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콘 두 덩이, 그리고 로망

외국에서도 혼자 카페 타임

by 클로드

평소 한국에서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와 책, 글쓰기 도구를 펼쳐놓는 걸 좋아한다. 내가 만든 작은 시간, 작은 세상 앞에서 고요한 몰입이 시작된다. 그 행복감을 챙기는 건 어느덧 나의 로망 리스트가 되었다.




이곳 말레이시아로 한 달 살기를 오면서도 그 순간을 꿈꿨다. 더욱 낯선 곳에서 펼쳐보는 나의 시간을.


한 달 살기 초반부에는 정착하고 적응하느라, 그리고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혼자만의 시간은 아직 없었다. 이제 남편은 먼저 귀국했고, 낮 시간에 아이는 어학원을 간다. 그렇다. 나의 한 달 살기 속 시즌2가 시작된 것!


그 첫날을 무척 잘 보내고 싶었다. 가방에 필요한 짐을 꾸려 길을 나섰다. 좋은 시간에 가려고 아껴둔 장소가 있다. 그건 바로 KLCC 공원 분수가 보이는 야외 카페. 그곳에서 햇살을 피해 분수를 보며 읽고 쓰는 모습을 그려왔다. 그 로망을 실현하러 설레는 발걸음으로 카페 안을 들어섰다.


해가 너무 들지 않으면서도 분수가 보이는 자리를 매의 눈으로 스캔해 냈다. 자리에 앉으니 카페 담장 가득 채운 초록 식물들에 가려 막상 분수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사이사이로 하얀 물줄기가 뜨거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시원함을 얼핏 얼핏 느낄 수 있는 곳! 이 정도면 충분했다.




로망에 맛과 행복을 더해 줄 메뉴를 고심해서 고른 끝에 달지 않아 딱 좋은 아이스크림라테와 스콘이 눈앞에 놓였다. 스콘의 정석인 딸기잼과 크림의 조합! 사실 스콘을 좋아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별다른 특징도 없고, 어떤 때는 너무 뻑뻑해서 자꾸 음료를 부르는 빵이랄까.


하지만 내게 스콘은 추억이고 경험이다. 대학생 때 호주에서 보내던 시간, 홈스테이 가족과 함께 간 카페에서 처음으로 스콘을 먹어봤다. 사방이 초록과 산으로 둘러싸인 전원적인 카페, 소담히 담긴 빵 뭉텅이 같은 스콘, 그리고 달콤한 딸기잼과 부드러운 크림에 나는 해외 생활의 긴장감이 부드러이 녹아버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맛이 아니라 경험 때문에, 추억이 이끄는 본능 때문에 한 번씩 스콘을 호출한다. 이번에도 그랬고, 어김없이 눈앞의 두덩이 스콘은 옛 추억을 순식간에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놓았다.


나이프로 스콘을 썰어본다. 스콘 속으로 말랑하게 칼이 잘 들었다. 딸기잼과 크림을 떠서 올려본다. 크림이 묽고 느끼함 없이 프레시해 보인다. 그대로 한 입에 쏙.

부드러웠다! 단단하고 뻑뻑한 스콘이 아니었다. 촉촉하고 따듯했다. 딸기잼은 기분 좋게 상큼했고, 크림은 달콤한 우유를 머금는 기분을 선사했다. 이 심심한 빵에 딸기잼과 크림의 조합은 정말 탁월한 발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렇게 나의 두 번째 스콘 추억이 저장되리라는 것을. 호주의 멜버른,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평소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던 빵이지만 이 두 곳에서는 소울 디저트 같았던 스콘.




왼쪽엔 스콘이 담긴 플레이트를, 오른쪽엔 리베카 솔닛의 책을 펼쳤다. <길 잃기 안내서> 어쩜 이 순간 이리도 적절한 책을 만나게 되었을까. 이번 달 북클럽 도서라 챙겨 왔지만, 마침 외국에서 한 달 동안 지내보는 시간. 이 안내서를 따라 길을 잃어볼까 하는 즐거운 상상이 들었다.


책을 읽고, 스콘을 한 입 물고, 저 너머 하얗게 거품으로 솟아오르는 분수를 바라본다. 그리고 주변의 소음을 들어본다. 영어, 말레이어, 혹은 그 외의 언어들이 테이블에서 팝콘처럼 팡팡 튀어 오른다. 그 한 복판에 고요히 앉아있는 시간. 혼자여도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 모든 감각이 새로운 세상을 보고, 듣고, 맛보느라 분주하니까.


그 순간의 내 테이블은 작은 세상이 되었다. 꿈꾸던 시간을 향해 걸어 들어왔고, 좋아하는 것들을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나의 손과 발이 펼쳐낸 이 공간은 한아름만큼 작았지만, 내가 흡수하는 새로움은 넓은 반경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안에서 충분히 행복했다.

나는 이런 걸 로망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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