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101에 어울리는 도서관을 만들어볼래요
아주 먼 옛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배계급은 아무나 글을 읽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유럽에서 라틴어로 된 성경은 신성한 것이었고, 조선에서도 글을 읽는 건 일종의 특권이었습니다. 지배계급은 ‘글을 읽으면 생각을 한다’는 원리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겁니다.
글을 읽는 행위는 상상과 사고의 연속입니다. 고재학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그의 저서인 《부모라면 유대인처럼(2010)》에서 유대인이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었던 비결로 탈무드를 꼽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듣고, 상상하고, 믿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죠. 책을 읽으면 디지털 미디어를 접할 때보다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집니다. 그래서 클래스101의 직원들도 회사에서, 집에서, 바깥에서 생각의 물꼬를 틀길 바라는 마음에 사내 도서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소개합니다. “살려야 한다, 사내 도서관” 프로젝트!
사내 도서관이 오래전부터 있긴 했습니다. 책을 보고 싶은 환경이 아닐 뿐이었죠. 위의 사진들은 Before의 모습입니다. 책장 앞에 컵을 수거하는 카트가 있고, 다른 책장은 여러 분야의 책이 뒤섞여 있습니다. 우선 책을 분류해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십진분류법을 찾아봤습니다. 클래스101의 책은 200여 권 정도인데 분류하는 방법이 열 가지나 되면 책장도 복잡하고, 직원들도 헷갈릴 겁니다. 200여 권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보면서 클래스101에 가장 어울리게 분류해봤습니다.
클래스101의 기업 문화와 비전, 가치의 바탕에는 만화 <원피스>와 <슬램덩크>가 있습니다. 그에 맞게 회사 중앙엔 원피스 만화책 전권이 있을 정도입니다. <원피스>와 <슬램덩크>를 각각 장르로 분류했습니다. 도서 분류 마음대로 한다고 누가 세금 걷어가진 않으니 괜찮습니다. 클래스101에서 <원피스>는 하나의 장르입니다.
책을 분류하고 책 정보는 모두 노션에 입력했습니다.
책 정보는 분류, 책 이름, 저자, 수량 정도로 나눴습니다. 이제 책을 빌리고 싶다면 가장 오른쪽 ‘보고 있는 클둥’란에 자신의 이름만 쓰면 됩니다. 도서관을 담당하는 피플팀에서도 누가 빌려갔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도서 분류를 모두 마치고 뿌듯해하는 접니다. 이제 새로 주문한 책장이 오면 그대로 꽂기만 하면 됩니다. 사내 도서관 별거 아니라며 잔뜩 으스댔는데,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게 바로 우리네 인생 아니겠습니까.
다음 날 출근하니 누군가 사무실 정리한다며 다 섞어놨어요.
속이 쓰리지만 괜찮습니다. 모든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오래된 책장은 치우고
2x2 책장 4개를 샀습니다. 큰 책장 한두 개만 살 수도 있었지만 자고로 책은 사람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사무실 곳곳에 책장을 두었습니다. 개발자와 PD 가까이엔 개발, 미디어 분야의 책을, 커머스와 사업 관련 직원들 가까이엔 경영, 전략, 마케팅 분야의 책을 두기로 했습니다.
책을 꽂으려는데 고민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책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을까?’
노션에는 같은 분야의 책들도 ABC가나다 순으로 정렬되어 있습니다. 실제로도 이 순서로 꽂혀 있다면 책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노션에 정렬된 대로 왼쪽부터 책을 꽂았습니다. 만약 《도메인 주도 설계》라는 책이 읽고 싶다면 “아, 첫 글자가 ‘ㄷ’이니까 왼쪽에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각 책장마다 어떤 분야의 책이 꽂혀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Y형 스탠드를 사고 안내문을 인쇄했습니다.
가독성을 높이려고 분야에 따라 마지막 문장은 다르게 썼습니다.
점점 구색을 갖춰가고 있어요. 각 분야가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큼지막하게 썼습니다.
피플팀의 알렉스는 직원들이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볼 수 있게 연필을 여섯 다스나 사줬습니다. 연필도 책과 가까이 있으면 직원들이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아 책장 근처에 두기로 했어요. 위의 사진은 연필 40자루를 깎는 저의 모습입니다. 연필을 담아둘 통은 직원들이 마신 일회용 음료수 컵을 씻어 재활용했어요.
개발, 미디어 책장을 완성했습니다. 뒤에서 직원들이 곧 런칭할 클래스의 홍보 영상을 함께 감상하고 있습니다.
경영, 전략, 마케팅 책장입니다. 책, 연필과 함께 간단한 메모도 할 수 있도록 책장마다 포스트잇도 두었습니다.
벽에 그림이 걸린 곳에는 그에 걸맞은 예술, 디자인 책장이 들어섰습니다. 연필이 부러지면 얼른 다시 쓸 수 있게 연필깎이도 함께 두었고요.
드로잉 클래스를 수강하고 직접 출판도 하신 조이슬 작가님의 책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두었습니다.
어제 누군가가 남긴 메모입니다. 40자루를 깎은 보람이 있어요.
연필이 독서가 아닌 개인 용도로 쓰일까, 포스트잇이 금방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또 사면됩니다. 만약 “연필은 책 읽을 때만 쓰세요!”라고 했다면 누군가 저에게 고맙다는 메모를 남기는 일이 없었을 겁니다. 기업문화 매니저는 직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어서 직원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리길 바라고 있습니다. 마침 사내 도서관을 만들자마자 18명의 직원이 46권의 책을 빌려갔습니다. (19년 8월 9일 기준) 이번 작업은 7월 16일부터 8월 8일까지 3주 정도 걸렸습니다.
버리기는 아까웠던 이 책장,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단행본
고재학, 《부모라면 유대인처럼》, 예담프렌드, 2010.
마이클 바스카, 최윤영 역, 《큐레이션》, 예문아카이브, 2016.
아담 스미스·러셀 로버츠,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세계사, 2015.
앤절라 더크워스, 김미정 역, 《그릿》, 비즈니스북스, 2016.
조벽, 《조벽 교수의 인재혁명》, 해냄출판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