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과일의 향연
나는 원래 마트와 밀접한 사람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지만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능숙하게 요리하는 그런 사람은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트에 가면 괜히 재미있다. 순수하게 구경하는 재미 그 하나 만으로도 마트는 내게 즐거운 곳이다.
외국에서 방문하는 마트는 그 재미가 더욱 신선하다. 익숙한 듯 색다른 채소, 과일, 식품들을 구경하는 일은 반가움과 호기심으로 번뜩이는 일이다. 어디 외국뿐일까? 제주도에서도 마트에 가면 싱싱함으로 큼지막한 해산물과 처음 보는 빙떡에 놀라기도 했다. 마트는 이토록 그 나라, 그 지역의 자연과 맛을 풍성히 담은 곳!
이곳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도 거의 매일 마트를 가고 있다. 간단히 요거트, 과일, 간식 등을 사 오는 게 전부지만, 빼곡한 코너의 상품들을 구경하는 일은 놓칠 수 없는 재미다.
대부분 나라의 마트가 그런 것일까? 입구에서부터 맞이해 주는 것은 동글동글 풍성히 진열된 과일의 향연이다. 따듯한 나라답게 각종 망고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연노랑, 진노랑, 초록까지 크기도 색깔도 다양하지만 납작 둥글한 쉐입에 마음도 말랑말랑 해지는 망고다.
선홍색의 뾰족뾰족한 용과도 무척 반갑다. 지난번 베트남에서 매일 먹을 정도로 용과 사랑에 빠졌었다. 화려한 외관 속에 하얗고 밀키한 과육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무척 매력적이다.
그 옆에 망고스틴도 보인다. 두리안이 과일의 왕이라면, 망고스틴은 과일의 여왕이라고 한다. 자줏빛 동글동글한 망고스틴을 가로로 칼집을 내어 쪼개면 그 속에 하얀 과육들이 마치 귤처럼, 어쩌면 육쪽마늘과 더 비슷한 모양새로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름만 익숙하고 아직 맛은 기억 속에 흐릿한 구아바, 파파야, 서양배도 괜히 반갑다. 그림 속 과일을 실물로 만난 듯한 그런 반가움이랄까.
생김새만 봐서는 모르는 과일도 무척 많다. 고개를 숙여 이름표를 더듬더듬 읽어본다. 그렇게 알아가는 재미도 과일 eye shopping의 하나! 아, 여기 있는 동안 종류별로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 1일 1종의 과일! 매일 다채로운 맛이 펼쳐지겠지?
대번에 눈길을 끄는 건 알록달록 탐스런 과일이지만, 진정 나를 깔깔 웃게 만드는 건 재미난 모양의 채소다.
"가지가 이렇게 동그래! 그래서 egg plant 인가 봐~"
"우와, 오빠 좋아하는 여주도 있어. 여기 여주는 길이가 짧다."
"이건 라임인데, 반으로 잘라서 레몬즙 뿌리듯 음식에 뿌리면 상큼하고 맛있어."
"생강이 이렇게나 커? 아까 식당에서 음식에 들어있던 생강이 이런 건가 봐."
"잉? 오이처럼 생겼는데 훨씬 길쭉한 이건 뭐지? 이름에도 snake가 들어갔네?"
이곳에서 식재료로 요리를 할 계획이 없으면서도 채소 앞에서 이토록 신나서 떠든 나였다. 보기만 해도 즐겁고 신기한 걸 어쩌나? 아는 채소인데 새로운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게 너무 재미있는걸.
비록 내가 손질할 일은 없겠지만, 식당에서 먹으면서 이 모양과 빛깔들을 떠올려야지. 다른 모양이 다른 식감과 맛을 주는지 음미해 봐야지. 아니다, 오이라도 사서 깎아먹어 볼까? 간단히 채소 볶음도 한 번 해볼까?
마트 입구에서 세 발짝만 들어가면 펼쳐지는 과일, 채소 코너 이야기에도 이렇게 이야기가 한 바닥 나온다. 여행자의 생생한 즐거움이 되어주는 현지 마트! 우리는 이토록 음식과 밀접한 존재이고, 자연이란 이토록 다채롭고 신비로운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쯤 되니 마트라는 공간이 어느 박물관, 과학관 못지않은 장소처럼 여겨진다.
오늘도 쿠알라룸푸르 시내를 돌아다니고 숙소에 들어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야지. 조금 전 결심한 대로 낯선 과일을 하나 사 봐야지. 그 녀석이 우리에게 선사할 표정은 과연 어떨까 벌써부터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