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자가 되니 의외로 없는 것, 편한 옷

다르게 입고, 다르게 신어 보기

by 클로드

휴직을 하면 옷 쇼핑을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출근을 안 하고, 자주 다니는 곳이 있는 게 아니니 있는 옷 편하게 입으면 될 줄 알았다. 아니 그런데 말이다, 그 흔하고 편한 옷이 내게 없는 것이 아닌가! 요가복으로 산 맨투맨 티 하나, 가을 캠핑 때 입는 기모 들어간 맨투맨 티 하나. 편한 옷은 이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전부 회사 다닐 때 입는 블라우스, 니트, 카디건뿐. 그동안의 주말에는 가지고 있는 맨투맨 티로 돌려 입어도 충분했는데, 이제는 월화수목금에도 입을 만큼 편한 옷이 더 필요해진 것이다. 동네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할 때 특히 더 필요했다.


급기야 나의 맨투맨티 쇼핑이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작정하고 산 것은 아니고, 외출했다가 기회가 될 때 하나씩 사게 되었다. 예전에는 옷가게에 들어가도 손대지 않았던, 박시한 티셔츠가 낙낙히 걸린 그 코너에서 말이다.

‘어울리려나? 이 사이즈면 되나?’

그렇게 맨투맨티와 나의 만남은 새삼 어색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이런 스타일의 티셔츠를 잘 입지 않았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멀리한 건 아닌데, 다른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보니 손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어색했던 만남과 달리 이후 나는 이 맨투맨티들을 주구장창 입고 다닌다. 출근할 때면 아침에 일어나 옷장을 스캔하며 무얼 입을지 상하의 코디를 고민했는데, 휴직을 하니 고민할 것도 없이 ‘오늘도 너다!’라는 마음으로 훅훅 집어 들어 입고 있다. 세심하게 잠글 단추도 없고 맵시를 살필 필요도 없이 훌러덩 입으면 완성인 이 룩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옷이 달라지니 필연적으로 신발도 달라졌다(그렇다, 옷과 신발의 관계는 매우 필연적이다. 부록으로 가방도 마찬가지). 출근할 때 주로 로퍼를 즐겨 신는다. 같은 온라인 몰의 로퍼를 색깔별로 사서 갖고 있다. 계절 따라, 옷 컬러 따라, 혹은 기분 따라 바꿔 신으며 말이다. 하지만 면티에 청바지를 입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의 로퍼들은 신발장 어둠 속에서 나올 줄을 모르고 있다.


그 대신 한 켤레 있는 운동화가 열일하고 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이 녀석만 신고 다니니 신발에 떼가 타고 낡아감이 눈에 띄게 보였다. 회사 다닐 때에는 주말에 하루 겨우 신을까 말까 했던 운동화였는데 이제는 얘가 내 발이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양말 빨래도 확연히 늘었구나! 회사에는 주로 스타킹을 신고 다녔으니 말이다.


이처럼 다르게 입고 다르게 신으니 걷는 발걸음도 조금 달라졌다. 로퍼로 조곤조곤 걷던 걸음은 운동화의 쿠션감과 함께 조금은 굵직하고 명랑해졌다. 바지 속으로 넣어 입은 블라우스가 삐져나올 것을 걱정할 필요 없이 맨투맨 티셔츠를 입은 몸은 움직임의 반경도 조금은 넓고 터프해졌다. 통이 넉넉한 옷 속에서 팔이 자유로이 움직였다. 배에 힘을 주며 신경 쓰던 일은 마치 신입사원 시절처럼 아득하다.


지난 1월에는 아이와 말레이시아로 한 달 살기를 떠났었다. 나트랑 한 달 살기 때도 그랬지만 내가 가장 많이 챙겨간 옷은 다름 아닌 요가복이었다. 그렇다고 몸매를 멋지게 드러내는 옷이 아닌, 바지 실루엣이 슬림하면서도 넉넉한 조거팬츠를 여러 색 들고 갔다. 출국 전 정말 오랜만에(아마 거진 10년 만에) 인터넷 면세품도 미리 주문했다. 품목은 딱 두 가지, 바샤 커피와 요가복이었다. 가성비 좋은 젝시믹스 제품을 면세 할인가에 신나게 골라 담았다. 그렇게 내가 추구하는 편한 스타일의 요가복장으로 러닝도 하고 쇼핑몰도 다녔다. 아이와 주말 나들이에도 물론 최고의 착장이었다.




이제 복직을 앞두니 자연스레 옷장의 출근복들에 눈이 간다. 한동안 시선조차 주지 않았던 그 옷들에.

‘내가 이 옷을 입고 다녔지, 맞아 맞아.’

옷걸이에 얇게 나풀거리는 블라우스, 파스텔 톤 니트들이 마치 오래전 사진을 꺼내 본 듯 묘하게 낯설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함께 입던 슬랙스 진들은 아직 쳐다보지도 못했다. 반년을 신발장 어둠 속에 묵혀둔 로퍼들은 제대로 있으려나? 손댈 필요도, 열어볼 필요도 없던 옷과 신발들. 매일 같이 착착 입던 그것들 역시 오랫동안 쉬고 있었음을 이제야 인지했다.


생활이 달라지니 옷이 달라지는구나. 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 앞에 나는 괜히 한 번 멈춰 서게 된다. 다른 옷을 입고 만나는 세상도 다르고, 다른 옷 속의 나도 그러한 것 같다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다른 무드, 다른 긴장감, 어쩌면 다른 표정과 말들. 갈아입는 건 겉모습만이 아닌 모양이다. 한동안 벗어둔 건 참한 블라우스만이 아닌, 어떤 모습의 나였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세일러문처럼 옷만 갈아입는다고 나의 모든 게 순식간에 회사원 모드로 변신하게 될까? 한동안은 많은 게 어색 어색하겠지. 출근복을 입는 나와 휴직복을 입는 나는 그렇게 많이 다를까?


무엇에도 대답이 선뜻 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어제의 외출길에 고터 상가에서 옷을 샀더랬다. 매우 심플한 반팔 면티 한 벌과 디테일이 눈길을 끄는 블라우스 한 벌. 다른 스타일이지만 컬러는 같다. 버터와 레몬! 알 수 없는 이 상반된 통일감에 슬며시 웃어본다. 나는 지금 복직 예정자의 균형을 잡는 중이라고.

봄이니 마땅히 봄 옷을 샀다고.




화, 목 연재