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 중 병원을 갈 수도 있지

쿠알라룸푸르 병원 세 곳을 거치며

by 클로드

외국의 병원은 어쩐지 두렵다. 최고의 의료 시스템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병원에서 거치게 될 절차와 치료에 걱정부터 앞선다. 그리고 언어의 장벽도 크게 다가온다. 정확성을 요하는 대화인만큼 내 나라의 병원에서도 말 한마디 신경 써서 주고받는데, 외국어로 소통하다가 잘 못 전달되거나 놓치는 게 있을까 봐 염려된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내 나라로부터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어려운 상황이 연이어 이어질까 봐.




한 달 살기의 초반부를 남편과 함께 보내고 있다. 그날은 아이와 남편이 숙소 수영장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했고, 나는 한발 짝 떨어진 카페에서 시원한 차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었다. 수영을 마치고 아이부터 후다닥 씻긴 뒤 이어서 남편이 씻고 나오더니 말했다.

"귀에 물이 안 빠져."

"한쪽 다리 들고 이렇게 콩콩 뛰어봐. 손바닥 뼈로 귀 뒤 뼈도 통통 쳐보고, 손바닥으로 귀에 압력을 주듯이 눌렀다가 떼봐."

나는 초등학교 때 어디선가 배우고 주워들은 모든 방법을 순식간에 총동원해 전수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귀에 물이 안 빠져 먹먹하고,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했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숙소 바로 앞에 클리닉이 있으니 다음날 거길 가보기로 했다.




찾아간 클리닉은 주변에 어학원들이 밀집해 있어서 나처럼 한 달 살기를 온 가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외국 병원이지만 마음의 장벽이 덜 했다. 동네 의원처럼 아담했지만 간호사 선생님도, 진료실의 의사 선생님도 능숙하게 외국인 환자를 받았다.

남편은 미리 구글 번역기에 상황 설명을 자세히 써놓았다. 의사 선생님은 바로 고개를 끄덕인 뒤 귀를 보겠다고 했다. 그다음에 내가 기대한 풍경은 한국의 동네 소아과나 이비인후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 내시경 장비와 모니터로 귓속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작은 도구함에서 핸디형 확대경을 꺼내어 귓속을 열심히 들여다보셨다.

"귀지가 물에 불은 상태로 면봉을 사용하다가 속으로 더 들어가서 막혔어요. Ear drops를 처방해 줄 테니 귀에 넣고 5분 뒤 기울여서 흘러나오게 해 보세요."


그랬다. 그 병원에서는 한국의 동네 병원처럼 귓속에 진입하는 처치를 받을 수 없었다. 처방받은 약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대편 블록의 쇼핑몰 약국에 가야 했다. 그래도 어렵지 않게 진단을 받고 약을 구해서 안도했다.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 사실 비슷한 일이 몇 년 전에 있었고, 그때는 집 앞 이비인후과에서 순식간에 해결했었다.

하지만 처방받은 귀약(안약처럼 귓속에 톡톡 떨어뜨리는)은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남편은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다른 병원이 필요했다.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대형 클리닉을 찾았다. 진료 항목에 이비인후과에서 보는 내용도 있었다. 접수대와 진료실도 여러 곳이었고, 엑스레이와 초음파, 건강검진 시설도 갖춘 큰 병원이었다. 눈으로 볼 수록 마음이 놓였다.

'여기라면 해결할 수 있겠구나!'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간 진료실 의사 선생님은 경쾌하고 친절하게 진료해 주셨다. 하지만 그 선생님이 꺼내 든 것도 앞 선 작은 클리닉과 같은 핸디형 작은 도구였다.

"오늘은 이 병원에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없어요. 비행기를 언제 타죠? 이 상태로 비행기를 타면 무척 힘들 거예요. 소견서를 써줄게요, 큰 병원의 응급실로 가세요. 거기라면 쉽게 해결해 줄 거예요."




맥이 빠졌다. 이렇게 큰 병원에서도 안 되는 거구나... 그렇게 우리는 소견서와 보험 청구에 필요한 여러 서류를 받아 챙겨든 뒤 Grab을 불러서 타고 알려준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을 갖춘 대형 병원이었다. 빨간 표지판의 응급실을 발견했다. "Emergency" 기분이 묘했다.

소견서 덕분에 접수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하지면 여전히 여권을 펼쳐 들고 환자 정보 기록서의 빼곡한 내용을 적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접수처 상담을 마친 뒤 진료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응급실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 역시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앞선 병원들과 동일한 체온계 같은 그 작은 장비로 남편의 귀를 들여다보셨다. 그리고 위 층의 ENT(이비인후과)로 연결해 주셨다.


그렇게 응급실을 거친 뒤에야 이비인후과 대기실에 앉을 수 있었다. 드디어 진료실 입성! 그곳이야 말로 한국에서 익히 보던 이비인후과 장비가 펼쳐진 곳이었다. 특유의 환자 의자와 내시경 장비, 그리고 모니터. 나와 아이는 숨죽이고 서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의사 선생님은 귀 내시경과 흡입기로 남편 귓속을 말끔히 청소해 주셨다. 귓구멍이 무척 작은 편이라고, 다 해결되었으니 다른 처치는 필요 없다고, 다만 일주일 간 수영은 안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남편은 말했다. 드디어 이 쪽 귀가 잘 들린다고!


세상에,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제야 남편의 고통이 확 공감되었다. 그전에는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는데, 모니터로 치료 과정을 보니 남편이 겪었을 불편함과 불안감이 한순간에 다가왔다. 고생했다고, 정말 다행이라고, 이제 진짜 잘 들리냐며 그의 커다란 등을 쓸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3개의 병원, 4개의 진료실을 거쳐 드디어 치료를 받았다. 그 모든 병원마다 구글 번역기에 상세히 써놓은 상황 설명, 여권을 내밀며 진행한 환자 접수, 여행자 보험 청구를 위한 각종 서류 챙기기까지... 모든 스텝을 반복했다. 그것도 한국어가 아닌 어버버 영어로.

한국에서의 진료와 비교하면 훨씬 복잡하고 어려웠던 건 맞다. 하지만 외국이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 더군다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대도시이고, 알고 보니 의료 수준과 인프라 역시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한다.


이처럼 해외에서 병원을 갈 수도 있는 일. 그것이 여행이어도 한 달 살기어도 말이다. 특수한 상황이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지난번 한 달 살기에서도 대형 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물론 뭐니 뭐니 해도 안 아프고 안 다치는 게 제일이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지체 말고 외국에서도 병원을 찾아야겠다. 내가 머물고 있는 주변의 병원들을 미리 알아두고, 여행자 보험을 꼭 들어놓는 게 필요하겠다. 그다음은 이곳 시스템을 따르며 차근차근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는 것.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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