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 빠지기로 결심하다
한 달 살기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저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회사 다니고 아이 키우는 평범한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 두 번째 한 달 살기 속에 있다.
어떻게 두 번씩이나 떠날 수 있었을까?
육아휴직을 조각 케이크 마냥 쪼개고 쪼개서 쓴 덕분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마음으로 전폭적 지지를 보내주는(돈은 다른 문제다) 남편과 엄마 하나 믿고 따라오는 아이 덕분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뒤에는 외국에서 살아 보고 싶은 로망을 꼭 쥐고 사는 내가 있다.
첫 번 째 한 달 살기는 정확히 2년 전, 베트남 나트랑에서였다. 한국의 겨울을 떠나 따스한 햇살 아래 초록 야자수 길을 걷는 게 좋았다. 언제든 바다를 산책 삼아 갈 수 있었다. 마음껏 책을 읽고, 마음 가는 데로 걸었다. 이 시간을 보낸 뒤 나의 총평은 이것, "건강하고 자유롭게 살았다."
그 한 달 살기를 끝낸 뒤 나는 열병에 걸렸다. 기대 이상으로 행복했던 그 시간은 생애 단 한 번뿐인 기회라고 여겼다. 초록과 파랑이 가득한 그곳 풍경과 느리게 흘러가던 하루가 그리웠다. 한동안 자주 꿈을 꾸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 호기심 가득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나는 그 열병을 글을 쓰며 쏟아냈다. 그렇게 지금 한 권의 책이 출간 작업 중에 있다.
그랬던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아니, 만들어냈다. 다시는 없을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실현해 내기 위해 많은 것을 끌어 모았다. 그 결과, 지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와있다.
두 번째 한 달 살기라 준비와 정착에 수월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 나트랑 때와는 삶의 형태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도 그럴 수밖에, 나트랑과 쿠알라룸푸르는 매우 다른 곳이었다. 전자가 로컬의 아기자기함과 기다란 해변의 아름다움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곳이었다면, 이곳 쿠알라룸푸르는 들어서자마자 상해, 홍콩이 떠오를 만큼 화려하고 높다란 야경이 펼쳐졌다.
차도 많고, 빌딩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그냥 많은 게 아니라 다양한 국적과 옷차림, 언어가 뒤섞여 있었다. 해변을 따라 걷는 한적한 산책로는 없지만, 대신 더위를 피해 걸을 대형 쇼핑몰들이 즐비해 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건강하고 자유롭게 거닐던 나트랑에서의 시간을 이곳에서는 갖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첫 번째와는 다른 두 번째 한 달 살기 컨셉이 필요했다. 나는 왜 쿠알라룸푸르를 선택했을까? 이곳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품고 도시의 거리를, 쇼핑몰 안을 걸어 다녔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다양성!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만들어낸 다양한 모습, 언어, 음식, 그리고 상품들. 가게 하나하나, 식당이나 카페 하나하나가 새로운 경험을 해 볼 장소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한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 컨셉은, "다양성에 풍덩 빠지기!"
이곳에서 매일 마주하는 다양성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고, 경험해 봐야지. 그저 지나가는 경험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을 건져 올려 보기로. 그리고 그것이 내게 어떤 영감을 주는지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기심의 렌즈를 장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 마주하는 대화에 몰입하고, 상품을 구경할 때 한마디라도 더 묻고 들어봐야겠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내가 쿠알라룸푸르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트랑 때의 여유와는 다른 삶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때는 회사를 다니다가 쉼이 필요한 시기였다면, 이 번에는 휴직의 한 복판에 필요한 다양한 자극의 시간!
한 달 살기에도 컨셉이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이 시간을 살아보기로 결심한 이유이고,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다양성에 풍덩 빠지기로 결심한 이 시간! 앞으로 하루하루 건져 올린 다양성의 순간을 기록해나가봐야지. 그 영감으로 나를 확장시켜 주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