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미술 놀이, 바틱 체험

우리 간단히 그림 그리러 갈까?

by 클로드

해외 한 달 살기, 주말이 찾아올 때면 구글맵에 표시해 놓은 곳들을 요리조리 확대해 보며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한 달이라는 한정된 시간의 주말, 이왕이면 평일에 가기 어려운 곳을 가고 싶어서, 이왕이면 한국과는 다른 경험을 아이에게 펼쳐주고 싶어서.


토요일에 거창하게 새 공원과 국립 박물관을 다녀왔으니, 일요일에는 좀 쉬어줘야 할 것 같다. 오후에 살짝 나갔다 오는 코스로 머리를 굴려 본다.

"우리 간단히 그림 그리러 가볼까~?"

아이에게 바틱 페인팅을 권해본다.




바틱(Batik)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전통 천연 염색 기법으로, 이곳 쿠알라룸푸르에는 바틱 체험이 한 달 살기의 유명한 코스가 되었다. 이미 도안이 그려진 천 위에 붓으로 색칠만 하면 된다고 하니 무척 간단한 일! 아이가 쉽고 재미있게 체험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아이의 승낙을 얻은 나는 미리 봐둔 몇 군데의 바틱 체험장 중 마음에 드는 곳을 열심히 골라낸다. 붐비지 않고, 교통이 편하며, 이왕이면 더욱 이국적인 곳으로! 그렇게 선택한 곳은 Kompleks Kraf Kuala Lumpur라는 곳인데, 전통 가옥들이 여러 동 모여있는 작은 빌리지처럼 보였다. 공예 박물관, 기념품 가게들, 그리고 각종 공방들이 옹기종기 이루어져 하나의 예술인 마을 같았다. 빌딩 숲 가득한 도심에서 지하철 몇 정거장 왔을 뿐인데 이렇게 초록과 나무집이 가득한 공간이라니! 이국적이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모습에 반해 버렸다.




초록 식물과 나무 가옥이 어우러진 공방 단지를 둘러보다가 한적한 어느 바틱 공방에 기웃기웃 들어가 보았다. 벽에 화려한 바틱 작품들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 체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도안들이 있었다. 미술학원처럼 테이블과 의자가 오밀조밀 배치된 곳. 아이와 나는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도안을 고르고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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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을 두른 선생님은 매우 친절하고 쉽게 바틱 페인팅의 원리와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마치 밥 아저씨의 "참 쉽죠~?"처럼 붓 끝으로 염료와 물을 조절하며 순식간에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을 표현해 내는 모습에 감탄했다.


이제 우리들의 시간. 오로지 6 색상의 염료를 서로 섞고 물로 조절하며 원하는 색을 만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붓 끝을 하얀 천 위에 콕! 그 첫 붓질을 해보았다. 종이에 슥슥 칠하는 것 과 달리, 염료는 천 위에서 빠르게 번져나갔다. wax로 그려놓은 도안 안에서 매우 안전하게 바깥으로 넘어가지 않으며 제 칸을 채워나갔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의도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내기 어려웠고, 생각한 색을 만드는데 헤매기도 했다. 몸과 마음에 힘이 들어가려던 찰나, 내 앞의 아이도 끙끙대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도안으로 또 해보면 돼~ 그냥 편하게 슥슥 한 번 해봐~"


아이에게 부담을 덜어주려고 한 말은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이게 뭐라고 스트레스받으며 끙끙 댈 일인가? 그 뒤 나도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요리조리 시도하듯 붓을 움직여봤다.




wax 도안의 테두리 안에서 진한 염료가 사악 번져나가면 붓에 물을 더 묻혀 좀 더 연한 색을 이어가고, 나중에는 거의 물만 찍어 바르듯 하여 은은한 그라데이션을 완성해 봤다. 눈앞에 번져나가는 색의 향연을 취하듯 바라보기도 했다. 30년 만에 미술 학원에 온 듯 붓과 물통, 팔레트를 즐겁게 오가며 몰입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려한 테이블 보, 현지 예술인들과 외국인 체험인들, 완성된 화려한 작품들! 이국적인 공간과 시간 속에 앉아서 말레이시아의 전통 염색을 직접 해본다는 게 무척 좋았다. 이 공간에 놓인 내가 좋았다.


바틱 페인팅을 하는 내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심하며 몰두하던 아이는 완성된 작품을 보자 드디어 웃음을 짓는다. 다 하고 보니 생각보다 예쁘게 나왔다며 좋아한다. 신기하게도 바틱은 하면서는 '이게 뭐가 되려나?' 싶을 만큼 내 솜씨가 미천해 보였는데, 색으로 다 채우고 보면 또 제법 근사하게 다가온다. 나 역시 완성작이 제법 뿌듯했다.




그렇게 지금 이곳 숙소에 나와 아이의 그림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식구 공부방에 나란히 자리하겠지.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날 것 같다. 주말의 뜨거운 햇살을 뚫고 찾아간 낯선 동네, 그곳에 놓인 전통 공예 마을, 그중 작고 예쁜 공방 하나. 커다란 초록 풀잎과 나무, 햇살, 그리고 외국어가 오가던 신비로운 공간.


시간과 공간을 커다랗게 넘나든 그곳에서 붓으로 찍어내는 물과 색의 향연에 우리는 제법 심취해 있었다고. 낯 선 말레이시아에서 이곳의 전통 미술을 내 손으로 해봤다고. 알록달록한 이 그림이 그날의 신비를 순식간에 불러일으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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