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육아 일기
아이를 낳았을 때 어쩜 저렇게 제 아빠와 똑같이 생겼을까 놀라웠다. 아이가 궁금해 신생아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며 통유리 너머로 본 아이의 모습은 시간마다 변해있었는데 제 아빠를 닮았다가 아주버님을 닮았다가 그랬다. 신비로웠다. 그런데 내가 낳았는데 나 닮은 구석은 어째 하나도 안 보이네 농담처럼 말하며 웃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어디가 자기랑 똑같다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아이를 보는 사람들은 한 마디씩 그랬다. 어쩜 제 아빠랑 똑 닮았을까.
신기하게도 아이는 커가면서 어느 날은 아빠를, 어느 날은 엄마를, 눈은 아빠를 웃을 땐 엄마를. 그렇게 매일 자라며 새로운 얼굴과 마음을 보여줬다. 그런데 내가 알겠는 건 저 아이 성향이 나를 많이 닮았다는 것. 물론 아이는 아이대로 새로운 마음과 기질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하는 행동이나 마음 쓰임새가 내 쪽에 가깝다.
아이를 마주하는 친정엄마께서는 어쩜 너 어릴 때 하는 짓이랑 똑같은지, 말하는 것도 속이 빨리 든 것도 하는 짓도 같다 하신다. 내가 동생이 생긴 후로 속이 꽉 들었고 눈치도 빠르고 말도 빠르고 애교도 그렇게 많아 주위 예쁨을 다 탔다고 했다. 그러더니 학교 입학하고 나서는 애가 조용해졌다고.
아이가 친정엄마와 둘이서 왕함미집,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 우리 엄마의 엄마. 아이에겐 증조할머니 댁으로 놀러 가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온 날. 저녁에 자면서 나한테 그러는 거다.
"엄마, 그런데 왕함미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었어."
(응? 무슨 냄새가 났을까?) 자리에 있지 않았던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아이 재우고 나와 친정엄마께 연락해 물어보니,
"세상에나. 맞다 맞아야. 오늘 할머니 댁 하수구에서 유난스럽게 냄새가 올라오더라. 시상에 뭔 애기가 그걸 거기선 말도 않고 있다가 지 엄마한테만 가서 말을 한다냐. 속이 다 들었시야. 그것이." 그러신다.
제가 생각해도 겉으로 해야 할 말, 하면 상대가 기분이 좋지 않을 말, 그게 뭔지 구별을 한다. 속이 여려 상대 마음을 살필 줄 아는 게 어째 나와 마음새가 똑 닮아버렸다. 눈치가 빠르기도 하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기도 하겠지.
아... 무슨 애기가 벌써 속이 들고 그래...... 그렇게 친정엄마한테 말했더니, 지 엄마 닮아 그렇지 뭘, 그러신다.
나 좋은 것, 남편 좋은 것. 그렇게만 닮았으면 좋겠는데 나한테 아픈 것, 남편한테 모난 것. 그런 것들도 어쩔 수 없이 닮는 게 자식인가 보다. 그럼에도 이 아이는 내가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그냥 또 다른 사람. 아이 그 자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