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항공을 타보다
공항은 흥미롭고도 묘한 곳이다. 매 시간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지만 모든 이동과 절차는 매우 질서 정연하다. 잠시의 우왕좌왕으로 혼란스러울 순 있지만 커다란 혼돈에 빠지는 일은 드물다. 짜임새 있는 프로세스와 엄격한 관리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 모든 절차의 행렬에 매우 다양한 얼굴들이 물밀듯이 들어온다.
1월 초의 공항은 소문대로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아이들의 방학에 맞추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레이시아행 항공편 카운터에는 나와 같은 한 달 살기를 떠나는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엄마와 초등 자녀로 구성된, 다소 넉넉한 짐가방을 보며 짐작했다. 아빠가 함께 떠나는 가정도 여럿 보였지만, 구분된 선 바깥에서 배웅하는 아빠들도 있었다.
우리 집은 이번에 남편도 함께 떠나왔다. 지난 나트랑 때는 나와 아이가 먼저 3주를 보내고 있으면 후반부에 남편이 합류해서 함께 귀국했지만, 이번에는 남편 일정 상 순서를 바꾸었다. 같이 떠나는 마음이 든든했다. 초기 정착이 가장 힘든데 그 시간을 남편 덕분에 한결 수월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공항에서 남편은 내내 이야기한다.
"너희끼리 이 많은 짐을 다 어떻게 들고 올래? 가면 분명 짐이 더 늘텐데. 내가 후반부에 갈걸..."
2년 전 우리 둘 만 덜렁 보낼 때도 걱정하더니, 반대로 우리 둘 만 돌아오는 귀국길도 걱정인 모양이다. 그럼 나는 반대로 걱정을 받아친다.
"오빠야말로 먼저 귀국하면 제 때 자고, 제 때 먹으며 지내. 맨날 시리얼만 먹고 있지 말고."
함께 하는 출국길에 벌써부터 서로의 귀국을 챙기는 모습이라니. 우리 부부는 여전히 '네가 걱정이다, 쯧쯧' 모드인가 보다.
정신없이 출국 심사를 마치고 면세 구역에 들어가면 그제야 앞 선 수속들로 인한 긴장감이 풀린다. 여권, 항공권, 짐 이 모든 것에 빠트리거나 실수한 것 없이 잘 통과했구나 싶다. 이런 수속들은 몇 번을 해도 매번 비슷한 긴장감이 든다.
그 후 탑승 게이트로 이동해서 어김없이 창 밖 비행기들을 구경하러 다가간다. 알록달록 다양한 항공기들의 컬러와 디자인이 흥미롭고 생경하다. 저건 어느 나라 비행기일까 짐작도 되지 않는 항공기도 여럿 보인다. 모두 다르게 생겼고, 각기 다른 곳으로 떠나겠지만 줄지어 같은 활주로위에 바퀴를 굴린다. 방향을 바꾸고 제 위치에 선 다음 본격적으로 지면을 달리던 비행기가 고개를 들고 비스듬히 떠오르는 순간! 그 모습을 보며 머지않아 저렇게 떠오를 나의 이륙을 시뮬레이션해 본다.
그리고 우리가 탈 비행기의 모습도 구경해 본다. 탑승하면 막상 모습을 볼 수 없으니 게이트 앞에서 열심히 봐둔다. 이번에 타는 비행기는 처음 타보는, 어쩌면 처음 보는 모습. 말레이시아 항공이었다.
아이와 함께 여행할 때 되도록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려고 하는 편이지만, 지난번 미국 출장에서 귀국하며 항공편 결항 이슈로 타게 된 델타 항공이 제법 괜찮았다. 어떤 면에서는 대한항공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나라 국적기를 고집하는 대신 그보다 20만 원 저렴한 말레이시아 국적기를 택했다.
처음 보는 말레이시아 항공기는 말레이시아 국기를 닮아 있었다. 이국적이고 화려한 모습에 몇 시간 뒤 도착할 그곳의 이미지를 그려보게 되었다.
드디어 탑승! 승무원들의 절반 가량이 남성 승무원이었던 것도, 여성 승무원이 입고 있는 화려한 패턴의 드레시한 승무원복도 무척 신선한 첫인상이었다. 기내 안내 영상 속 말레이시아 승무원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말레이시아 관광지를 배경으로 안내하는 모습도, 마지막에 한 손을 반대편 가슴 위쪽으로 단정히 올리며 인사하는 모습도 매우 새로웠다. 그들의 인사법이구나, 그들의 전통 복장이구나, 그리고 그들의 표정이구나 짐작해 보는 시간이었다. 다른 나라 비행기를 탔을 때 만날 수 있는 새로움!
그렇게 6시간 30분을 날아 드디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했다. 탈 때와 반대의 순서로 내리고, 심사대를 통과하고, 짐을 찾았다. 그러고 나서 마주한 쿠알라룸푸르 공항 풍경은 외국에서의 첫 순간을 여실히 보여주듯 신기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히잡을 두른 여인들, 낯선 간판들이 한 번에 펼쳐졌다. 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발을 딛는 시작이 실감 났다.
공항 바깥을 나서면 이제 정말 외국의 땅을 밟는 것이다. 이곳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긴 팔 차림의 우리를 금세 덥혔다. 이제 다른 온도, 다른 시간, 다른 언어와 생활 방식에 조심스레 걸음을 옮길 시간. 공항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자마자 시작된 이방인의 시간이었다. 우리를 비롯한 많은 이방인들이 뿔뿔이 각자의 여행길로 갈라져나갔다. 어떤 이들은 그리운 집에 돌아가는 길일테지.
공항이라는 곳은 참 묘한 곳이다. 수 천 명의 사람이 동시에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듯 여러 수속을 착착 밟고서 좌석으로 빼곡한 비행기에 응축되듯 몸을 싣는다. 제법 긴 시간 구름 위를 날은 뒤 새로운 세상에서 쏟아져내린다. 복잡하고 분주하지만 질서 정연하게. 내 보폭과 짐가방 바퀴의 속도를 맞춰가며.
떠나보는 곳. 도착하는 곳. 복잡한 곳. 엄격한 곳. 설레는 곳. 긴장되는 곳. 그리고 안도하는 곳.
이토록 많은 감정과 공기가 교차하는 곳이 또 있을까? 나는 영영 공항이라는 장소가 신비롭게 느껴질 것 같다. 그리고 그 신비로움에 언제까지나 설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