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전공하면서 별로 행복하진 않았다. 나는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겨우겨우 좋은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재능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살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창작’에 관심이 많았고, 예술을 전공하더라도 창의적으로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클래식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클래식은 정해진 해석과 틀이 있고, 그 틀을 벗어나면 이단아 취급을 받으며 구설수에 오른다. 학생 시절이면 그 제약은 더 심하며, 스스로 해석해 본 연주를 선생님 앞에서 보여드리면 가차 없이 퇴짜를 맞기 마련이다.
내가 생각한 곡의 흐름에 맞춰, 단 하나의 음을 강조해서 연주해도 곡의 본질을 흐렸다는 평가를 받고, ~~ 작곡가의 곡을 연주할 때는 그렇게 치면 안 돼 - 등등의 코멘트를 듣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냥 클래식계의 법도가 이렇구나, 하고 인정하면 되지만 나는 힘들었다. 성격상 별로 맞지 않았던 것 같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콩쿠르나 입시에서 통하는 스타일도 정해져 있다. 최대한 교과서적으로, 그리고 입시는 더 기교적으로 (또는 기계적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전통이 있기에, 학생들은 선생님이 입력해 주는 연주 해석을 그대로 입력해서 그대로 출력하면 된다. 미술과 비슷하게, 음악과 또한 입시철이 되면 일종의 ‘연주 기계’가 된다. (내가 입시미술하는 친구들을 보며 느낀 바와 똑같다.)
콩쿠르나 학교는 나를 그리 환영하지 않는다. 실제로, 실력 있고 재능 있는 학생들이 콩쿠르 예선이나 본선을 넘지 못하고 고전하거나, 대학에 계속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잘하는 친구들도 상황이 이런데 난들 오죽하랴.
가끔 평가회에 참가해 심사위원들의 코멘트를 받아보면 자아분열이 되는 것만 같다. 어떤 심사위원은 페달이 너무 많다고 비판하는 한편, 다른 심사위원은 페달을 더 쓰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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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생님은 독창적으로 친다고 칭찬하고, 다른 선생님은 표현이 너무 과하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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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에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을 이해할 수가 없다. 심사위원 각자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른데 이걸 객관식 시험처럼 숫자로 환산할 수 있다고?
결국 얼마냐 노력을 했느냐 - 도 물론 중요하지만 - 보다는 ‘보편적으로 잘 치는’ 연주와 조금의 행운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보통 자녀에게 음악 전공 시키는 집안은 부자라는 인식이 강한데, 우리 집은 안 그랬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피아노 전공을 했는데, 해가 갈수록 피아노에 정이 떨어지는 나 자신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렸다. 결국 나중에는 길을 틀어야 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고, 피아노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숨 막혔다.
클래식계는 ‘하면 된다’가 아니라 ‘해도 안될 가능성이 90%다’를 기본으로 깔고 간다.
cover image_서울예고 도암홀 by das Me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