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06(금) 세비야 알카사르, 대성당
세비야는 내 유일한 스페인 친구가 사는 도시이기도 하다. 오기 전에 세비야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고 하자 친구는 너무 짧다고 했다. 이틀이면 웬만한 관광지는 다 돌아볼 수 있겠지만 만끽하기엔 부족하다는 뜻이었고, 한 곳씩 다녀보며 나도 동의하게 됐다.
친구의 근무 일정이 내 여행 스케줄과 잘 맞지 않아서 아쉽게도 아침에 2시간 정도만 만날 수 있었다. 황금 같은 2시간을 떼어준 덕에 현지인들의 아침식사 문화도 체험했다. 세비야에 오기 전부터 즐겨 먹었던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었고, 스페인 사람이지만 하몽을 좋아하지 않는 이 친구는 다른 메뉴와 함께 커피를 시켰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만국 공통의 문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꽤 광범위한 곳에서 자연스러운 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사실이다. 스페인 사람들과 달리 아침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집어 드는 한국인들의 경우 목적은 조금 다르겠으나 아침에 커피를 들고 출근하는 건 흔한 풍경이다. 다른 점을 찾자면 우리는 여름에 얼음을 넣은 커피를 주로 마시고, 스페인 사람들은 여름에도 얼음 없이 카페콘레체(우유가 들어간 커피, 카페라테)를 즐긴다는 점이다.
하몽을 잘 먹는 나를 본 친구는 헤어질 때 진공 포장한 하몽을 선물로 안겨줬다. 이미 한국에 와본 적 있고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 친구는 2020년에도 한국에 올 계획이 있다고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졌)다. 다음엔 여유 있게 만나기로 하고 짧은 만남을 끝냈다.
이후에는 알카사르와 대성당을 방문했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를 닮은 알카사르는 알람브라와 달리 스페인 왕이 실제로 생활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랍식 건축 스타일 안에 스페인 왕실의 화려함을 더한 소품들로 가득했다. 단 한 번도 스페인 왕의 거처로 쓰인 적 없는 알람브라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대성당은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한국인 여행자에게 유럽 3위 규모 성당이라는 정보는 없던 호기심도 짜낼 수 있게 하는 팩트다. 종교가 없는 사람에겐 약 100년에 걸쳐 건축되어 여러 양식이 혼재된 성당이라는 설명보다는,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관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더 흥미롭게 다가올 장소이기도 하다.
대중에도 공개되어 있는 콜럼버스의 관은 공중에 뜬 상태다. 스페인의 후원으로 신대륙 항해에 성공했으나 나중에 스페인 왕실의 외면을 받은 콜럼버스는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도미니카공화국에 묻혔던 유골은 훗날 쿠바로 옮겨졌다가 스페인 식민지였던 쿠바의 독립 후 세비야 대성당으로 오게 된다.
관이 떠 있는 것은 콜럼버스의 유언 때문이다. 스페인에 왔지만 유언대로 스페인 땅을 밟고 있지는 않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당시 스페에 존재했던 네 왕국(카스티야, 아라곤, 나바라, 레온)의 왕이 관의 네 귀퉁이를 지지하고 있는데, 넷 중 둘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고 나머지 둘은 떨구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에 대해서는 다 소개할 수 없을 만큼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야심가들의 성공은 늘 논란거리가 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원주민에 대한 수탈과 학살의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도 평가되지만 누군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자기가 밟고 있는 땅 밖으로는 몇 미터도 나가지 못했을 사람. 인류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누군가를 원망하며 한을 품고 죽은 인간. 스페인에 있되 스페인 땅을 밟고 있지는 않은 이 이탈리아 태생의 모험가는 작은 힌트를 던져 더 큰 고민을 안기는 재주를 타고 난 사람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