.
입국도 쉽지 않을 거고, 인천공항에서부터 전남 집까지 가지도 쉽지 않을 거고,
거기다 자가격리까지 해야 하고, 혹시나 한국 도착해서 코로나 확진되면 어떻게 될 지 상상도 하기 싫다.
우리 집, 동네까지 유럽에서 괜히 들어와서 코로나 퍼트린다고 난리가 나겠지.
그놈의 PCR검사 비용도 얼마나 비싼지.
비용.
비용 생각하니 더 골치다.
한국 안 갈 생각으로 돈 탈탈 털어서 스페인 여행 다녀 왔는데, 또 목돈 들여 한국 가겠다고?
한국 갈 비행기 값이면 런던이나 오스트리아 여행 다녀올 수 있는데.
유학 경비도 빡빡해서 다시 수입이 생기기 전까지는 한국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이 무색하게 한국에 돌아간다니, 자괴감까지 들 지경이다.
내가 일도 안하고, 몸이 너무 편하고 게을러서 복에 겨운 불평만 하는 걸까?
내가, 네덜란드 적응에 실패한 실패자인건가?
에라이,
지금 실패자로 느껴져도 뭐 어때.
다시 돌아와 성공하면 되지.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기 전, 내가 지금 간절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타임 아웃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는다면, 돈이든 공부든 커리어든, 그게 무슨 소용이야?
나는 나의 직감을 믿기로 했다.
결단을 내리자 마자 돌아오는 주말 한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왕복이지만 오픈스케줄이라 돌아오는 항공편 변경이 가능하니, 상황봐서 스케줄은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한국가는 이유도 집에 머무르면서 요양(?)하는 것이라 열흘간의 자가격리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는다. 다행히 마당도 있어 원룸인 여기보단 낫겠지.
비행기표를 끊고 이것저것 출국 준비를 하니 오히려
가만히 가마니처럼 있을 때는 일어나지 않던 일들이 갑자기 하나 둘씩 생겨났다.
한국 가기 전 최대한 해보자 생각하니 적어도 과제 하나가 마무리 지어졌고
친구가 갑자기 저녁먹자고 와인사들고 찾아오기도 하고
하우스 메이트들끼리 브런치로 크레이프 만들어먹기도 하고
차끌고 근교 하이킹 가자고 해서 거기도 따라갔다 왔다.
어쩌다 보니 새로운 한국인 친구도 만났다.
같이 사는 애 중 한명인 로라는 요가/댄스 강사인데 코시국에 일이 없어 심심해 하다가,
심심한 사람끼리 모여서 화요일저녁마다 줌바 겸 운동하자고 나를 불렀다.
대여섯명이서 뒷마당에서 로라와 함께 열심히 노래에 맞춰
줌바 댄스도 하고, 스쿼트도 하고, 런지도 하고 하는데,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은 오랜만이었다.
몸을 움직이다 보니
내가 야외 활동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왜 요가 강사 자격증을 땄었는지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로라같은, 이런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도, 맨손만 가지고도
다른 사람을 건강하고, 행복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
같이 요가 하자! 내가 가르쳐 줄게!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바이브를 전파해 줄 수 있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코시국이다, 유학생활이다 정신 없이 살면서 그 마음을 까맣게 잊어버렸었네.
사실 내가 먼저 연락하거나 약속을 잡으면 다들 반가워할 걸 알지만
그걸 할 마음이 안들어 점점 혼자 방 안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는데,
사람들과 억지로라도 수다떨면서 시간을 보내고, 나가서 새로운 경험도 좀 하고 하니
확실히 내가 너무 점점 혼자 땅파고 들어가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조금 버텼어도 나아졌으려나, 내가 너무 섣불리 한국행을 결정했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행을 결정했기에 '신난다'라는 에너지가 생겨 나에게 다가오는 손길들을 잡을 힘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우울한 마음을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스스로가 변화를 선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를 선택할 마음의 여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행히 나의 이번 결단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 같다.
한국행 비행기에서 그동안 보고싶었던 영화를 보고, 미뤄둔 책도 읽었다.
“오늘의 내가 완벽할 리 없다.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어제의 나 역시 볼품없다...그런데 그 모자란 듯한 내가, 하루를 살아내고 일주일을 살아내고 1년을 살아낸 다음, 몇 년이 지나서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훌쩍 성장해 있다.”라는 글귀를 보고 괜히 훌쩍였다.
네덜란드에서 열심히 성실하게 산다고 나름 살았는데,
내 인생 변화도 없는 것 같고, 조바심은 나고, 나를 지지해 줄 팀도 없어,
나도 모르게 제풀에 지쳐버린 것일까.
암스테르담 행 기차에서부터, 비행기, 서울 지하철, KTX 까지 갈아타면서 장장 20시간 가까이 되는 여행길을 거쳐 드디어 집으로 돌아와 서서히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요양(?)하느라 의무 자가격리 열흘이 지겹지 않게 지나갔다.
점점 기운을 차려 몸도 세네끼 먹을 만큼 건강해지고 집중력도 조금씩 향상되어
미루던 과제들도 마무리 짓고, 드디어 다시 브런치를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브런치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무리 지은 두번째 매거진.
네덜란드 생활을 시시콜콜 기록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뭐하고 살지 궁금해 할 가족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기분으로
일주일에 한편씩만 주제를 잡아 쓰자고 시작했는데, 그것도 참 쉽지 않아 겨우겨우 따라잡았다.
한 편씩 쓸 때마다 그냥 간단히 쓰려고 시작하는데
하고 싶은 말들을 주저리 주저리 쓰다 보니 항상 몇시간씩 시간을 들여 긴긴 글을 쓰게 된다ㅠ
브런치를 처음에 신청했을 때는 좋아요건 구독이건 관심도 없이 내가 쓰고 싶은대로 쓰기 위함이었는데
아무도 안읽을 것 같은 내 글을 누군가 읽고 있는 것을 볼 때 점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이제 슬슬 책을 내는 것, 읽히는을 목표로 써볼 때(?)가 된 것 같다.
우선 이번 학기 네덜란드 생활 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 짓고,
재충전 하는 기간동안 브런치도 본격적인 연재로 바꾸고 sns도 연동해서 관리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동안 어설픈 주간 일기라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씩씩하고 꾸준하게, 조금 달라진 글들로 찾아오겠습니다 구독자님들
올해도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제일 먼저 생각하세요!
Good L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